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친근하고 따뜻한 수집 - 디어 컬렉터

그 사람의 일부에 나의 일부를 덧칠하며
글 입력 2024.01.24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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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집을 구경하는 걸 꽤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집 안에 있는 것을 구경하는 것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 가끔 유튜브에서 예술과 가까이 사는 사람들의 집을 소개하는 걸 찾아보는데, 집도 집이지만 그 안의 가구나 조명 같은 것들뿐만 아니라 특히 그들이 소장하고 있는 그림이나 사진, 레코드판, 책에 관심이 간다.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도 그렇다. 이 인물을 설명하는 공간이니 아무거나 갖다 놓진 않았으리라는 생각으로, 집 안 곳곳에 있는 것들, 특히 방에 붙어있는 영화 포스터나 책(어떤 책인지부터 어떻게 놓여있는지까지), 그림이나 사진도 있다면 그런 작품들도, 심지어는 낙서같이 생긴 것들까지도 자세히 살펴본다.

 

왜일까 생각해 보니, 일단 영화나 드라마의 경우에는, 인물들이 갖고 있는 것들과 그것들이 놓여있는 모양 같은 걸 보면 그 인물을 조금 더 잘 알 것 같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좋아하는 책이나 영화나 그림, 사진 등의 예술 작품들이 그 사람을 설명해 주진 못하지만, 적어도 영화나 드라마 안에서는 그 사람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설명해 준다. 중요하게 작용하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누군가를 설명하는 기능을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일단 모든 건 사람에 따라 각각 다르게 받아들이기 마련이고, 그래서 어떤 작품을 좋아한다고 특정한 어떤 사람이 되는 건 아니며(마치 MBTI를 재미로 보는 걸 넘어서 누군가를 어떤 틀에 가두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한 사람이 좋아하는 작품들의 장르나 분위기의 범위가 넓을 수도 있고, 계속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군가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분위기에 한 조각을 더해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이 정말 좋아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그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에 자신만의 설명을 덧칠할 수 있을 것이다. 역시, 그 사람이 정말 좋아하는 것이라면.

 

 

디어컬렉터_표1.jpg


 

이 책에는 21명의 다른 컬렉터들이 소개된다. 이들은 예술 작품을 수집하고, 정말 그 작품을 좋아해서 집에 둬야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수집가인 만큼 집에 예술 작품들을 여러 개 두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것 말고는 사실 각자 유형이 다르다. 누군가는 예술 작품과 관련된 직업을 갖고 있지만 누군가는 아니고, 누군가는 그 작품들을 아예 소장하고 있지만 누군가는 대여하는 방식으로 작품들을 즐긴다. 예술 작품에 빠지게 된 계기도 당연히 다르고, 각자의 공간에 이 작품들을 큐레이팅한 방식도 다르니, 각자의 집과 그 안의 사물들, 예술 작품들을 구경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지만 이것만은 서로가 비슷했다. 단순히 그 예술작품이 훌륭해서 수집 목록에 추가하지는 않는다는 것. 물론, 금전적인 가치를 위해, 또는 단순한 욕심으로 작품을 모을 수도 있겠지만, 이 책 속 컬렉터들에게는 그 작품이 자신의 마음과 연결되는지가 가장 중요한 듯하다. 그러니까 이들은 위에서 말한,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에 자신만의 설명을 덧칠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예술 작품을 ‘모은다’는 것보다는 바로 이렇게 ‘작품을 애정하고 오롯이 즐길 줄 아는’ 면모가, 바로 이 책이 만들어지게 된 이유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들은 집의 현관, 거실, 방, 부엌, 화장실 등 어디든 어울릴만한 공간에 각자의 감각으로 놓아둔 작품들을 소개하며 만들어진 시기, 쓰인 재료 같은 것부터 작가의 어떤 의도가 담겨있는지에 대해 설명해 주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이들의 이야기에서 더 재미있었던 건, 그 작품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는 부분이다. 진정으로 예술 작품을 사랑하는 이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항상 그런 이야기가 있다. 

 

어쩌면 당연한 부분이다. 영화나 책도 그렇고, 그림이나 사진이나 조각 등을 좋아하는 이유에는 정말 그 작품 자체가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정도로 훌륭해서라는 것도 있겠지만, 어떤 사람이 그 작품에 빠질 정도로, 그 이야기 속에서 한동안 살고 싶어 할 정도로, 집에 두고 계속 보고 싶을 정도로 ‘좋아하는지’를 결정하는 가장 결정적인 건 아마도 주관성, 그러니까 그저 각자의 마음이고 취향일 테니 말이다.

