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스스로의 정상을 향하는 과정 - Be 정상 展 [전시]

Be 정상, The right way to be right now
글 입력 2021.05.17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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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친구에게서 들은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친구는 취업 준비 중으로 어느 분야를 선택해야 할지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항상 친구를 만나서 꼭 하는 이야깃거리는 뮤지컬과 연극이었다. 이 주제로 대화를 할 때마다 열정에 가득 차 있는 친구의 눈빛에 나는 문득 궁금했다. 이렇게 좋아하는 분야가 명확한데 왜 그쪽 길로 가지 않느냐고 말이다.

 

친구는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선택한다면 삶의 숨 트일 공간이 없을 거라고 대답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는 그 말이 싫다고 말이다. 취미는 취미로 남겨두고 싶다는 말도 함께였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멍해졌다. 과연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선택하지 않아야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것일까?


예술가는 어떨까?

 

예술가라는 직업을 선택하더라도 생계를 위한 다른 직업을 구해야 한다. 이것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자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힘든 예술가의 길을 걸어가는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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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에 대한 대답은 아트스페이스 광교에서 진행되고 있는 [Be 정상] 전시회에 담겨있다.

 

[Be 정상]은 정상에 오르고 싶은 예술가와 아직 정상에 오르지 않은 예술가를 주목한다. 동시에 비정상적인 사회적 구조 속에서 예술가라는 직업을 영위하기 위해 요구되는 정상의 의미를 고찰한다.


전시는 작가 5명의 작품을 소개하고 작품 외 시간을 주목한 생계 아카이브를 구성했다. 즉 생계 아카이브를 통해 예술가라는 직업을 어떻게 지속하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그들이 예술가의 삶을 지속하는 이유를 찾아낼 수 있다.

 

 

그냥,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시간과 도움에 감사하면서 스스로 책임지고 끝까지 최선을 다할 뿐이에요.

 

 

사실 예술가라는 직업을 지속하기 위한 구조는 상당히 비정상적이다. 그들이 오로지 바랐던 것은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미술사에 남기는 대단한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묵묵히 일상을 견뎌내는 것이었다.

    

[Be 정상]은 이태강, 정덕현, 김양우, 권혜경, 서유진 작가의 작품과 삶의 기록을 담아내었다. 이들이 스스로의 정상을 향하는 과정을 여실히 보며 과연 나만의 정상은 무엇인지 고민하고 찾아내는 시간을 선사했다.

 

 

 

이태강 Taekang Lee


  

이태강 작가는 한 남자의 여정을 통해 관람객에게 자신만의 특별함을 찾아보는 경험을 부여하고 있다. 그의 생계 아카이브는 삶의 과정이라기보다 그간 작가를 괴롭혀왔던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자신과 조각가로서의 자신이라는 정체성을 포용해낸 결과물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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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강, <초인의 두상>, 2018

 

 

전시장에는 아기자기한 조각들이 한데 모아져 있었다. <혜성들>을 비롯하여 <초인의 두상>(2018), <말은 바다>(2018) 작품을 보며 그가 태어난 세계가 문득 궁금했다. 그의 특별함과 평범한 사이의 소중한 것으로 자신의 세계를 꾸려왔음을 추측해볼 수 있었다.

 

<초인의 두상>(2018)은 그가 구름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눈을 구름으로 표현하여 아마 남자의 세상은 구름으로 가득 찬 세상일 것이라고 상상하게 된다. 그가 생계를 위해 그려온 드로잉 웹 동화와 일러스트는 따뜻한 감성이 가득했다.

 

이 기록들은 이태강 작가가 삶을 살아가는 순간뿐만 아니라 작품을 위한 세계관을 확장시키는데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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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강, <드로잉 시리즈 : 비범한 옷>, 2021

 

 

그는 <비범한 옷>(2021)에서 예술가의 세계를 구현했다. 작품은 구름 덩어리와 푸른 천 조각들로 어우러져 있었다. 조각으로 보이지 않는 구름을 어떻게 표현했을지 궁금했는데, 자연석을 중심으로 비닐을 한데 뭉쳐 크기가 서로 다른 구름을 작업했다고 한다. 전시장 속 구름들 사이로 거대한 천 조각, 그리고 빛이 공존하는 공간에 있자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예술의 세계에 온 듯했다.

