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는 우리가 수다쟁이이길 바라 [사람]

몇 시간을 말해도 할 말이 남을 만큼, 많은 이야기를 해 주렴
글 입력 2021.05.14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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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글을 쓰고, 쓸 말이 없어 고민한다. 어릴 때는 학교를 다녀오면 엄마에게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종알종알 이야기하느라 바빴는데, 이제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엄마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친구를 만나면 힘들었던 일을 털어놓으며 위로를 받기도 했는데, 이제 가끔은 그냥 먹고 있는 떡볶이 이야기, 커피 이야기, 연예인 이야기만 하고 싶기도 하다.


무엇이 나의 말수를 적게 만들었나?

 

마스크가 일상이 된 세상 속에 살기를 2년째,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사람이 늘었다. 가끔 SNS를 통해 서로에게 묻는다.

 

"어떻게 지내?"

 

그러면 내가 보내는 답도, 받는 답도 거의 둘 중 하나.

 

"그냥, 똑같지." 혹은 "집에만 있어."

 

우리는 늘 똑같은 일상에 대해 더는 말할 이야기와 이유를 모두 잃어버렸다. 축제도, 여행도, 캠퍼스라이프도 없는 세상. 특히 문화 예술에 대한 오피니언을 써야 하는 에디터로서는 최악의 조건이다. 최근 천천히 공연 문화가 다시 문을 열고 있지만, 또다시 늘어가는 확진자 수에 외출하기 꺼려지는 것은 사실이다.

 

꽃은 졌지만 녹음이 우거지고 파란 하늘이 드높은 이맘때가 되면, 보통 음악 페스티벌을 즐기곤  했다. 열정과 패기가 넘쳤던 대학교 1학년 때, 학과 MT로 몸이 엉망이면서도 새벽부터 일어나 첫차를 타고 대성리에서 페스티벌 장소까지 갔던 친구와 내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랬을까, 싶으면서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사실 내가 더 안타까운 건 말할 이유를 잃는 우리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가진 체력을 점점 소진해 가며 버텨 왔지만, 정작 만났을 때는 '어디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몰라서, 말하기엔 너무 긴 이야기라서, 너무 우울한 이야기라서, 저번에도 이런 얘기만 한 것 같아서' 결국 앞에 놓인 떡볶이 이야기만 하게 된다. 오랜 권태, 연속된 밤샘과 피로는 몸에 차곡차곡 쌓여 내 목구멍까지 막아 버리나 보다.

 

그래. '우리'라고 칭했지만 결국 이건 나의 이야기고, 나의 이야기지만 우리의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우리가 수다쟁이가 되길 바란다. 지난 주말에는 자랑하고 싶을 만큼 신나고 재미있는 일이 있었기를, 어제 먹은 빵은 그 후기를 공유하고 싶을 만큼 맛있었기를. 그리고 목구멍을 막은 것들을 뚫고,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나누기를.

 

말의 힘은 위대하다. 한때는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도 나누면 배가 된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깊은 슬픔 끝에 터져 나온 말의 힘을 분명히 느꼈고, 이제는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적어도 배가 되지는 않는다'라고 생각한다. 물론 혼자만의 생각을 하는 시간도 중요하지만, 끝없는 생각은 점점 나를 심해로 끌어들이고, 오래 고여 있는 물은 썩기 마련이다.

 

목이 막히면, 수다쟁이가 되어보자. 말하다 목이 아프면, 달콤한 라떼로 잠시 목을 축여 주면서.

 

 

[이건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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