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린 연결되어있고 서로를 비출 거야, 각자의 빛을 잃지 않는다면! - 문스토리

삶이 과속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지구의 자전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이야
글 입력 2021.05.27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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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세상의 유에프오가 모두 거짓이라는 게 과학적으로 명백히 밝혀진다면, 지구 위의 인간들은 모두들 약간씩은 더 외로워질 것이다.

 

이석원, <보통의 존재> 중에서

 

 

당신은 UFO의 존재를 믿는가? 외계인의 존재를 믿는가? 나는 믿는다. 일단은 믿고 본다. 이 광막한 우주 속에 단지 우리뿐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보다는 불확실한 사실이라도 믿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달의 아이’가 존재하고, 그가 당신을 찾아온다면? 심지어 당신 또한 달의 아이이며, 달에서의 기억을 다 잊고 지구에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전한다면?

 

뮤지컬 <문스토리>에서는 ‘달의 아이’가 찾아와 한때 ‘달의 아이였던’ 우리 모두에게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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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달에 아이들이 많이 살았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달의 아이들'은 언제나 푸른빛의 지구를 동경했고, 매일 밤, 밤 하늘의 지구를 바라보며 소원을 빌곤 했다."

 

서울의 도심, 유령과도 같은 몰골의 전직 만화가이자 택시 기사인 '이헌', 택시를 몰고 도시를 질주한다. 그러던 중 한 남자를 치게 되고, 겁에 질린 나머지 자신의 단칸방으로 데리고 온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그 남자는 깨어나 자신의 이름을 '용'이라 소개하며, 자신은 달에서 왔다고 말한다. '이헌'은 그가 머리를 다쳤다고 생각하고 망연자실한다. 그 순간 '이헌'의 어릴 적 단짝 친구 '찬영'이 '린'이라는 이름의 여자(트랜스젠더)가 되어 나타나, 다짜고짜 '이헌'의 집에 함께 머물게 해달라고 떼를 쓴다. 그렇게 세 사람의 어색한 동거가 시작된다.

 

며칠 후 '오수연'이라는 만화잡지사의 여기자가 '이헌'을 찾아와 인터뷰를 요청한다. '이헌'은 '린'이 꾸민 일이라 여기고, 인터뷰를 냉정하게 거절한다. '수연'은 못내 아쉬운 듯 뒤돌아서며 뜻밖의 소식을 전한다. 그것은 7년 전 중단되었던 '이헌'의 만화 <문스토리>가 인터넷을 통해 웹툰으로 다시 연재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깜짝 놀란 '이헌'은 그녀의 스마트폰을 통해 그 사실을 확인하는데...

 

뮤지컬 <문스토리> 시놉시스

 

 

 

 

달에는 그리운 아이들이 산다. 달에는 성별이나, 나이가 존재하지 않고, 모두가 비슷한 모습으로 비슷한 생각을 한다. 그곳에는 차별과 배제가 없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한번 지구로 떠나온 달의 아이들은 다시 달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결국 달에는 황과 린, 용, 이름의 세 명의 아이만 남게 되고, 황이 가장 먼저, 그와 쌍둥이인 린이 그 이후에 달을 떠나게 된다. 용은 홀로 남아 달을 지킨다.

 

지구로 간 린과 황(이헌)은 고아원에서 만나, 서로에게 친구이자 가족, 연인이 된다. 황은 지구에 오면서 달에서의 기억을 모두 잊지만, 린은 기억한다. 린이 해주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황은 ‘문스토리’란 제목의 웹툰을 만든다, 그는 유명한 웹툰 작가가 되지만,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만화에 등장하는 린에 대한 온갖 억측과 루머들이 생성되기 시작한다. 지구로 오며 그들은 성별을 부여받았고, 린은 황과 같은 남성이었기 때문이다.

 

달의 이야기가 실제의 일이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믿어달라고 이야기하는 린, 홀로 남아있는 용에게 편지까지 보내는 그였지만, 황은 그런 그를 믿지 않는다. 린은 정신병원에 감금당하다 어느 날 달로 떠나야겠다며 창밖에 몸을 던지고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다.

 

린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황은 연재를 중단하고, 세상과 적당한 타협점을 찾으며 택시를 모는 택시 기사가 된다. 달에 남아있던 용은 린의 편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오자 그들을 찾으러 지구로 오게 된다.

