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펫로스, 가족을 떠나보내는 일 [동물]

할배가 가르쳐준 죽음에 대비하는 법
글 입력 2021.08.04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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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 유튜브 채널인 ‘22똥괭이네’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내 일상은 여전히 스물두마리의 랜선 고양이들로 시작되고,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한다. 고양이들은 너무나 엉뚱해서 예측할 수 없는 사고를 치지만 그런 점마저도 귀엽고 사랑스럽다.

 

하지만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는 말이 선뜻 나오지는 않는다. 싫어서가 아니라 책임질 자신이 없어서다. 고양이들은 자주 아프다. 밥을 잘 먹다가도 이유 없이 설사를 하고, 살이 빠진다. 그런가 하면 몸에 혹이 나거나 결막염이 오기도 한다.

 

사실 고양이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생명들이 그렇다. 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동물들의 이상함을 눈치 채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프기만 할까? 동물들은 기본적으로 인간보다 수명이 짧다. 물론 이런 것들을 감수할 만큼 즐거운 추억들이 많이 생긴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그렇더라도 함께 살던 동물이 세상을 뜬다는 것은 쉽게 이겨내기 어렵다.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는 내가 어째서 이런 감정을 알게 되었는가 하면, 바로 ‘할배’를 만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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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배는 ‘22똥괭이네’의 마스코트이자 최고령인 노묘다. 집사님과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할배는 작년 10월, 먼 여행을 떠났다.

 

할배가 세상을 떠난 날이 기억난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그렇게 슬프지 않았다. 나이를  먹었고, 많이 아팠었으니 언젠가 다가올 일이라 생각했다. 집사님의 무릎에 자리 잡고 누워 따뜻한 햇살을 맞는 마지막 영상을 보니 울렁이던 마음이 조금 잔잔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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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죽음의 순간이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의 기억이었다. 평소대로 흘러가던 어느 새벽에 문득 할배의 영상을 보았다. 그제야 갑자기 눈물이 났다. 할배는 내가 키우던 고양이도 아니었고, 직접 만나 체온을 나눈 고양이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보고 싶었다. 원래도 랜선으로 만나던 고양이였으니 영상을 보면 될 일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살아있는 할배가 그리웠다. 죽음을 슬프지 않게 달래줄 것 같던 영상들이 오히려 할배의 부재를 더욱 실감하게 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남의 고양이에게 ‘펫로스’를 운운하는 것이 우스울지도 모른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 슬픔에 경중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지만 랜선 집사인 나도 이리 슬픈데, 집사님은 어떨지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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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펫’을 넘어 가족이 된 반려동물들. 우리는 어떻게 그들과 더 나은 공존을 해나갈 수 있을까? 그들의 죽음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똥괭이네의 집사님은 할배를 떠나보낸 후, 나름의 방법으로 조금씩 죽음에 대비하게 되었다. 죽음에 대한 대비보다는 아쉬움을 남기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것에 가깝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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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남은 고양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즉각적으로 실천에 옮기게 되었다.

 

원래도 고양이들을 위해 아낌없이 베풀었지만 결단이 빨라졌다. 새로 이사 간 집에서 할배에게 햇볕을 쬐어주고 싶던 바람을 이루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 이사 후 고양이들을 위한 테라스를 만들었다.


또한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준비를 하게 되었다. 고양이들의 모습을 담아 피규어를 제작하고, 빗은 털을 뭉쳐 만든 털공을 보관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노력이 상실의 아픔을 100% 줄여줄 거란 보장은 없지만, 적어도 함께하는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해 더 나은 추억을 만들어 줄 것이라 생각한다.


똥괭이네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반려동물과의 시간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갓 태어난 아기 고양이부터 치매가 걸린 노묘까지.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다르지만 모두 각자의 현재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상실의 아픔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 주어진다는 것에 백번 동의한다.

 

그러니 죽음이 무서워 만남의 기회를 뿌리치거나 추억을 부정하겠다는 건 아니다. 할배를 비롯한 많은 생명들이 집사, 혹은 랜선 집사들에게 많은 위로와 행복을 가져다 준 것은 사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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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들과 함께하기 위해서 많은 생각이 선행되어야 하고, 많은 노력이 동반되어야 함을 잊지 말자.

 

세상의 모든 동물들이 아프지 않길. 먼 여행을 떠난 할배가 늘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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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연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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