[Review] 평범함 그 언저리라도 괜찮은 삶 - CK On Stage,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

글 입력 2023.11.20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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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감상의 이상적인 방식이라면 작품의 세계에 완전히 몰입하는 것이 있겠다. 현실로부터 분리되어 삶 속에서는 느낄 수 없는 특별한 감각을 일깨우는 것 말이다. 예술 창작과는 관련이 없는 감상자의 입장일지라도, 작품을 매개로 창작자와 같은 공기를 공유하고 더불어 예술적으로 상상하는 과정이 비로소 작품을 완결 짓는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일까, 과연 현실과 예술을 그저 분리하는 것만이 정답일까? 때로는 현실적인 상상, 이를테면 완성작이 탄생하기까지 창작자가 거쳐왔을 지난한 과정들을 상상하고 공감하는 것 역시 신선한 감동을 가져다준다.


내게는 지난 토요일의 관람이 그랬다. 청강문화산업대학교의 공연예술스쿨 현장연계 프로그램 ‘CK 온 스테이지(CK On Stage)’의 일환으로 재탄생된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이 대학로 한예극장에서 개막하는 날이었다. 나는 약 2주간의 공연기간 중 첫 번째 날에 극장을 찾았다. 이 프로젝트는 졸업을 앞둔 전공심화과정 학생들이 올해 초부터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공연의 첫 선을 보이는 자리로, 공연장 로비는 스탭들과 꽃다발을 든 배우들의 손님들, 그리고 수많은 일반 관객들로 북적였다.


나 또한 얼마 전까지 대학생이었던 입장으로서, 또 그들처럼 졸업을 위해 학교 단위의 프로젝트를 준비한 경험이 있는 입장으로서 긴장감과 설렘이 뒤섞인 특유의 분위기가 유독 반갑게 느껴졌다. 또 대학 단위로 주최하는 공연은 처음인 데다, 라이센스 뮤지컬 역시 너무나 오랜만이었던 터라 설렘이 배가됐다. 특히 이번 공연은 올해 6월 제17회 DIMF 대학생뮤지컬페스티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고 하기에 더 큰 기대감을 품고 공연장 좌석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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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 투 노멀’은 톰 킷이 작곡하고 브라이언 요키가 극본 및 작사를 맡은 명실상부한 브로드웨이의 락 뮤지컬이다. 3개의 토니상에 이어 퓰리처상 드라마 부문까지 수상하며 대중성뿐만 아니라 작품성까지 인정받은 작품으로, 정신질환으로 고통 받는 엄마 다이애나를 주축으로 그녀의 가족이 겪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번 공연에는 변재중 연출과 배우 류하목(다이애나 역), 이영은/김승현(댄 역), 윤민수/박민혁(게이브 역), 김지민/유희(나탈리 역), 홍진환(헨리 역), 조예운(파인/매든 역)이 참여했다.


네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는 극이니만큼 무대 역시 이들의 집을 배경으로 한다. 일반적인 소극장에 비해서는 높은 천장고를 활용해 이층집의 구조로 꾸며지는 무대 연출이 눈에 띄었다. 1층 공간은 거실 겸 주방, 안방으로 다이애나와 남편 댄의 공간이다. 1층 양쪽의 계단은 큰아들 데이브와 동생 나탈리의 방이 자리한 2층으로 이어진다. 아담한 면적의 무대임에도 2층짜리 주택의 구조를 부족함 없이 구현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가장 먼저 무대 위에 등장하는 주인공 다이애나는 든든한 남편과 사랑스러운 아들, 사춘기 딸을 둔 가정주부다. 하지만 평범해 보이는 이들 가족에게는 비밀이 하나 있다. 바로 아들 게이브가 실은 고작 생후 8개월 때 세상을 떠났으며, 다이애나는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해 현재까지도 조현병과 조울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다. 극중 등장하는 게이브는 살아있었다면 사랑스러운 아들 노릇을 했을 그를 향한 다이애나의 이상이 투영된 일종의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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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브의 존재는 그녀에게 더없는 위로가 되어주는 한편, 그녀의 트라우마를 부추기기도 한다. 파인 박사의 약물 치료, 매든 박사의 최면 치료로도 게이브를 향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 다이애나는 그가 속삭이는 목소리에 사로잡혀 면도칼로 자살시도를 하기에 이르고, 마침내 최후의 수단으로 전기충격 요법을 받게 된다.


댄은 가정의 평화와 아내의 건강을 위해 게이브의 존재를 지우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1막에서 다이애나를 위로하며 부르는 넘버 ‘넌 몰라/바로 나’에서, 게이브가 끼어들어 엄마에게 진정 힘이 되어주는 것은 자기라고 외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다이애나가 전기충격 요법의 부작용으로 기억을 잃자 모든 걸 새로이 시작할 수 있는 기회로 여기고 아들의 존재를 의도적으로 숨기기까지 한다. 그녀의 기억이 행여 되살아날까봐 어린 게이브가 잘 때마다 틀어주었던 오르골도, 앨범의 사진도 전부 숨겨버린 뒤 세 가족의 행복했던 순간만을 얘기해 준다.


