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모든 시작은 불시착 - 마카담 스토리 [영화]

글 입력 2021.08.25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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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의 고리는 우주의 결혼반지다."

 

회색빛으로 가득하나 코코아 같은 온기가 가득하고, 잔잔하지만 강렬한 빛을 발하고 있는 영화 <마카담 스토리>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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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잿빛의 한 아파트를 비추며 막을 연다. 잿빛 아파트 주위에는 잿빛 하늘, 잿빛 도로, 잿빛 건물이 한가득 이다. 온통 잿빛으로만 둘러싸인 이 도시는 어딘가 차갑고 쓸쓸하게만 느껴진다. 그리고 웬일인지 아파트 내에는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여있다. 툭하면 제멋대로 고장 나버리는 엘리베이터 때문. 보다 못한 주민들은 손 놓고 있는 관리인 대신 엘리베이터를 직접 업체에 맡기기로 하고, 세대별 및 분기별로 수리비를 나누기로 한다.

 

사람을 7시간이나 가두기도 하며, 버튼에 손을 데게 할 정도로 말썽인 이 엘리베이터를 관리인이 나 몰라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아가 이들이 회색 지대에서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는 산업화의 흐름 속에서 도시 외곽에 지어진 저렴한 공공주택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배경이 언제인지는 정확히 가늠하기 어려우나 해당 작품은 곳곳에 산업화의 상징인 아스팔트가 생겨나고, 개발붐이 일던 1960년대~1990년대의 어느 시점을 통과하고 있는 듯 보인다. 영화 <마카담 스토리>의 원제가 ‘아스팔트’(Asphalte)인 이유다.


‘마카담’은 아스팔트의 또 다른 이름으로 18세기 중엽 유럽에서 아스팔트를 발명한 존 루돈 맥아담의 성을 따른 것이라고 하며 프랑스 단지에 있는 한 낡은 아파트의 애칭이기도 하다. 허름한 건물과 부실한 관리가 만들어낸 저렴한 아파트값은 당시 유럽으로 넘어온 이민자와 사회 내 노동자 계층을 자연스레 끌어들였을 터다. 아파트를 제외하고선 주위에 그 어떤 상업지대 건물도 찾아보기 힘든 이 회색 지대는 도시와 시골을 가르는 중간부에 놓인, 그 색깔만큼이나 흐릿하고 모호한 중립지대처럼 보이기도 한다.


디지털과 동떨어진 삶을 살았을 이들의 삶은 비교적 아날로그에 가깝다. 버스가 지나지 않는 거리에선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열쇠 수리공을 부르는 대신 잡화점을 운영하는 친구의 도움을 받으며 언어의 장벽 앞에선 열심히 손짓해가며 힘겹게 상대방을 이해시켜야 한다. 그래서 <마카담 스토리>는 아름답다. 이들의 시대적, 경제적 배경을 단면적으로 나타내는 소박한 아날로그적 삶은 사람과 사람 간의 대면 소통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는 점에서 오늘날 수많은 디지털과 기기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더욱 애틋한 무언가로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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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영화의 배경으로 돌아와 모두가 고장 난 엘리베이터 수리비 분담에 찬성하는 가운데, 여기 슬쩍 반대표를 던지는 한 남성이 있다. 그의 이름은 ‘스테른코비츠’. 이유인즉슨 자신은 아파트 2층에 살기 때문에 평소 엘리베이터를 쓸 일이 전혀 없으니 돈을 내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다소 일리 있는 말이기도 하나 아파트 주민들과의 협동심이나 연대의식이 전혀 발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그가 아파트 내외로 그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는 은둔형 외톨이임을 예측해볼 수 있다. 주민들은 이 괘씸한 40대 독신남에게 그럼 수리비를 내지 않는 대신 앞으로 엘리베이터 사용을 금한다는 합의 내용을 전한다. 스테른코비치도 마지 못해 이에 동의한다.


그러나 세상살이가 어디 내 맘대로 돌아가던가. 주민 회의에서 불협화음을 만들어낸 벌을 받은 탓인지 스테른코비치는 불연의 사고로 다리를 다쳐 얼마간 휠체어를 타게 된다. 외출할 때마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할 수밖에 없는 그의 아슬아슬한 여정은 매일 밤 사람들의 눈을 피해 계속된다. 처음으로 무사히 집 밖에 빠져나온 그는 먹을거리를 사들기 위해 인근의 병원 자판기로 향한다. 집으로 다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던 그는 병원 뒷문에서 휴식을 취하러 나온 한 간호사를 마주하게 된다. 그는 처음 보는 간호사 앞에서 내심 잘 보이고 싶었는지 자신을 은둔형 외톨이로 소개하는 대신 유명 잡지의 카메라맨이라고 소개한다. 그렇게 매일 밤, 스테른코비치는 간호사와의 짧은 만남을 위해 병원 뒤편으로 향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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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른코비치와 간호사는 이 회색 지대에서 가장 먼저 드러나는 외로운 인물들의 단상이다. 스테른코비치는 주민들의 따가운 눈초리와 미움을 받을지언정 공동체의 연대를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몇십 년 세월을 혼자 살아왔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한 공동체 내에서 타인과의 소통이 부재하거나 특히 구성원 모두와 대립각을 세우는 위치에 있을 때 더욱 고독한 외로움을 느끼는 법이다. 그렇게 홀로 외로움에 맞서 살던 그의 앞에 기존의 공동체와는 동떨어진 인물의 간호사가 나타나자 스테른코비치가 신분을 속이고 유명인을 행세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신의 정체를 유일하게 알지 못하는 타인과의 소통을 절실히 붙잡기 위한 마지막 돌파구로서 작동했을지 모른다.


