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잔뜩 지쳤을 때 듣는 플리 [음악]

바닥에 드러누워 듣던 노래들. 그 시절 의식의 흐름과 함께 소개합니다.
글 입력 2021.07.24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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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런 날이 있다. 귀가 후 현관에 가방을 내려놓고 나면 외투도 못 벗고 바닥에 드러누워서 손 하나 까딱할 수 없는 날. 신체만큼이나 내면의 에너지도 바닥난 날. 씻고 잠들어야 또 내일을 준비하는데 꼼짝할 수가 없다. 집에서 몇 시간 자고 나면 내일 또 같은 하루를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피로 위에 또 피로를 얹는다. 하지도 않은 일에 벌써 지친 기분. 정신력도 체력이라더니 맞는 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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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 아래 할 수 있는 건 쥐죽은듯이 누워 음악을 듣는 것뿐이었다. 그나마 음악을 들을 힘과 심심함이 남아 다행이었다.

 

고단한 하루가 지나며 내가 소진됐지만 사실 내 안에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니었다. 잔뜩 뭉쳐진 감정들이 있었다. 뭔가 여러 가지 감정이 섞인 것 같은데 불투명한 채 굳어진 감정 덩어리는 그 속을 들여다 보기 힘들었다.

 

그걸 몇 곡의 노래를 들으며 굳이 풀어낸다는 생각 없이 풀어냈고, 해소한다는 의식 없이 해소했다. 그 시기 자주 들은 노래들은 어느새 하나의 묶음이 되었고, 나름대로 재생 순서를 고심한 시간까지 더해지니 하나의 플레이리스트(이하 플리)가 되었다. 이번에는 그 중에서 일부인 여섯 곡을 한 편에 세 곡씩, 총 글 두 편에 걸쳐 소개해볼까 한다. 업무에서건 일상 속 고민에서건 저마다의 ‘퇴근’ 후 바로 쉬지도 못할 만큼 지친 날에 이 리스트 속 노래들이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1. Alexander Jean – Whiskey and Morphine ; 피로에 취해보기


 

 

 

너무 지쳤을 때는 늘어져 있어도 몸이 긴장되어 있다. 제대로 쉬지도 일어나지도 못하는 상태. 이런 날에 어려운 음악은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밝은 곡이 잘 와닿지 않는 시점이지만, 그렇대고 해서 외로움을 너무 자극하는 노래도 사절. 기운만 더 빠지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역시 저절로 분위기에 젖게 만드는 노래가 좋다.

 

알렉산더 진의 〈Whiskey and Morphine〉은 어떤 상황에 들어도 주의를 끌게 되는 곡이다. 피로에 찌들어 있어도 가물가물한 내 정신 상태를 넘어 소리도 아니고 ‘노래’가 들어온다. 그런 힘이 있는 곡이다. 권태로운 간주부터 듣는 사람을 사로잡는다.

 

지쳤는데 ‘분위기 있게’ 지친 느낌이다. 노래 속 화자들은 뭘 잊고 싶은 건지 위스키와 모르핀을 들이붓고 있고, 잔뜩 취해서 계단에서 울렁거림을 느끼고, 아무것도 없는 데서 걸려 넘어진다. 그래도 내일이면 이 짓을 반복할 거란다.

 

 

I’ve got whiskey and morphine

Rushing through me

The stairs are moving quicker than I’m running

And I’m tripping over absolutely nothing

Thanks to whiskey and morphine

 

 

바로 다음 날이면 바로 머리가 깨질 듯 아플 텐데 어쩌려고 저럴까. 그런 걱정도 잠시, 어차피 노래 안에서라면 뭐 어떻냐는 생각도 든다. 아, 이미 머리 깨질 듯이 외롭고 슬픈 사람도 있나 보지. 술 한 잔 안 마시고도 온몸이 다운되어서 어쩔 줄 몰라하는 사람도 여기 있는걸. 나는 왠지 그들을 이해하며, 혼성 듀오 알렉산더 진의 목소리로 마련된 퇴폐미 어린 도피에 기대어 본다. 그렇게 물먹은 솜같이 무거워진 몸에서 청각이라도 건져 내 가라앉은 신경줄을 위로 띄워 본다.