 

 

 

달은 유토피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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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의 ‘달’이라는 위성은 사회가 제시하는 ‘정상성’이란 개념을 묻는 역할을 한다. 그곳에서는 성별과 나이가 없고, 그래서 어떠한 로맨틱한 감정과 성애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곳에선 모두가 동등하고 차별과 배제가 없다. 그러나 왜 지구로 간 사람들은 다시 달로 돌아오지 않을까.

 

 

사람의 일생을 그래프로 그린다면 아마 사람마다 다른 모양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아주 비슷한 모양의 사람과 비슷한 길을 잘 걸어갈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가 흔히 있는 일은 아니겠지요.

 

그래도 신기한 것은 너무 나란히 달리는 두 선은 절대 만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서로 많이 다르기에 겹칠 수 있는 선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윤덕원, <두 계절> 앨범 소개 글 중에서

 

 

지구에 간 사람들은 어쩌면 달에서보다는 괴로웠을 것이다. 완벽하게 동일한 그래프의 모양을 띄고 있는 사람은 사실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곳에서 사랑과 낭만이 존재함을 깨달았을 것이고, 아픔 못지 않게 행복했을 것이다. 사랑에 빠진 린과 황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이 다르기에 겹칠 수밖에 없는 선, 그 지점에서 맴돌며 너무나도 다른 서로의 눈을 바라봤을 것이다.

 

그러나 성 소수자인 린은 지구에서 소외되고 배제되었다. 보통의 사람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또한, 세상은 달의 기억을 가진 그를 ‘정신병자’로 매도한다. 정신병원의 독방에 갇혀 쓸쓸한 나날을 보내던 린은 달로 다시 가고자 창밖으로 몸을 던졌지만, 애초에 달을 떠나온 지구에서 황과 사랑하며 진정한 행복을 느꼈던 그가 달로 다시 되돌아가는 것이 진정 원하는 일이었을까. 과연 달은 유토피아일까.

 

극을 보는 우리는 모두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진정한 유토피아란, 모두가 같은 모습으로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배척하거나 극복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정상성’이라는 개념 자체를 소멸시키는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하여 존재론적 외로움에도 불구하고 무정형의 사랑을 지켜내는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들의 편지는 유서일까, 연서일까



 

가끔 내가 쓰는 모든 시들이 유서 같다가 그것들이 모두 연서임을 깨닫는 새벽이 도착한다

 

안현미, <불멸의 뒤란> 중에서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이야기가 전해졌으면 하는 것이 아닌가. 무언가를 비판하고 경종을 울리게 하는 글도 사실 무언가를 지키기 위함이 아닌가. 상처를 주는 글도 분명 존재하겠지만. 글을 쓰는 이들의, 특히 편지를 쓰는 이들의 가장 큰 목적은 누군가에 대한, 무언가에 대한 애정을 고백하기 위해서, 혹은 자신을 알아달라는 것에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닐까. 우리가 죽기 직전에 유서처럼 남기는 모든 글들은 사실 사랑하자는, 사랑받고 싶다는 연서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인간의 자아를 단순히 분류하자면 내면적 자아와 사회적 자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사회적 자아는 타인에게 기억되고, 그 기억이 자신에게 다시 영향을 미침으로써 형성되는 자기인식이다. 내면적 자아는 스스로 자기 존재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이다. 우리는 이 둘 중에 하나라도 없으면 제대로 살아갈 수가 없다. 그들의 기록물은 온전한 자아로 자립하기 위한 유서이고 연서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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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에서 황은 린의 기억을 지우고 싶어 한다. 그와 나눈 시시콜콜한 농담들, 일상적인 대화들, 과거 연재했던 ‘문스토리’에 대한 기억들. 그리고 린의 죽음. 자신을 괴롭혔던 기억들을 지우고자,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고자 그는 부단히 노력한다. 7년 동안 그렇게 홀로 초라한 골방에 갇혀 지내며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사실 그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였다. 바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것.