매일 새벽 1시 즈음 병원 뒤편으로 담배 한 대를 피우기 위해 나오는 간호사도 그런 스테른코비치의 관심이 싫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극 중에서 드러나듯 그녀는 야간 근무가 응급실보다 힘들다고 말한다. 환자들이 모두 잠들어있기 때문에. 결혼 상대도 없어 집에 가면 반겨주는 이 없고, 말 상대라곤 직장에서 함께 생활하는 이들이 전부인데 하필이면 소리를 죽이고 근무해야 하는 야간 조라니. 그녀 역시 모든 환자가 잠들어있는 야밤의 적막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지새우며 분명 마음 한구석 외로움을 느끼고 있을 터였다. 매일 새벽 1시, 병원 뒤편. 짧은 시간이지만 그렇게 둘은 서로의 말 상대가 되어 내면의 외로움을 함께 해소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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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마카담 아파트를 통해 연결되는 3개의 이야기를 옴니버스식으로 전개해간다. 그 첫 번째가 야심한 밤의 엘리베이터 탑승에서 출발한 스테른코비치와 간호사의 이야기였다면, 두 번째는 대낮의 엘리베이터 고장으로 맺어진 두 사람의 인연을 그린다. 10대 소년 샬리는 옆집에 새로 이사 온 중년 여성 ‘잔 메이어’가 또다시 제멋대로 구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자 이내 속옷 차림으로 뛰쳐나와 도움을 준다. 잔이 그의 속옷 차림에 부담을 느낀 건지, 엘리베이터 문을 퍽퍽 차는 모습에 놀란 건지, 아니면 원래부터 살가운 성격이 아닌 건지는 판명할 길이 없다만 그녀는 샬리에게 고마움의 인사조차 건네지 않고 조용히 집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러나 인연이란 때때로 끊을 수 없이 강력하고 신비로운 무언가다. 잔은 엘리베이터 사건에 이어 새로 이사 온 마카담 아파트와는 영 인연이 아닌 건지 이후 열쇠로 집 문이 열리지 않자 문 앞에 털썩 주저앉는다. 이를 집에 돌아오던 샬리가 발견하고선 두 사람은 또다시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하게 된다. 그렇게 열쇠공 친구가 도착할 때까지 잔은 샬리의 집에 잠시 초대받는다. 소파에 앉아 서로의 이름을 주고받고, 가정사와 직업을 나누며 끝으로는 서로의 집을 방문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둘은 첫 만남에서 감돌던 어색함의 공기를 빠르게 지워나간다.