게이브의 동생 나탈리에게 과거에 갇혀 사는 것도 모자라 이젠 자기를 기억조차 못하게 된 엄마, 그리고 아내를 케어하는 데만 모든 신경을 쏟는 아빠는 결코 이상적인 부모가 아니다. 다이애나는 나탈리에게 진정 어린 사랑을 주지 못했고, 치료를 받느라 딸의 연주회에도 찾아오지 못한다. 이런 메마른 가족관계 속에서 나탈리는 꼭 예일대에 합격해 집을 탈출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녀에게 유일한 위로가 되어주는 존재는 자신만 바라보는 남자친구 헨리뿐이다. 과연 세 가족, 아니 네 가족의 미래는 어떤 곳을 향하고 있을까.

 

*

 

‘넥스트 투 노멀’은 가장 먼저 우리에게 과거의 상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묻는다. 2막에서 매든 박사는 댄이 아들의 존재를 숨겼다는 사실을 미처 모른 채 다이애나에게 게이브의 이야기를 꺼낸다. 이 때문에 비로소 죽은 아들의 존재를 다시금 기억해낸 다이애나는 댄에게 이렇게 외친다. 의사들은 슬픔이 4개월 이상 지속되면 약물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하던데, 내 친아들을 잃은 고통을 어떻게 고작 4개월만에 잊겠느냐고 말이다.


아들을 잃은 경험을 그저 극복해야 할 과거, 나아가 잊어버려야 할 과거로 여기는 것이 과연 합당했을까. 정답은 극의 결말부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바로 게이브의 환영을 부정했던 댄이 처음으로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게이브를 안아주는 장면이다. 그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곧 다이애나의 상처를 있는 그대로 보듬겠다는 의지다. 표면상 달라진 것은 없지만 이들 가족의 진정한 새 출발이다. 


여기서 나아가, 극은 또 한 번 우리에게 묻는다. 진정한 사랑의 방식은 과연 뭘까. 댄은 아내가 좌절감과 슬픔을 그저 딛고 일어서기를 바랐다. 뒤는 더이상 돌아보지 않고 가족의 앞날만을 바라보기를 원했다. 하지만 다이애나가 바라는 행복은 비록 환영에 불과할지라도 게이브와 눈을 마주칠 때 느끼는 안정감이었다. 댄은 하루빨리 아내가 '정상의 상태'로 돌아오길 원했지만, 아들을 잃은 고통을 억지로 끊어내는 것 역시도 정상적일 수는 없었다. 댄이 추구했던 사랑은 그녀의 상처가 흉터 없이 아물게끔 돕는 것이었지만, 그녀에게는 상처의 아픔을 함께 기억해줄 수 있는 사랑이 필요했다.

 

마치 네가 미쳐버린다면 나도 함께 미쳐 너의 완벽한 짝이 되어주겠다는 헨리의 고백이 떠오른다. 그런 짝을 연인으로 둔 나탈리도 그런 사랑의 방식으로 엄마를 바라볼 수 있을까. 물론 자신의 상처는 뒤편에 묻어두고 엄마의 아픔에 한 발 먼저 다가서는 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희망이 엿보이는 순간이 다가온다.

 

기억을 되찾은 다이애나는 딸 앞에 마주서서 화해를 시도한다. 나탈리는 "엄마, 정말 고맙지만 왜 이래? 어색해. 지나간 16년은 다 뭐 하다가?"라고 응수하다가도, "평범 같은 건 안 바라. 그건 너무 멀어. 그 주변 어딘가면 다 괜찮아"라고 엄마를 위로한다. 더 나은 어딘가를 향하는 이들의 관계 극복이 현실적으로 그려지는 장면이다. 둘의 현재가 한 순간에 동화처럼 완벽해질 수는 없겠지만, 그렇기에 더 큰 울림을 남기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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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외적으로 눈에 띄었던 것은 학생들이 주축이 되는 공연인지라 전 연령대의 캐릭터를 모두 젊은 배우들이 연기한다는 점이었다. 약간의 우려를 낳았던 부분이었지만 공연을 감상하다 보니 이 점은 자연스럽게 의식 밖으로 밀려났다. 그중에서도 다이애나와 나탈리가 서로의 아픔을 품고 희망을 노래하는 '어쩜(넥스트 투 노멀)', 그리고 아들의 죽음을 똑바로 마주본 댄과 처음으로 아빠에게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은 게이브가 부르는 '바로 나'가 특히나 깊은 여운을 남겼다. 배우들의 실제 나이는 무색해지고 가족들의 진정한 사랑만이 온전히 전해지는 순간이었다.


작품에 녹아든 배우들의 뜨거운 땀방울은 커튼콜이 끝날 때까지도 식을 줄 몰랐다. 정식 배우로 활동할 미래를 앞두고 이번 공연을 준비하며 거쳐왔을 과정들이 눈앞에 생생히 그려지는 듯했다. 빛이 나고도 치열했을 모두의 열정이 배우 한 명 한 명의 눈빛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일반적인 기성 공연과는 사뭇 다른 특별한 색깔의 감동이었다. 누군가의 가장 뜨거운 순간과 함께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를 표하면서, 또 이들의 앞날을 진심으로 응원하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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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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