 

작품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하거나, 그 작품에 추억이 생기거나, 아니면 뚜렷한 이유가 없지만 왠지 마음이 간다는 이유들로 자신만의 공간인 집에 놓인 작품들에 그들 나름대로의 이야기가 덧붙여지고, 다른 작품들과 어울려 또 다른 장면을 만들며 그 공간에 완전히 섞인다. 나는 따로 떼어놓고 보면 그냥 다른 작품일 뿐인 것들이, 그들의 감각으로 큐레이팅 되어 서로 조화를 이루며 또 하나의 작품 같은 장면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감탄하기도 했고, 그들이 생각하는 작품의 의미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부분을 읽으면서 예술이란 향유하는 사람에 따라 해석되는 방향이 가지각색이기에 더 흥미롭다는 걸 또 느끼기도 했다.

 

저자는 팬데믹을 겪으며 이 책을 기획하고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팬데믹을 기점으로 집 안에서 문화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방식이 조금 더 많아지고, 그 방식을 활용하여 자신만의 공간에서 뭔가를 즐기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도 많아졌다. 문화 예술을 즐기는 것뿐만 아니라 일단 실생활에서 불편함과 편리함을 동시에 겪으며 (의도하진 않았지만) 많은 변화를 겪었고, 우리가 겪은 그 혼란이 그렇게 끝난 게 아니라 아마도 이제는 앞으로 비슷한 상황이 또 벌어질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살고 있음을 알게 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작품을 통해 내 집을 또 다른 세계로 변화시키고, 예술을 통해 세상에 질문을 던지고, 아이들이 그림 벽화와 할머니의 부엉이 그림을 함께 놓은 화장실이나 두 대의 자전거와 염소 사진과 책 한 무더기가 있는 현관같이 그야말로 자신의 니즈와 취향에 따라 만들어가는 자신의 집을 애정 하며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며 되도록이면 진심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특히 예술이라는 것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게 한다.

 

작품을 통해 나, 나의 추억, 내가 좋아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들, 선한 가치들, 그리고 내가 아직 모르는 세계를 알고자 하는 마음을 떠올리고 경험하는 것, 그게 예술 작품을 사랑하는 이 컬렉터들이 이 세상을 풍요롭게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걸 느끼며 말이다.


“집을 다른 세계로 변화시키는 것은 역시 작품인 것 같아.” (235쪽 / 치즈 사냥꾼, 제니퍼 로페즈)

 

“예술은 나에게 ‘구명조끼’가 되어주었어!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나와 세계를 바라보게 해주거든. (468쪽 / 컬렉팅의 메시, 이그나시오 리프란디)

 

*

 

나는 음악이나 영화, 책 등 여러 작품들에서 내 취향을 발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무형의 것을 (머릿속에) 수집하고자 하는 욕구는 있지만, 사물을 수집하고자 하는 욕구가 별로 없다. 그나마 수집가 같은 면이 있는 대상은 좋아하는, 또는 읽으리라 다짐한 책들. 하지만 수집이라고 하기에는 양이 적으며, 내가 소장하고 있는 이 책들을 모두 보관하고 싶은 마음보다는, 다 읽었지만 딱히 애정이 없는 책들은 중고 서점에 팔거나 어딘가에 보내서 내 방의 공간을 여유롭게 확보해야 한다는 마음이 더 크다. 그러니, 때가 되면 다른 곳으로 보내줄 수 있는 정도이다.

 

영화관에 자주 가던 대학생 때, 영화관에서 본 영화의 포스터를 하나하나 모았던 적은 있다. 하지만 점점 내가 본 영화의 포스터를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예전만큼 영화관에 자주 가지도 않으니 저절로 수집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러다 몇 달 전 책꽂이를 정리하면서 그 포스터들을 발견하고는, 어떻게 할지 꽤 오래 고민했다. 그러니까, 버리기엔 너무 아깝지만 (거의 좋아하는 영화의 포스터들이기 때문이다) 계속 모아두기엔 자리만 차지하는 게 사실이라는 생각을 계속할 정도로 수집 욕구가 더 없어졌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여기에 소개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새로웠고, 어떤 부분에서는 익숙하기도 했다. 이들이 예술 작품을 모을 때, 예전에 내가 본 영화에 대한 애정이나 때로는 영화 포스터 디자인 자체에 끌리거나 하는 이유들로 영화 포스터를 하나하나 모으며 느꼈던 감정들과 비슷한 감정을 느낄 거라는 짐작을 하며 낯설지 않음을 느꼈고, 한편은 지금의 나와는 다른 생활 방식으로 살아가는 진짜 컬렉터들의 집을 보면서 예술 작품, 특히 현대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사는구나, 하는 새로움도 당연히 느꼈다.