 

특히 전시장 한편에 놓인 남자의 이야기를 같이 읽으며 작품을 보았을 때, 한 인간의 특별함과 평범함이 공존하는 삶을 깊이 느껴볼 수 있었다.

 

 

 

정덕현 Deokhyeon Jeong


 

정덕현 작가는 그간의 작업을 짧게 회고한다. 그는 우리 삶과 밀접하게 관련된 사물들을 왜곡 없이 그려내어 사회와 노동을 향해 메시지를 던져왔다. 자신의 과거를 작품으로 정리한 이 작가의 앞으로의 삶과 작업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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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 <표류일지>, 2021

 

 

그의 작품 앞에는 제작 당시 작가가 했던 일을 상징하는 소품들이 놓여있었다. 평상시에 익숙한 오브제만으로 작가가 관람객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궁금했다. 실제 <표류일지>(2021) 앞에 놓인 공구들과 작품 속 벽돌, 컴퓨터, 담배는 작가가 표류해오던 삶을 연상하게 했다.

 

작품을 통해 작가가 살아가고 노동하고 작업하면서 했던 고민을 드러내며 그의 생계 아카이브를 구성한 것 같았다. 정덕현 작가의 전시장은 웅장하고 괴기스러운 공사장을 보는 듯했다. 그가 표현하는 녹슨 기계들은 공장의 노동 구조 아래서 소모되는 사람들을 비추어 볼 수 있는 것이다.

 

 

 

김양우 Yangwoo Kim


 

김양우 작가는 도시의 일상을 담아내는 작업을 한다. 작가에게 낮은 생계의 시간이며 밤은 이동하는 시간이다. 그의 작품은 생계를 위해 사무직으로 일했던 기록이다. 낮과 밤의 시간을 통해 생계용 노동과 작업 사이의 균형을 맞추려는 예술가들의 노력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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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우, <67.32km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 2019

 

 

<67.32km>(2018) 작품을 감상했을 때, 일상 영상 속 평범한 사회인의 퇴근길을 보는 것 같았다. 실제로 작가가 서울에서 화성까지 67.32km를 통근하며 활동지와 자택을 오가는 순간을 기록한 것이다. 도로 위 소음과 사회인들의 지친 발걸음, 그들을 비추는 야경은 도시의 물리적 확장과 이동에 대한 고민을 하게 했다.

 

영상 곁에 놓인 <67.32km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2019)은 이동과 지도에 관련된 작가의 생각을 혼합재료로 작업한 것으로, 작가가 상당히 긴 거리를 이동하며 작품을 고민할 수 있는 개인적인 시간을 가졌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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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우, <20190227-20210128>, 2019-2021

 


낮의 시간을 기록한 <20190227-20210128>(2019-2021)는 일상 사진을 나열해놓았다. 처음엔 시간 순서대로 작품만을 보는 것인 줄 알았으나 QR코드를 이용하여 작가 일상의 순간을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작가가 작업을 놓지 않기 위해 일하는 시간 동안 틈틈이 만들어 낸 1일 1작 모음이다. 익숙한 우리의 일상과 비슷한 작품을 보는 것이 기억에 남는 전시였다.

 

 

 

권혜경 Hyekyoung Kwon


 

권혜경 작가의 작품은 혼란기의 결과물이다. 정착하지 못한 채 작가 생활을 이어나가야 하는 불안한 삶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그는 본래 기능을 다 하면 폐기가 예정된 사물들을 작품으로 바꾸어 예술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미술계의 비합리적인 구조를 비추며 질문을 계속한다.

