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진실의 복수성 [영화]

당신은 어떤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드나요?
글 입력 2021.09.17 17:4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2013년 겨울, 사촌 형과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이었다. 호랑이를 진짜 데려다가 찍었나 하는 실없는 이야기도 잠시, 우리는 주인공의 첫 번째 이야기가 진실인지, 두 번째 이야기가 진실인지를 가지고 다투기 시작했다. 어른(생각해보면 지금의 내 나이였다)이었던 형은 두 번째 이야기가 진실이라며, 첫 번째 이야기가 진실이라고 삐약거리는 나를 어린애 취급하면서 집으로 향했다.

 

8년이 지났고, 자취를 시작한 나는 무리해서 빔 프로젝터를 설치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볼 영화로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이 영화를 골랐다. 이 영화만큼은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으로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참 전부터 해 왔기 때문이었다. 50인치 스크린으로 다시 본 영화는 그때만큼의 압도감을 주지는 못했지만, 대신 나에게 전혀 다른 감상을 불러일으켰다.

 

 

라오파 4.jpg

 

 

<라이프 오브 파이>는 제목처럼 파이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다. 그가 태어나고 자라는 유년기, 바다에서 표류하는 청년기를 지나 중년이 된 그의 모습을 그리며 끝난다. 영화를 보고 나면 기억에 남을 만한 장면들은 그가 호랑이와 함께 바다를 떠도는 중반부에 몰려 있지만, 영화를 다시 보는 입장에서 오히려 흥미로웠던 부분은 파이의 표류가 시작되는 중반부가 아니라 초반부, 즉 그의 유년기를 다룬 부분이었다.

 

파이의 성장기는 바다에서의 그의 삶을 예고한다. 그는 어린 시절 이성과 지식으로 자신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동시에 어머니를 통해 종교적 감수성을 키운다. 이런 경험들을 바탕으로 그는 이성과 믿음(종교)이 함께할 수 있을 것이라 믿지만, 조금 더 나이를 먹은 후 아버지 소유의 동물원에서 일어난 일로 큰 충격을 받고 고민에 빠진다.

 

파이는 호랑이라는 동물의 습성을 알고 있음에도 동물원의 호랑이와 교감할 수 있다고 믿었다. 지금껏 이성과 믿음이 양립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그에게 이는 자연스러운 사고의 흐름이었다. 그러나 염소를 눈앞에 둔 호랑이가 주저 없이 본능을 따르는 모습을 본 파이는 자신의 삶에 근본적인 의문을 품고 방황하기 시작한다.

 

그는 여느 사춘기 소년들처럼 여자친구를 사귀고,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며 깨달음의 실마리를 본다(비슈누 신에 대한 그녀의 이야기는 이후 전개에서 중요한 복선이 된다). 그러나 방황하는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깨달음에 이르기도 전에, 파이는 가족들과 함께 이민을 가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라오파 2.jpg

 

 

구명정에 있는 생존 도구를 통해 살아남고(이성), 미지의 존재인 호랑이와 교감하면서 외로움을 달래다가(믿음) 큰 태풍을 만난 후, 신비로운 섬으로 흘러 들어가 그곳에서 깨달음을 얻고 다시 밖으로 나온다는 그의 표류기는 앞서 말했듯 그의 유년기를 닮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파이가 여자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느낀 어렴풋한 깨달음이 신비로운 섬에서 그 진짜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표류 끝에 도달한, 비슈누 신의 형상을 닮은 신비로운 섬은 그의 목숨을 구한 곳이지만, 잠시 그곳에 머물던 파이는 그 섬이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 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섬은 그를 살리는 동시에 죽일 수도 있는 곳이었다. 삶과 죽음이 맞닿은, 두 개의 진실이 혼재하는 곳에서 파이는 하나의 진실에 머무르고 안주하는 것이 바로 죽음임을 깨닫고 섬을 빠져나간다. 파이의 표류기는 다양한 상징을 통해 그의 유년기를 충실하게 재현하고 확장하는, 일종의 ‘신화’인 셈이다.



라오파 3.jpg

 


그의 첫 번째 이야기가 그의 유년기를 너무도 충실하게 반복/확장하고 있다는 점은 그의 첫 번째 이야기가 사실 지어낸 이야기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존재할 수는 있겠지만, 두 이야기 중 하나라도 없다면 지금의 파이는 존재할 수 없었다. 파이의 첫 번째 이야기는 바다에서 표류하던 그의 과거를 견뎌낼 수 있게 만들었고, 그의 두 번째 이야기는 그가 자신의 과거를 직시하고 현실을 올바르게 살아낼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의 표류도 마찬가지다. 어린 시절에는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이성과 믿음은 그가 바다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만든 힘이 되었고, 호랑이는 그의 목숨을 위협하는 존재인 동시에 그가 살아남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진실은 절대적이지 않으며, '모순'이 반드시 어느 한쪽이 사라져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파이의 마지막 질문이 다르게 읽힌다. 이야기를 마친 그는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드는지' 묻는다. 이는 단순히 당신이 더 마음에 드는 이야기가 진실이라는 뜻이 아니라, 두 가지 진실 중에서 당신이 무엇을 믿든 그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닐까.

 

 

[박호연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