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안나: 죽지 않는 아이들 [드라마/예능]

잔인하리만치 순수한 아이들
글 입력 2021.08.14 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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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왓챠 구독료가 곧 빠져나가는데 이번 달은 뽕을 뽑았다고 할 만큼 본 게 없어 뭐라도 빨리 봐야 할 것 같았다. 몇 개 보지는 않았지만 왓챠에서 독점 공개하는 드라마들이 꽤 볼만했던 게 떠올랐고, 6월 30일에 공개된 이탈리아 드라마 <안나: 죽지 않는 아이들>을 보게 됐다.

 

처음 보는 이탈리아 드라마, 잘못 만들면 이도 저도 아닌 장르가 되어버리는 아포칼립스물. 과연 재미있을까? 의심 반 호기심 반으로 본 <안나: 죽지 않는 아이들>은 성공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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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모조리 죽었다"


이탈리아 시칠리아섬. 어른들만 죽이는 바이러스가 세상에 퍼지고, 아이들은 어른들이 없는 세상에서 또 다른 사회를 만든다. 엄마를 잃고 홀로 동생을 돌보며 살아온 안나는 어느 날 집을 비운 사이 동생이 사라져 망연자실한다. 안나는 악명 높은 '파란 아이들' 무리가 동생을 데려갔다는 걸 알게 되고, 동생을 찾아 나서지만 안나가 만나는 아이들은 천진난만해서 더 잔인하다.

 


한 편당 50분이라는 비교적 짧은 러닝타임에 총 6개 에피소드로 구성된 <안나: 죽지 않는 아이들>의 높은 흡입력과 빠른 전개는 시간 가는 것도 모르게 만들었다.


무슨 바이러스가, 어쩌다 유행하게 됐는지에 대한 설명은 최소한으로 한 빠른 전개는 안 좋게 말하면 불친절하다 할 수 있지만 아포칼립스물에서는 오히려 시청자들에게 위압감, 긴장감을 주는 장점이 된다. <안나: 죽지 않는 아이들>도 이런 요소를 잘 활용한 아포칼립스물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순수해서 더 잔인한 아이들


 

<안나: 죽지 않는 아이들>은 총을 쏘거나 칼을 휘둘러 유혈이 낭자한 장면은 없지만 옳고 그름, 도덕적 기준이 없는 아이들의 악의 없는 행동과 말은 너무 순수해서 더 잔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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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아이들의 우두머리인 안젤리카는 어릴 때 놀이에 끼고 싶어 하는 루차에게 들어오고 싶으면 높은 곳에서 뛰어 멀리 있는 밧줄을 잡으라고 독촉하여 결국 죽게 만드는데, 장례식을 가는 길에도 이런 옷은 나랑 안 어울리니 빨리 벗고 싶다는 둥 죄책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말을 한다.

 

어린 안나는 피 흘리고 죽은 사람 위로 넘어서 아스트로에게 줄 사탕을 가지러 가고, 엄마가 죽고 나서는 엄마가 죽기 전 남긴 공책에 쓰인 대로 시체가 팽창했다가 수축해서 뼈만 남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서랍에 있는 밧줄로 묶어 집 밖으로 끌고간다. 엄마가 묻어달라고 했던 숲이 아닌 집으로 다시 유골을 가져와 인체 해부도를 보며 두개골을 긁어내며 눈물조차 보이지 않는다.

 

안나가 아스트로를 구하러 파란 아이들 무리에 들어갔다가 몰래 빠져나가다 잡히고 안젤리카는 파란 아이들에게 안나가 술래인 술래잡기를 하자고 제안한다. 안나는 도망치다가 독사에 물리고, 아이들은 단지 놀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안나를 잡는다. 안나가 아파하자 간호를 해주던 아이들은 물에 흙을 타서 약이라며 먹이고 좋아한다.

 

안나가 기절하고 깨어나자 독사에 물린 팔에 글씨가 쓰여 있는데, 이 부분은 번역이 안 돼있어 무슨 소린 줄 몰랐다. 그런데 안젤리카가 들고 있는 톱과 그걸 보고 발버둥 치는 안나를 보니 절단한다는 문구가 쓰여있구나 그제서야 눈치챘다.

 

10대 청소년이 주인공인 드라만데 설마 자를까 싶었는데 진짜 팔꿈치까지 자른 걸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때까지 내가 본 드라마들은 다 자르려는 순간 누가 들이닥쳐서 말리는 게 대부분이었는데, 아포칼립스물 답게 꿈과 희망도 없는 게 너무나 잘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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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돼 있던 바이러스가 어른이 되면 온몸에 번지는 홍열을 가리기 위해 하얀색, 파란색 페인트에 전신을 담그는 파란 아이들은 기이하지만 아포칼립스물에 딱 맞는 비주얼이었다. 사실 우두머리인 안젤리카는 대유행으로 어른들이 죽고 나서 찾아온 루차의 오빠와 그 무리 때문에 파란색 페인트를 뒤덮어 쓴 거지만.


기이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데 한몫한 독특한 삽입곡과 회차 제목들은 좋았으나 상상의 한계가 있어서일까 내용도, 비주얼도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파란 아이들'의 비주얼은 <헝거게임> 시리즈 속 도시 캐피톨 시민들의 화려한 외양을, 재앙이 닥치고 살아남은 인류들 사이에서도 계층이 존재하는 부분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설국열차>를 연상시켰다. 6화 마지막 장면에서는 완전히 반대되는 내용인 <칠드런 오브 맨>이 떠오를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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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계속 극의 긴장감을 끌고 갈 줄 알았던 안젤리카가 5화 초반에 죽어버리고 안나가 파란 아이들 무리를 빠져나온 후부터는 시칠리아 섬에서 이탈리아 내륙으로 가려는 과정을 그려 초반보다 힘이 빠진 듯해서 아쉬웠다.

 

아역시절 안나와 지금의 안나를 비교해 보면 꽤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아직도 스쿠터를 타고 다닐 수 있는 기름, 바닥을 닦다시피 굴렀는데도 깨끗한 청바지와 뽀송한 안나의 얼굴, 닳지 않는 굽 있는 부츠 등의 설정 구멍이 자꾸 떠올라 힘들었다.


하지만 안나가 아스토르를 구하러 파란 아이들을 찾아갈 때 음식을 구하러 다니다 만난 피에트로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거절 당해도 눈물을 보이며 부탁하지 않고 그냥 돌아서서 혼자 구하러 가는 장면이 꽤 인상 깊었다.

 

뿐만 아니라 미디어 상에서 자웅동체를 쉽게 볼 수 없어서인지 어른이지만 죽지 않는 인물인 '어린 여인' 카티야를 자웅동체로 설정했다는 것이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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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유행 초기에

가장 많은 사상자가 나왔던 이탈리아에서

코로나19 전에 이런 드라마를 찍었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안나: 죽지 않는 아이들>은 마지막 화에서 이탈리아 내륙으로 가던 안나와 아스토르가 컨테이너선을 마주하게 되고, 그곳에서 한 가족을 마주치는 것으로 끝난다. 이대로 열린 결말을 내도, 이 이후의 상황을 이어서 시즌 2에서 다뤄도 다 납득이 갈 것 같은 결말에 원작이 너무 궁금해서 찾아보니 아쉽게도 우리나라에 번역본은 없는 것 같다.

 

시즌제 드라마는 제작에 꽤 시간이 걸려 시즌 2가 나오면 기억이 안 나 다시 봐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드라마는 도저히 다시 볼 자신이 없다. 까먹기 전에 다음 시즌 제작 소식이 들리기 바라며 글을 마친다.

 

 

[신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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