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따 박성빈] 재단사의 초크처럼 재단하지

글 입력 2021.08.27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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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팅을 했다. 장학금을 받는 의과대학 재학생이란다. 그런 양반이 왜 나랑... 내가 자기보다 나이가 많아서 응했다고 했다. 생각이 어리지 않고 의지할 구석이 많은 연상의 사람이 좋은데 내 나이가 거기 부합한다는 거였다.


아르바이트하는 매장에서 차 지나가는 성대모사를 보여준답시고 다른 직원에게 같잖게 구는 게 나다. 위이이이이이이이잉. 어때요? 대로변에 와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상대방은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는 듯 버퍼링이 걸리고 나는 그런 표정을 볼 때마다 하하하하하핰하고 웃는다.


이런 게 나다. 시시껄렁한 흰소리를 늘어놓으며 지 혼자만 웃는 인간이 나다. 어린 나이는 아니지만 하는 짓은 어리다. 기댈 구석을 내어주기 보다 타인의 평정을 뺏고 싶어 헛소리를 뱉는다. 나는 주선자의 설명을 듣고 멍해졌다가 그런 사람이 못될 것도 없다고 다짐했다. 의지할 구석이 많은 인간이 좋다면 그 이미지에 맞게 나를 포장하면 되는 일이다. 그리고 어쩌면 나는 주부가 천직일지도 몰라. 의사 남편이 된다니. 나는 망상을 펼쳤다.


낯선 사람과 대거리하는 건 언제나 어렵다. 이성간의 만남을 전제하는 이런 소개팅은 특히 더 어렵다. 나는 일전에 했던 다짐에 어긋나지 않은 인간처럼 굴었다. 조용하고 무난하고 적당히 어른스럽게 행동했다. 상대방과 나는 당신이 ‘건전한’ 인간인지 확인하려는 의도의 질문을 겨냥하며 서로를 물색했다.


어쩌다가 대화가 그렇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상대방은 자기가 겪었던 그늘을 말했다. 삼수 해서 지금 대학에 왔어요. 재수할 무렵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부모님, 스스로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이는 시간이 많았어요. 제일 정신적으로 피폐했던 때에요. 상대방은 그 그늘의 모양을 설명하면서 울음을 참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저게 왜 불행한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껍데기를 벗기면 성적이 안 나왔다는 말이었다. 그걸 불행이나 우울로 과장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러고 보니 서울 송파구의 어디 아파트에 살고 아빠는 대기업 직원이라고 했던 것 같다. 결핍을 겪어본 적 없고 앞으로도 겪을 일 없는 배경의 당신. 성적이 안 나온 게 인생의 가장 큰 진통일 게 뻔한 당신. 상대방의 인생이 눈에 보였다. 나는 당신의 인생을 재단하고 있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이후의 만남을 기약하지 않았다. 이른 저녁에 자리를 파했다.


그 일화를 잊었다가 성호르몬과 전화를 할 때 다시 떠올랐다. 성호르몬은 과팅 할 무렵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거기 참석한 여자와 눈이 맞아 차주에 데이트를 했다. 서로를 구체적으로 알기 위한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 여자는 서울 부촌 오피스텔에서 자취를 한다고 했다. 어학연수나 유학을 가고 싶다며 일장 계획을 늘어놨다. 해보고 싶은 것들의 목록을 즐비하게 나열했다. 성호르몬은 그 순간부터 마음이 식었다고 했다. 자신과 판이하게 다른 흔적을 남기며 살았던 인간이 거기 있었고 앞으로 그려나갈 궤적에서도 서로가 마주칠 지점은 없다고. 자신과 겹치지 않는 선을 그린 인간을 무슨 수로 이해할 수 있겠냐고. 성호르몬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냥... 그 분의 인생이 재단되더라고요. 별로 좋은 마음이 아니었죠. 더 이상 만나지 않았습니다. 성호르몬과 나는 타인을 재단했다. 재단은 그 대상의 가능성과 고통 혹은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은 표정까지도 어떤 수식 속에 넣어 대충 이런 모양일거라고 짐작하게 한다. 니가 그걸 알겠어. 니가 그런 표정을 지어봤겠어. 니가 내 아픔을 어떻게 알아. 그런 문장을 불러 일으킨다.


성호르몬은 자기가 재단 당한 이야기를 이어 들려줬다. 몇 해 전까지 친하게 지내던 형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종종 자학을 일삼으며 성호르몬에게 불안을 토로했다. 캄캄한 앞날과 무능한 나. 성격도 소심해서 친구도 몇 없지. 성호르몬은 그런 말을 가만히 들어주다가 어느 날은 자기 일화를 꺼냈다. 형. 저도 불안해요. 뭔가 하고 싶은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저도 이런 상황이에요. 성호르몬은 그 다음 그가 했던 말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너는 몰라.


그는 성호르몬이 어떤 역사를 거쳤는지 알까. 성호르몬이 당신에게 보여주는 태도 배후에 뭘 감추고 있는지 알까. 성호르몬이 뭘 모른다는 걸까. ‘너는 몰라’라는 발화엔 성호르몬의 인생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는 오만함이 깔려있다. 내가 이해한 네 인생을 보건대 너는 내 고통을 몰라. 그런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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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 너나 서로의 인생을 모른다. 그러니 ‘모른다’란 문장을 쓰려면 ‘나는’이란 주어로 시작해야 한다. 네 삶이 뻔히 보인다는 식의 ‘너는’ 말고, 모를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전제한 ‘나는’이어야 한다. 우리가 타인에 대해 아는 건 우리에게 보여주는 단면일 뿐이다. 보여지는 모습과 삶 뒤에 타인이 어떤 얼굴을 감추고 있을지는 그 사람 본인만 안다. 성호르몬과 나도 그 형과 다를 게 없었던 거다. 우리는 그런 대화를 주고받으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나는 이런 대화를 나눴다는 것조차 잊은 채 또 다시 누군가의 삶을 재단했다.

