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익숙한 정크가 모여 만들어내는 삶에 대한 근본적인 고찰 - 연극 '포맷_FORMAT'

어쩌면 우리에게도 ‘포맷’이 필요하다
글 입력 2021.08.18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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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 없이 움직이는 것들에 대한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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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편리와 편익을 위해 만들어진 로봇들, 그들이 사는 세상은 아이러니하게도 인류가 모두 사라진 세상이다. 인류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인간을 위해 일하는 로봇들과 그런 로봇들을 감시하는 로봇 경찰 L.S.T가 겉으로 잔잔한 것만 같은 평화를 유지하고 있는 그곳이 연극 <포맷>의 배경이다.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행성을 찾기 위해 위성으로부터 데이터를 받아 정리하는 일을 맡고 있는 ‘쿠라쿠라’는 어느 날 여태까지 기계적으로 해오던 자신의 업무에 처음으로 질문을 하게 된다. ‘인간들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을 위한 행성을 발견한다는 것이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거지?’ 여태까지 떠올린 적이 없었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당연한 질문이었다.


쿠라쿠라를 비롯한 로봇들은 알고 있었지만 외면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하루 종일 행하고 있는 업무에 어떠한 목적 의식도, 의미도 없다는 것을 말이다. 마치 관성처럼 태양 주위를 뱅뱅 맴도는 지구처럼, 그저 ‘해야할 일’, ‘당연한 업무’를 반복하던 그들에게 그것의 목적을 되돌아보고 무의미함을 음미하는 일은 어쩌면 스스로에게 너무 잔혹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L.S.T의 살벌한 감시와 ‘모든 로봇은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엄격한 규칙 속에서 애써 생각을 비우고 기계적으로 일해오던 로봇들에게 ‘포맷’은 혁명 그 자체였다. 그것은 여태까지의 삶을 부정하는 금기임과 동시에 역설적이게도 그들에게 채워진 족쇄를 풀어줄 유일한 탈출구였다.

 

 

포맷 사진 2.jpg

 

 

극중 펼쳐지는 로봇들의 고뇌와 포맷에 대해 갈리는 의견 차이를 접하고 있노라면 우리의 인생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뼈저리게 다가온다.

 

우리는 쉼 없이 어딘가를 향해, 또 무언가를 쟁취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오고 있지만 그러한 모든 노력들이 진정 무엇을 위한 것인지, 그것을 쟁취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져다주는지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극의 후반부, 로봇들이 하나 둘씩 포맷을 하고 자유의지를 가지게 되면서 강압적인 L.S.T에 맞서 싸우는 장면이 그래서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우리에게도 포맷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기계가 아님에도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무의미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 이면에는 L.S.T와 같이 이를 조장하고 ‘당연한 일’로 만들어 버리는 사회적 배경이 존재한다.


L.S.T에 정면으로 맞서 ‘능동적인 삶’을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로봇들의 모습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우리 인간이 추구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하게 흘러가던 일상에 의구심을 가져보고 ‘이것이 정말 내가 원하던 것일까?’라는 질문을 끝임 없이 던져보는 것이다.

 

 


공연장을 벗어나 일상으로 침투하는 연극


 

포맷 사진 1.jpg

 

 

이번 극을 관람하면서 극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살갗으로 다가왔던 이유에는 단연 이 극의 독특한 형식과 소재가 있었다.

 

연극 <포맷>은 극중 등장하는 다양한 ‘로봇’들을 ‘정크 아트’를 이용해 구현해내고 있다. 즉, 당장 우리가 살고 있는 주택 단지로 나와 분리 수거함을 들여다보면 눈에 띄는 폐품들이 모여 이 로봇들을 이루고 있다.


어떤 로봇은 고장난 카세트기를 몸체로 한 채 핸드폰 거치대 줄로 이루어진 집게발을 지니고 있는가 하면 어떤 로봇은 누군가가 내다버린 듯한 깡통에 버려진 우산 철대로 만든 발을 지니고 있었다. 누구나 봤을 법하지만 그 누구도 눈여겨 보지 않았을 일상의 ‘정크’들이 이렇듯 생명력을 지닌 채 개성 넘치고 각각의 사연을 가진 등장인물들로 탈바꿈한 것이다.


게다가 극 스토리를 구현해줄 수 있는 배경을 이루는 과정 또한 매우 독특했다. 배우들은 얼룩덜룩 색칠된 슈트케이스를 마치 병풍처럼 사용해 그 뒤에 몸을 숨긴 채 로봇들을 움직이는가하면 색색깔의 테이프를 들고 다니며 다리를, 강을, 도로를 만들기도 했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단순한 듯한 배경은 인류가 사라진 채 로봇들만이 공종하고 있는 먼 미래 어딘가를 상상하게끔 만든다.


이렇듯 우리의 일상 곳곳에서 시야의 맹점에만 자리를 차지하던 ‘정크’들은 극 중 등장인물로, 배경으로 나타나며 우리의 인식 그 어딘가를 자극한다. 그리하여 관객인 우리는 공연장 안에서 극을 향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공연장을 나서 일상의 ‘정크’들을 마주하는 순간들마다 극이 전하던 메시지를 떠올릴 것이고 극을 보며 느꼈던 감정을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합동 포스터 최종.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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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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