 

 

I’m high

And there’s no coming down

 

 

묘하게 붕 뜬 상태에서야 지친 상태를 고스란히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피로감을 매개로 〈Whiskey and Morphine〉의 스타일리시한 피로와 현실도피를 가져와 취해본다. 왜, 사람들은 다들 조금씩 컨셉 잡고 살아가잖아. 외롭고 기운 없어 죽겠는데, 이 노래의 멋을 내 피로에 입혀 두는 게 뭐 어때서. 그렇게 몰입과 자기 응시의 기묘한 균형 상태에 있다가 노래의 끝에 가면 매번 같은 생각을 한다. 이런 노래는 어떻게 만든대.

 

 

 

2. 실리카겔 – 9 ; 뭉쳐진 감정들을 둥둥 띄워 보내기


 

 

 

시작부터 강하게 치고 나오는 연주가 이전 곡에서 받은 알딸딸한 느낌을 한번 깨워준다. 그렇다고 사람을 바로 기민하게 만드는 노래냐면 그렇지 않다. 외려 몽롱하다. 부유하는 사운드는 영상과 합쳐지면 한층 몽환적인 느낌을 자아낸다.(실리카겔에는 다섯 명의 연주자와 두 명의 VJ가 정식 멤버로 있는 만큼 음악과 영상이 별개의 작품이 아니다.)

 

사실 <9>는 다소 황당한 요청을 하고 추천받은 노래였다.

 

“요즘 가사에 휘둘리는 게 싫은데 그렇다고 아예 가사 없는 음악만 듣고 싶진 않아요. 가사 잘 안 들리는 노래 있을까요?”

 

지금 생각해도 그런 걸 물어본 내가 조금 당황스러운데 그때는 정말 그런 노래를 모아 듣고 싶었다. (질문받은 분도 당황하셨다) 그때 추천받은 곡 중 하나가 실리카겔의 <9>였다. 실리카겔이라는 밴드를 이때 처음 알았다. 그리고 이 곡에 반했다.

 

가사가 잘 들리지 않는 이유는 작사 의도 때문이었다. 의도적으로 의미 없는 가사를 쓰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가사를 보면 의미 불명의 비슷한 문장이 내내 반복된다.

 

 

점은 점과 함께 던져 버렸고, 잔은 잔과 함께 던져 버렸고,

경은 경과 함께 던져 버렸고, 달은 달과 함께 던져 버렸고, 

꽃가루-

 


몽롱한 가사와 음률, 그리고 영상을 감상하다 보면 하루 종일 꽉꽉 눌러 담아서 무겁고 단단해진 묵은 감정들이 <9> 특유의 부유하는 사운드를 타고 조금씩 너르게 흩어지는 효과가 있었다. 해결된 것도, 사라진 것도 아닌데 묘하게 숨이 가벼워진다고 해야 하나. 딴딴하게 뭉쳐 있던 감정들이 조금씩 성글어지며 작은 덩어리로 나눠지기 시작한다. 그것들을 <9>의 수면 위에 고무 오리처럼 하나씩 둥둥 띄워 흘려보내 본다. 해소의 시작인 셈이다.


 

너는 나와 함께 던져 버렸고,

나는 너와 함께 던져 버렸고, 

(...)

꽃가루- 꽃가루-

 

 

 

3. Charlie Haden – El Ciego (The Blind) ; 정제된 서러움을 본받아


 

 

 

세 번째 곡은 너무나 유명한 재즈 뮤지션이자 베이시스트인 찰리 헤이든이 쿠바의 피아니스트 곤잘로 루발카바와 협업한 앨범 〈Nocturne〉의 수록곡이다. 찾아보니 앨범 자체로 음악 장르와 사회 운동 측면에서 할 얘기가 많은 앨범이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내 플리 안에서의 〈El Ciego〉에 대해 얘기할 것이다.