   

같이 아르바이트 하는 이들과 밥을 먹었다. 나는 키드밀리 성대모사를 보여준답시고 헛소리를 지껄였다. 쓰읍, 텁 샤라웃 투 코쿤, 사랴웃 투 팔로, 샤라웃 투 인디고 하이어 뮤직 쓰으읍 에이! 또 다시 다른 이들은 어쩔 줄 몰라했고 나는 그 표정을 곱씹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 크하하하하하하핰


화제가 한강에서 실종된 의대생 이슈로 넘어갔다. 술자리를 같이한 친구가 의심받는 때고, 언론이 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들쑤실 무렵이었다. 나는 술기운에 제 몸 못 가눠 죽은 사고인데 왜 가해자를 찾아 짓밟으려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 이슈를 다루는 언론의 태도도 지적했다. 의대생이 죽을 때 평택항에서는 청년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죽었다, 그런데 언론은 의대생 사건만 다룬다. 사회적으로 어떤 이슈가 환기돼야 하는지 의제 설정을 제대로 못하는 현실이다, 의대생은 ‘의대생’이라서 언론이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회사에서 노동이슈를 몇 차례 기사화했던 나는 그 때가 생각나 열변을 토했다.


피식. 같이 있던 ‘원슈타인 팬’이 웃었다. 니가 그런 말을 할 줄 몰랐다는 듯한 웃음이었다. 나는 퍽 기분이 나빠져 입을 다물었다. 그래. 재단 당하는 건 이런 기분이었지. 이렇게 더러운 기분이었지. 원슈타인 팬이 웃은 이유는 매장에서 헛소리만 늘어놓는 이가 진지하게 굴어서였다. 그가 재단한 ‘나’는 삶에서 진지한 태도를 가져 본 적 없는 이였을 거다.


모든 잡담이 그렇듯 금방 다른 이야기로 회전됐다. 왜 아르바이트를 하냐는 물음이 부상했다. 누군가는 용돈을 벌고 싶어서였고, 누군가는 부모님께 손 벌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원슈타인 팬은 이른 때부터 자립할 필요 없다고 했다. 지원 받을 만큼 지원 받고, 오히려 늦은 나이라도 안정되게 자립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거였다.


나는 속으로 그가 우습다고 느꼈다. 오랜 기간 부모 터울에 있는 자신의 처지를 변명하는 것처럼 들렸다. 서른 줄 까지 부모님이 학비 대줬으면 그렇게 합리화할 법 하지. 나는 그의 어린 속내를 알아챈 것 같아 기고만장했다. 실은 어린 속내를 알아챈 게 아니었다. 내 태도를 지레짐작한 그를 짓밟고 싶어 그의 인생을 재단하는 셈이었다.


나는 원슈타인 팬의 궤적을 알고 싶었다. 학교생활이 어땠냐고 질문했다. 외국에서 학교를 다닌 원슈타인 팬은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다. 무능함과 권태로운 감각에 휩싸여 몇 달간 방 밖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 말을 하면서 웃었다. 별 일 아니라는 듯이. 막연한 과거를 회상하는 것처럼.


역겨운 기분이 들었다. 내가 싫어지는 순간이었다. 내가 뭔데 그의 인생을 우습다고 여긴건지. 내가 뭔데 그의 삶이 잔잔한 흐름일 거라고 가늠한건지. 내가 뭔데 그를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생각한 건지.


‘이해’라는 단어도 곱씹어 본다. 너를 이해해. 네 생각 혹은 태도를 이해해. 뭘 어떻게 이해한다는 걸까. 내 삶과 네 삶이 일치하지 않는데 너를 이해하는 게 가능할까. 어쩌면 이해는 재단의 다른 말 아닌가. 네 생각 혹은 삶의 아주 일부분을 들여다 본 것 뿐인데 너를 이해한다고 말하는 건 기만 아닌가. 그래서 이해는 오해를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거 아닌가. 나는 요즘 이런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 또 다시 누군가를 재단하고, 이해랍시고 오해를 하고 있다. 내가 재단하고 이해한 이들에게 미안하다. 그래서 썼다.

 

 


 

 

난 너를 몰라 그걸 알아둬 부서져도 몰라 그걸 알아둬 

넌 나를 몰라 그걸 알아둬 소리칠지 몰라 그걸 알아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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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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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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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ㅅㅇ
    • 박성빈은 나도 재단하고 이해했나 조금은 궁금해지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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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저
    • ㅅㅇ박성빈은 당신이 전시회 보기를 좋아하는 예술가적 기질의 인간이라고 재단했지. 근데 곡예사 부르는 모습을 보고 아... 내가 함부로 재단했구나...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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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원
    • 항상 글의 소재가 신선하고 글이 신선해서 찐따 박성빈은 항상 챙겨보고 있어요. 저는 남을 쉽게 재단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자연스럽게 남을 재단하게 되요... 고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은 하지만 쉽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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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저
    • 리원매번 좋게 봐주셔 감사합니다...감동의 도가니탕... 저도 이렇게 반성하는 듯이 썼지만... 당장 어제만 해도 왜 그런지 모르겠다, 이해할 수 없다, 이런 문장을 남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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