 

하지만 이런 익숙함과 새로움보다 더 강하게 느낀 건 친근함과 따뜻함 같은 감정이었다. 각 컬렉터들의 집 안을 구경하고 있으면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들에 각자만의 이야기와 설명을 덧칠하는 이들의 애정이 느껴지는데, 그 컬렉터 친구들의 애정을 애정 하는 저자의 마음이 느껴져서라는 걸 읽으면서 깨달았다.

 

그래서 처음에 ‘두꺼운 벽돌책이지만 일단 아무 페이지나 열어 쭉 훑어보고, 무슨 이유에서든지 끌리는 작품이 나오면 잠깐 그 순간을 즐기다, 그 작품과 작가에 대해 궁금해지면 본문의 내용을 읽어보면 된다’는 저자의 권유대로 책장을 펼쳐, 내가 모르는 사람들의 집과 소장품을 구경한다는 들뜬 마음으로 끌리는 페이지를 탐색하던 나는, 예상하지 않았던 따스한 감정에 이들의 이야기까지 하나하나 읽게 되었던 것이다.

 

따뜻한 갤러리 같은 이 책은 암 투병을 하다 세상을 떠난 친구 ‘래리’의 집과 소장 작품들로 마지막 장을 채운다. 저자가 래리의 집을 방문하기로 한 시기에 코로나가 터졌고, 그래서 그가 직접 찍은 사진을 이메일로 받으며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렇기 래리와 랜선으로 소통하며 작업하는 과정에서 그의 암 투병 사실을 알게 되기도 한 저자는 그의 집과 소장 작품들을 소개하고, 마지막 문단에서 그를 애도하며 이렇게 마무리한다. 

 

(...) 그리고 ‘디어 래리’로 시작했던 첫 이메일을 다시 열었다. 가다 서다, 수없이 반복하리라는 것을 알지만 글을 시작했다. 완성할 수 없다면 미완성인 채로 놔두자고 결심했다. ‘빅 레드, 빅 래리’가 환하게 웃어주었다. (549쪽 / 빅 레드 빅 래리, 래리와 캐럴)

 

첫 번째 린다 로젠의 집부터 마지막 래리와 캐럴의 집까지 구경하고 난 후에 ‘디어 컬렉터 (Dear Collector)’라는 제목을 다시 한번 가만히 보니, 이미 이 제목에서부터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느꼈던 친근함과 따뜻함이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프롤로그의 이야기가 다시금 떠오른다.

 

팬데믹에 시작해서 이제 다시 팬데믹 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을 시기에 책 작업이 마무리되고 있었고, 이때 잡지에 소개될 만큼 멋진 집과 작품들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참여 제안에 잠깐 혹했던 저자는 ‘친구니?’ 하고 묻는 친구의 한 마디에 정신이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진짜가 아닌 것 같은 문장은 시원하게 지워가며, 원래 자신의 기획 의도대로 진짜 친구인 컬렉터들의 취향만을 이 책에 담았고, 그래서 덕분에 이 책을 읽는 나 또한 좋아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느낄 수 있는 친근함과 따뜻함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예술 작품을 통해 나를, 나의 공간을, 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의 가치를 느끼기도 하면서 말이다. 뭔가, 저자에 동화되어 집과 작품들을 구경해서 그런지 몰라도, 컬렉터들과 저자의 애정과 열정, 그리고 친근함과 따뜻함을 수집한 것 같은 느낌으로 책을 덮었다.

 

나는 이들의 공간을 보면서 나도 예술 작품 몇 조각을 집에 두고 재미있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포스터나 책들, 마음에 드는 그림이나 사진 몇 장을 나의 감각으로 큐레이팅 해가며, 나에게 자유로움, 반성, 기억, 그리움, 사랑, 뭐든 좋은 에너지를 주는 그 조각들을 바라보면서 말이다.

 

“그림이나 조각들은 그 사람의 일부이고 그렇기 때문에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것 같은 기분이 계속 들어.” (177쪽 / 고독은 나의 집, 키어와 그레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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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어와 그레그 집 화장실에 걸린 '피터 리곤'의 「피츠휴의 누릅나무 골목」 (181쪽)

 

 

[강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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