 

그는 자신의 웹툰 스케치들을 두 손에 그러모아 쥐고는 울부짖는다. “내 이야기를 들어줘. 내 이야기를 들어줘.” 그 말만을 되뇌던 그는 다시 고개를 들고 외친다. 그래, “나는 달의 아이야.” 자신을 설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웹툰 재연재를 선택한 것도, 결국 그 또한 누군가의 기억에서 잊혀지고 싶지 않은 마음과 자신의 이야기가 세상에 들렸으면, 누군가 그의 목소리를 들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을 것이다.

 

이는 린이 과거에 융에게 정기적으로 편지를 보내던 행위와도 일맥상통한다. 황은 웹툰이라는 수단으로, 린은 편지를 씀으로써 자신의 존재가 잊히지 않기를 소망한다. 누군가의 기억에서 잊힌다는 것은 곧 소멸이다. 극은 기억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우린 연결되어있고 서로를 비출 거야, 각자의 빛을 잃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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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의 삶이 너무 힘들고 지친 사람,

지구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적응하기 힘든 사람,

너넨 절대 이상한 게 아니야!

너희 같은 사람들이 지구에 아주 많이 있어.

너넨 달에서 온 특별한 사람들이야! 너넨 혼자가 아니야!“

 

뮤지컬 <문스토리> 중 융의 대사

 

 

이 장면에서 많은 이들이 눈물을 훔쳤다고 추측한다. 훌쩍이는 소리가 곳곳에 가득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어머니와 함께 연극을 봤는데, 평소 어머니는 멜로 영화나 힐링극은 왠지 눈물을 유도하는 것 같은 장면이 많다며 좋아하지 않으신다. 살기도 팍팍한데 억지로 눈물을 유도하는 장면에 더 울고 싶지 않다며. 누군가 우는 모습을 보면 눈물이 난다고 하신다. 같이 영화를 보다가 힐끔 옆을 보면 내 기준 그렇게 슬픈 장면이 아닌데도 입을 틀어막고 오열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기에, 쉽게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친구들과 있으면 필자가 가장 잘 우니, 기준은 높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그런 이유로 힐링극을 좋아하지 않으신다던 어머니도 극이 끝난 후 말씀하셨다. 이건 억지로 무리하게 감동을 전하는 극이 아니라고. 순연한 위안이라고.

 

삶이 과속인 것은 지구의 자전 속도가 너무 빠른 탓이며, 두 다리가 너무 무거운 것은 지구의 중력 때문이라고, 우리의 매일같이 지쳐있는 이유는 우리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 달의 아이기 때문이라며, 배우는 관객 한명 한명과 눈을 맞추며 이러한 선명한 위로를 전한다. 내 위치는 앞쪽이 아니었으나, 그가 나를 뚫어지게 응시하며 위로의 말을 전하고 있다고 느꼈다. 모두들 그것을 느꼈을 것이다. 극이 끝나고, 관객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기립하였고, 한참 동안 박수 소리가 이어졌다.

 

<문스토리>는 우리가 달의 아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황과 린, 융 셋 중에서 이 메시지 속 달의 아이에 부합 하는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린으로 느껴진다. 한국 문학과 출판, 로맨스 영화 등 여러 작품들에서 퀴어 서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몇몇 작품들을 제외하고는 ‘트렌스젠더’가 극 중에서 생명력을 부여받는 느낌은 크게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 극에서의 린은 트렌스젠더로 등장하며, 그의 소수성은 극의 전개를 위한 수단도, 다른 인물들을 위해서 이용당하지도 않았다. 역시 [소외된 자들을 토닥여주는 극]이라는 칭호에 걸맞은 극이라고 느꼈다.

 

외로운 사람들의 이야기, 그래서,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

 

 

“우린 연결되어있고 서로를 비출 거야, 각자의 빛을 잃지 않는다면.”

 

 

융은 달로 떠나며 이렇게 말했다. 펜데믹 이후로 소통의 부재에 대한 의견들이 여럿 제시된다. 관객이 원하는 메시지와 뮤지컬 개막의 시기적인 상황도 적절히 부합 한다고 느꼈다. 자신이 빛나는 존재임을 잊지 않고, 그 빛으로 서로를 비추며 존중한다면, 그것이 진정한 소통이며 연결이 아닐까.

 

우리는 모두 그 자체로 빛나는 존재들이며, 달에서 온 특별한 ‘달의 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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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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