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동인도 회사와 대영제국의 시작은 해적? - 인류 모두의 적 [도서]

글 입력 2021.07.19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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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효과는 작은 차이가 큰 변화를 일으키는 현상을 가리키곤 한다. 이를테면, 중국 북경 나비의 날갯짓이 여러 연쇄 작용을 거쳐 지구 반대편에 커다란 폭풍우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만약 이러한 나비효과가 기상뿐 아니라 그동안의 역사를 설명할 수 있다면?'이라는 호기심이 든다면 스티븐 존슨의 책 <인류 모두의 적>이 아주 흥미롭게 다가올 것이라 확신한다. 저자 스티븐 존슨 또한 한 사람이 전체적인 역사의 흐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저자 스티븐 존슨은 책 제목대로 '인류 모두의 적'으로 불렸던 해적, 헨리 에브리가 바로 동인도 회사와 대영제국의 탄생이라는 거대한 사건을 불러일으킨 나비라고 주장한다. 아무리 그 당시에 명성과 업적이 어마 무시했다 하더라도 해적 한 명이 동인도 회사의 인도 식민지화를 촉발했다고 주장하다니 터무니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당시의 사회적 배경과 해적 활동에 대해 면밀히 전달하며 독자가 책을 읽는 동안 그의 주장에 설득 당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필자 또한 초반에는 미디어에서 그려지던 해적의 모습을 떠올리며 저자의 주장을 터무니없다고만 생각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꽤나 두꺼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즈음엔 '그럴 수도 있겠네' 하는 수긍하는 동시에 마치 그 시대를 살았던 것처럼 면밀하게 조사하고 기술한 저자의 집요함에 대한 존경을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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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무굴 제국의 앞바다에서 헨리 에브리가 이끄는 펜시호가 황실의 보물선을 약탈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펜시호와 대치하는 순간, 황실의 보물선에 있던 대포는 마침 고장이 나 폭발을 일으키고 펜시호가 쏜 대포는 보물선의 돛대를 정확히 맞춰 큰 충격을 가한다.

 

이 확률적으로 희박한 사건이 동시에 일어난 덕분에 펜시호는 황실의 보물선을 약탈할 수 있었다. 이에 무굴제국의 아우랑제브 황제는 크게 분노했고 이후 에브리와 다른 해적들에 대한 세계적인 수배령이 떨어진다.

 

저자는 인도양에서 있었던 이 순간을 모래시계의 중심점으로 비유한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중심점을 기준으로 허리 위쪽에는 이 특별한 순간을 가능하게 해준 일련의 사건들이 존재하고 허리 밑쪽에는 이 일로 인해 전 세계에서 연쇄적으로 발생하게 된 사건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허리 위쪽 사건들에 해당하는 과거로 거슬러 가 일등항해사였던 헨리 에브리가 해적이 되는 과정 및 그가 해적으로 활동하며 남긴 수많은 범죄 행위들에 대해 다룬다. 이 내용의 대부분은 훗날 치러진 재판 기록을 참고한 것으로 보이는데 마치 저자가 직접 그 장면을 목격한 것처럼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어 이 책이 역사서인지 소설인지 순간 헷갈릴 정도였다. 해적들의 잔인무도하고 자극적인 사건들에 저자의 뛰어난 필력이 더해져 빠른 속도로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물론, 그 사이사이에는 나비 효과의 사건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뒷받침하는 근거가 녹아 있다. 사람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끈 해적들의 무용담과 타블로이드 미디어의 번영, 민주주의 및 평등주의와 연결되는 해적들의 의사 결정 방식, 그리고 보물선을 훔친 에브리를 잡기 위해 아우랑제브 황제가 동인도 회사의 설립과 파견을 허락하며 시작된 식민지화와 마지막으로 미국의 탄생까지. 자칫하면 해적 한 명의 전기로 끝날 수 있었던 이야기를 저자는 여러 역사적 사건과 연결 지으며 거대한 흐름으로 끌고 나간다.

 

분노한 아우랑제브 황제는 동인도 회사에 인도양의 자국 무역선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승인한다. 동인도 회사는 점차 인도 제후들의 땅과 징수권을 회수하며 이렇게 얻은 권력의 범위를 확대시키고 인도 식민지화를 본격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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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황제의 분노를 사 인류 최초의 국제 현상수배범이 된 헨리 에브리는 펜시호를 처분하고 음지로 사라진다. 그와 함께 활동했던 해적들 중 영국으로 돌아온 일부는 결국 혐의를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헨리 에브리의 행방은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그저 재판을 받았던 해적들의 몇몇 증언에 기대어 그의 행적을 짐작할 뿐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했던 것처럼 그가 어디에서 어떻게 생을 마감했는지도 알아낼 수 없었다.

 

마치 소설 같지만 그 사이의 역사적 사건들은 너무나도 명백한 현실이라 책을 덮은 후에도 해적에 대해,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중심인 헨리 에브리라는 인물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이나 애니메이션 등으로만 접했던 상상 속 존재의 실상을 파악하게 되자 꽤나 충격적이기도 했다.(저자 또한 해적을 영웅화하지 않고 그들은 명백한 범죄자라고 명시해두었다. 세계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며 그들을 영웅화하는 맥락으로 서술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그들의 만행 또한 기술한 부분에 있어 이 책이 소설과의 차이점을 지닌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모든 사람들이 미스터리를 접했을 때 그러듯 과연 헨리 에브리는 어떤 말년을 보냈을까 나름의 결말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한글로 헨리 에브리나 해적에 대해 검색했을 땐 별로 정보가 없었던 반면 확실히 영어로 찾았을 땐 헨리 에브리에 대한 꽤나 다양한 글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비교적 최근인 2021년 4월까지도 미국 뉴잉글랜드에서 발견된 아랍 은화를 근거로 헨리 에브리가 사라지기 전 미국에서 지냈을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기사가 났었다. 우리에겐 익숙지 않은 존재이자 인물이었지만 '해적왕'이라는 별명답게 서양권에서 이 인물이 지닌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해적왕 헨리 에브리의 이야기와 거대한 세계사의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며 저자가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는 간결하고 명확하다. 나비효과처럼 사소한 개인과 그가 행하는 일이 거대한 흐름의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대게 거대한 흐름을 되짚고 이해하고자 할 때 거대한 시스템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미처 신경 쓰지 못할 수 있는, 혹은 그 중요성을 간과할 수 있는 한 개인의 이야기를 면밀히 살피고 그의 행적에서 기인해 남들과는 색다른 관점으로 이 거대한 세계사를 풀어낸 저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영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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