 

세 번째 곡에서는 찰리 헤이든 특유의 서정성과 세련된 연주가 새로운 공감을 자극하고 긍정적인 긴장을 부여한다. 〈El Ciego〉는 장르적으로도, 곡이 발표된 시기 상으로도 앞의 두 곡과는 사뭇 다른 곡으로, 이 플리 안에서 일종의 ‘전환’을 담당하고 있다.

 

〈El Ciego〉의 차례가 오면 나는 심리적으로 정돈되는 느낌을 받는다. 설운 마음이 위로를 받기 때문이다. 들을 때마다 곡의 밑에 어쩐지 서러움이 깔려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야상곡이라는 의미를 가진 앨범 이름과 The Blind라는 곡의 부제에 걸맞게 저물어버린 날에 대한 아쉬움과 헛헛함이 앨범의 다른 트랙보다 강하게 드러나는 듯하다. 현악기의 쓰임이 어딘지 서러움의 정조를 두드러지게 만든다. 현을 활로 긁듯이 내는 소리가 특히 그렇다.

 

물밑에 깔린 그 정서가 언뜻언뜻 비쳐 드러날 때, 나는 왠지 모를 반가움과 공감을 느끼며 위로를 받는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와 비슷한 이야기를 가진 사람과 만나는 반가움과 비슷하다. 서러움을 듣게 되는 것만으로 위로가 된다.

 

〈El Ciego〉가 내게 건네주는 것은 위로만이 아니다. 이 곡은 이미 감정의 승화를 이뤄낸 결과물이므로, 그 자체로 내게 감정을 다루는 하나의 방법을 보여준다. 플리의 첫 곡이 피로와 외로움을 퇴폐미의 영역으로 변환했다면 이 곡은 서러움을 세련되게 들려준다. 덕분에 내 안의 설움도 더 어두운 상태로 가라앉지 않고 정제되길 택한다. 이 곡의 효과 때문에 어떨 때는 예술과 아름다움의 가치는 바로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앞서 〈El Ciego〉에서 새롭게 얻는 것으로 공감과 긍정적인 긴장감을 언급했다. 여기서 긴장감이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앞의 두 곡과 다른 장르의 형식에서 오는 미적인 긴장감이다. 쿠바 볼레로라는 장르를 이 앨범으로 처음 들었다. 다른 하나는 마음 안에 새롭게 질서가 생겨나는 것에 대한 긴장감이다. 써 놓고 보니 거창한 느낌이지만 크게 무겁고 촘촘하며 진지한 질서는 아니다. 비로소 자기 외부의 것을 안에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인데, 설명하기 어렵지만 나는 이것을 ‘안에 새롭게 질서가 잡혀간다’고 느낀다.

 

***

 

〈Whiskey and Morphine〉의 퇴폐적이고 권태로운 분위기, <9>의 몽롱하고 부유하는 느낌에서 심리적인 자유를 얻었다면 〈El Ciego〉에 이르러 조금씩 마음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한다. 아직 완전히 말끔한 기분은 아니어도 서러움이 차츰 비워지며 마음 한구석이 조금 가벼워진 덕분이다.

 

딴딴하게 굳어져 사람이 어찌할 바를 모르게 했던 감정 뭉치의 내핵에 서러움이 있음을 깨닫는다. 무엇에 대한 서러움일까? 사실 그 원인은 때마다 달랐으니 쉬이 답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이 세 곡을 듣는 동안 내 마음에 빈 곳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 안에 다른 것이 들어올 수 있는 곳. 네 번째 곡부터는 가사가 내 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그렇게 곡의 메시지를 흡수하기 시작한다. 자신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을 노래에서 찾을 수 있게 된다.

 

 

to be continued...

 

 

[신성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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