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기타 치는 아저씨 [사람]

청춘을 그리며
글 입력 2021.06.21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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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앞에는 주택의 계단에 앉아 기타를 열심히 치는 아저씨가 있다.

 

이어폰을 꽂고 앞에 악보를 펼쳐놓고는 주위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기타를 치신다. 언제부터 시작된 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이곳에 이사 온 2년 전 아주 초반부터도 그러셨던 걸 어렴풋이 생각난다.


성인이 된 이후부터는 여러 두려움에 시달렸다. 취업이 안 되면 어쩌나, 내가 사랑하는 친구가 순식간에 날 떠나 버리면 어쩌나, 학자금 대출은 어떻게 갚아야 하느냐는, 여러 생활의 흔적이 묻어 있는 잔걱정들. 어렸다면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들이 대부분이었고 컸으니 응당 받아들여야 하는 것들이 전부였다.

 

근데 그 와중에 가장 무서웠던 건 세월이 나를 아예 다른 사람으로 만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었다. 작은 것에도 울컥 화가 나고 눈물이 나는, 각진 내가 세상의 풍파에 깎여 점처럼 작아지는 건 아닐까 싶어 무서웠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예전 같으면 목소리 놓여 화냈을 일에 태연해지기도 했고 볼 때마다 눈물이 흘렀던 영화의 한 장면에는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덕분에 다음 날 쓸 체력은 비축됐지만, 내가 어딘가 고장이 났나?란 마음은 지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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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약 17년 전 종영한, 내가 사랑하는 미드 <프렌즈>가 다시 모여 새로운 에피소드를 찍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드라마 방영 이후 미국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주목한 각 배우는 하늘 높이 치솟는 유명세를 누렸다. 각자의 아름답고 멋진 20대가 담겨 있는 드라마는 볼 때마다 ‘청춘’이란 단어를 입 안에 굴리지 않을 수 없게 했다.

 

방영 이후 그들은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갔다. 누군가는 여전히 톱스타 반열에서 연기를 하며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지만, 한 배우는 많은 기대에도 불구하고 커리어 실패로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다. 또 어떤 배우는 종적을 감추고 사라지기도 했고.

 

하지만 모든 공통점은 그들은 그들이 보여주었던 그 찬란한 청춘에서 점차 나이가 들어갔다. 주름이 생기고 절절한 사랑과 매 순간 장난기 넘쳤던 그들은 부모가 됐다. 길거리에서 말도 안 되는 장난을 치던 그들은 이제는 자녀들이 장난치는 걸 근엄한 표정으로 말리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청춘이란 단어를 입 안에 굴렸을 때, 오롯이 젊은이들만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나이가 들어서도 내면의 열정을 쫓는 게 나잇값 하지 못하는 사회가 되어 버린 만큼, 나이가 든다는 건 육체적 소진 그 이상으로 서글픈 일이 돼 버렸다. 주위 어른이 들으면, 꽃다운 나이에 뭔 청승이냐고 코웃음 칠지 모르겠지만, 고작 20대의 나 역시 내가 청춘을 모조리 빼앗긴 거 같아 억울한 마음을 지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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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내가 오고 가면 본 기타 아저씨는 행복해 보였다. 사실 오랫동안 시선을 두고 있으면 실례가 될 걸 알아 표정은 잘 기억이 안 난다. 하지만 슬픔과 행복은 결국엔 감출 수 없는 것이라, 그 아저씨를 지나가면 나는 행복의 냄새는 꽤 오랫동안 내 코끝을 맴돌았다.

 

나는 아저씨를 사적으로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어떤 이유에서 기타를 치기 시작했는지도 알지 못한다. 물론 그런 이유뿐만 아니라 성함조차 모른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어떤 영화가 가장 좋으셨는지도. 근데 단 하나, 아저씨는 기타를 칠 때 행복한 것 같고 그걸 계속한다는 건 명확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게 청춘이 아니면 나는 또 뭐가 청춘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의 기타 실력은 당장에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야 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음악에 식견이 없는 나지만 그래도 그 정도는 알아볼 수 있었다. 아마 아주 어렸을 적에 우리는 누가 보던, 잘한다는 칭찬을 듣던, 내 마음이 오롯이 시키는 일들을 사랑하고 엄마한테 등짝을 맞더라도 계속했을 것이다. 그 어린아이가 죽지 않았다면, 우리는 영원한 청춘에 있는 셈일 것이다.


나는 기타 아저씨를 만난 후에, 청춘을 떠올릴 때면 한 손에 기타를 쥔 채 이어폰을 꽂고 반쯤 감은 눈으로 열심히 기타를 치는 한 남성의 이미지를 같이 그리곤 한다. 한때 청춘에 멀어진 것 같아 노심초사했던 나는, 이제 그렇게 두렵지 않다. 꼬부랑 할머니가 돼서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두 손에 꽉 쥐고 있는 나를 상상하는 것도 이제는 어렵지 않다. 매일 같이 주저하며 클릭조차 하지 못했던 <프렌즈>의 새 에피소드 역시 볼 용기가 생겼다.

 

내 안의 아주 순진무구했던 어린아이는 여전히 나와 늘 함께하고 있었다.

 

 

[신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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