영화는 지속해서 어딘가 결핍되고, 그로 인해 외로움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을 비춘다. 샬리는 잔에게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고 하지만, 영화에서 샬리 어머니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잔의 상황도 그리 녹록지 않다. 한때 유명 배우였던 잔은 이제 동네 10대 소년조차 그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대중에게 잊힌 존재다. 어머니가 부재한 샬리의 경우와 대비되어 잔은 사랑하는 아들과의 소통이 부재한 상태다.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우리네 삶과 영혼처럼, 잔은 마카담 아파트에 오래 거주하지 않으리라고, 자신은 조만간 떠나갈 존재임을 암시하지만 결핍된 이들에게 한번 녹아든 타인의 온기는 결코 거부할 수 없이 강력한 것이기에 끝이 보이는 출발에도 둘은 매일 단단한 우정을 쌓아나간다. 샬리는 잔이 감독한 옛 흑백영화를 함께 보고, 잔이 출연하기로 다짐한 연극의 대본을 읽고는 직접 배역을 추천해주기도 하면서 함께 오디션 영상을 찍어준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서로의 존재조차 모르던 둘은 그렇게 서로의 부재에 대한 위로이자 꿈의 발판이 되어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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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이야기를 거쳐 영화의 배경은 별안간 잿빛 마을에서 우주로 확장된다. 나사(NASA)의 우주비행사로 활동하고 있는 ‘존 매켄지’는 급작스러운 사고로 엘리베이터가 유독 말썽인 이 잿빛 아파트에 불시착하게 되고, 마카담 아파트 꼭대기 층에 있는 ‘하미다’의 집에 들어가게 된다. 영화는 – 신의 기계적 출현을 의미하는 - ‘데우스 엑스 마키나’ 형식을 취함으로써 하늘에서 옥상으로 우주선이 불시착하는 장면을 재치 있게 그려낸다. 영화 <매그놀리아> 속 개구리 비도 이러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전형 중 하나이다. 하미다는 프랑스에 이민 온 알제리 출신의 노년 여성으로 매켄지가 나사와 긴밀하게 통화하고 있을 때도 계속해서 그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본다. 불어를 쓰는 그녀와 도통 대화가 통하지 않을뿐더러 아랍인인 하미다가 미국인인 그에게 거듭 부담스러운 관심을 보이니 매켄지는 하루빨리 나사가 자신을 구조하러 이 잿빛 마을에 나타나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이들 역시도 줄곧 홀로 지내오던 이들이 분명하다. 매켄지는 우주 유영 내내 작은 우주선 내에서 단독으로 생활하고, 운동하고, 요리하며 시간을 보냈다. 타인과의 만남이 영화에 등장한 그 어떤 이들보다 더욱 극적으로 차단된 상황에서 매켄지는 그 무한한 적막과 고요함을 견디며 혼자에 익숙해 왔을 터였다. 하미다의 경우 유일한 가족인 아들 마지드는 무슨 연유에선지 감옥에 있다. 그녀는 아들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서 습관처럼 면회장으로 향한다. 그렇게 한 지붕 아래 며칠간 함께 살게 된 매켄지와 하미다. 비록 서로의 언어는 통하지 않지만, 음식을 나누고 즐겨 보는 드라마를 공유하며 손짓으로 예기치 못한 충격 스포일러(?)까지 건네주는 과정을 통해 점차 서로를 향한 신뢰와 우정이 두터워진다. 영화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피어나는 웃음꽃과 유머의 현장을 관객에게까지 따뜻이 건네준다.

 

“자네가 참 좋아”라든지, “모두 잘 될 거에요”라든지. 어쩌면 타인 앞에서 쉽사리 입을 떼기 힘든 솔직담백한 말도 서로에게 털어놓으며 당신을 위로하고 보듬는다. 비록 언어는 알아듣지 못했을지언정 그 진심 어린 눈빛과 표정만으로 충분히 마음이 전달됐으리라. 첫날 온종일 나사로부터의 전화만을 기다리던 매켄지는 이제 멀리서 울려대는 벨 소리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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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담 스토리>가 여타 영화보다도 유독 따뜻하게 다가왔던 것은, 현대 사회의 그 어떤 최신식 기기조차 철저히 배제한 채 구시대의 향을 잔뜩 머금은 아날로그적 방식을 고수함으로써 서로의 외로움을 보듬는 과정을 일상처럼 담담히 그려내고 포착했기 때문일 테다.


아픈 다리를 이끌고 기어코 병원으로 달려가는 스테른코비츠의 모습, 이내 간호사에게 자신은 카메라맨이 아니며 필름 카메라에 필름도 없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장면, 매켄지가 비로소 집을 떠나야 할 때가 오자 그에게 쿠스쿠스를 챙겨주는 하미다, 그런 하미다에게 자신의 우주비행사 뱃지를 건네주는 매켄지, 그리고 한때 배우였던 잔이 다시 재기할 수 있도록 조언하고, 충고하고, 끝내 카메라를 들어 같이 연기해주는 샬리까지.


영화에 등장하는 이들은 끊임없이 서로를 마주하고, 마주 앉고, 마주 본다. 서로를 향한 애정과 헌신의 마음은 줄곧 카메라나 쿠스쿠스, 영화 등의 매개체를 통해 드러난다. 한편으로 매켄지는 하미다 집에 머무르며 거듭 고장 난 싱크대를 고쳐보려 애쓰지만, 떠나는 날까지 싱크대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그가 아무리 막아보려고 한들 싱크대 밑으로 계속해서 새어 나오는 이 애석한 물은, 어쩌면 하미다를 이내 떠나야만 하는 매켄지의 섭섭함과 애틋함, 슬픈 마음을 오롯이 대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카담 스토리>는 쓸쓸한 잿빛 색의 계절이 다가올수록 다시금 꺼내 보고 싶은 영화다. 엘리베이터와 카메라, 불시착 우주선 등의 우연한 계기로 맺어진 이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자면 추운 날에도 자동으로 마음이 따뜻해지고, 잿빛 가득한 영화 속 배경에서도 엄청난 온기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어둠 뒤에는 위대한 빛이 있어요’라는 극 중 대사처럼, 외로움의 장막 속에 사는 우리가 우주 속 티끌만큼이나 빛을 내는 순간은 결국 타인을 만나 함께 온기를 나누는 때가 아닐까. 외로운 인간상 속에서 피어나는 따뜻함으로 단단히 무장한 영화, <마카담 스토리>를 당신에게 건넨다.

 

 

[윤아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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