 

 

예술을 상품 가치로만 판단하고 거래하며 유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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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혜경, <신상품 개발과정 3-4>, 2021 / 권혜경, [HKK방호벽 HB1907-200a], 2019

 

 

통로를 지나면 작품으로 가득 찬 공간이 나오는데, 거대한 시멘트 벽면에 전시된 <신상품 개발과정 시리즈>(2019-2021)와 [HKK방호벽 HB1907-200a](2019)은 색깔이 강렬하여 단번에 눈을 사로잡았다. 뚜렷하게 새겨진 레지던시 주소들의 흔적은 계속해서 여러 곳을 옮겨 다니는 작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HKK방호벽 HB1907-200a](2019)은 실용적인 상품성 대신 추상적인 예술적 가치를 부여받은 채 쇼룸에 전시된 적이 있다고 한다. 그의 이동 기록을 작품을 통해 관람하니 작가의 개성이 강하게 느껴졌다.

 

 

 

서유진 Yujin Seo


 

서유진 작가는 관계와 재료를 대한 고민을 지속한다. 그렇기에 작가가 사용한 재료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 흔적을 남긴다. 그의 생존 방식은 미술 교육이다. 미술 교육이 작품을 만드는 창의성을 휘발시킬까 걱정하는 한편 생계의 순간에서도 여전히 작업 방식을 연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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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진, <생계를 위한 : 방문 미술 전단지 붙이기>, 2013 / 서유진, <만들기 준비>시리즈, 2021

 


벽면을 장식한 <생계를 위한 : 방문 미술 전단지 붙이기>(2013)에서 작가가 생계를 위해 미술 교육을 준비하면서도 종잇조각만으로 학생과 관계를 맺는 순간을 기록했다.

 

<만들기 준비>시리즈(2011)는 다양한 재료를 변형하는 모습을 영상에 담았는데, 실제 작가의 작품들의 준비과정을 담은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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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진, <모서리의 우리들>, 2021

 

 

<모서리의 우리들>(2021)은 탁자 위에 모서리를 중심으로 우레탄 폼으로 제작되었다. 요즘 고민이 많은 나의 현재 상황을 대변한 듯해 더욱 유심히 본 작품이다. 변하는 관계들과 목표에 의해 구석에 몰린 나의 처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설치 미술이 익숙하지 않았으나 익숙한 재료들을 이용해 작가가 관람객에 보내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작업하는 것이 대단했다. 아무런 지식 없이 작품을 보는 상황에서도 “이 물건이 이렇게 이용이 된다니?” 감탄하면서 관람을 이어갔다.

 

어쩌면 예술가가 생계의 순간에서도 여전히 창의적인 작업 방식을 연구한다는 현실을 보여준 듯하다.

 

 

 

스스로의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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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 정상]은 정상에 오르기 위한, 또는 정상성의 규범에 편승하는 중의적인 표현을 지닌다. 작가들의 작업 외에도 이들이 점하는 일상의 시공간을 살펴보면서 노동의 관점으로 재해석된 예술 작업을 비틀어본다면 노동을 사유하는 예술가를 그릴 수 있지 않을까.

 

김양우 작가는 스스로 도구가 되기를 택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가 담는 장면들은 객체의 시선으로 자신의 일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서유진 작가는 노동에 사용하는 반복적 몸짓들을 조형적으로 극대화하여 예술적 가치로 승화했다. 정덕현 작가는 노동의 도구들, 작업의 소재들을 화폭에 옮겼다. 노동환경으로부터 소외된 대상을 표현한 작품들을 보며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는 작가의 메시지를 우리는 읽을 수 있다. 이태강 작가의 오브제는 동화적 소재와 자연적 소재를 지니는데, 자연물을 도시의 노동에 대비되는 소재로 삼으면서도 이를 현실의 노동환경으로부터 구분하지 않는 작가의 표현 방식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작가 5명이 스스로의 정상을 향하는 모습을 보며 나만의 정상은 무엇일지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비록 예술가의 직업 특성상 생계를 이어나가야 하는 것과 구분하여 작업을 해나가야 하는 숙명이지만,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 스스로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답을 주었다.

 

친구는 우리 모두가 언제든 고민할 수 있는 의문을 제시했다. 결국 객관적인 답은 없다. 각자의 목표와 행복의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 정상에 도달하지 못했으나 시간은 충분하다. [Be 정상]을 통해 자신만의 정상을 찾아보고 깊이 고민해 보는 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황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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