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새 나라 새 역사 새 시대가 열리다 - 뮤지컬 '창업'

글 입력 2021.05.12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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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메인 포스터.jpg

 

 

때는 고려 말 정치가 썩고 썩어 백성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고 고려왕조에 대한 불만이 세상을 뒤덮는다. 이때 정몽주는 고려에 대한 충성심으로 고려를 개혁해서 정치를 바로잡으려 하지만, 정도전은 이성계를 옹립해 새로운 왕조를 수립하여 나라를 바꾸려 한다. 정도전과 정몽주는 서로의 가치관이 달라 대립하고 이성계는 이 둘과 같이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려 하는데…

 

시놉시스

 

 

뮤지컬 <창업>에서 창업은 ‘나라를 처음으로 엶’을 뜻한다. 이는 고려의 멸망부터 조선 건국에 이르는 역동적인 시대를 뮤지컬화 했다. 특히 새로운 나라인 조선을 건국하려는 급진파, 기존의 고려를 지키려는 온건파의 피 튀기는 경쟁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사실 역사에 지나치게 취약하다 보니 이를 다룬 사극, 시대극 등의 역사물을 꺼리는 편이었다. 다수의 극이 진중하고 무거운 느낌이 강했고, 이에 쉽게 흥미를 잃어 지루함을 느꼈다. 뮤지컬 <창업>의 시나리오를 보고 볼지 말지 한참을 고민했던 것 같다. 이토록 거창한 스토리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물론, 극의 재미를 느낄 수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럼에도 국내의 역사를 다룬 뮤지컬에 도전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고, 맘속 깊이 있던 편견을 깨고 싶었다. 더욱이 지난번에 관람했던 뮤지컬오디션콘서트 <내가 광이 날 상인가?>의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는 소식에 그들의 성장을 눈앞에서 보고 싶은 마음도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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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연유로 지난 5/4일에 관람하게 된 뮤지컬 <창업>은 조금은 생소했던 퓨전 사극이었다. 일단 극본부터가 상당히 가벼웠다. Z세대를 저격할 만한 밈이나 줄임말들의 대거 등장에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내가 알던 사극이랑은 천차만별인 장난스러운 대사가 쏟아져서 당황을 금치 못했다. 이성계와 강씨는 환상의 코미디 콤비로 관객들을 폭소하게 했으며 이를 무게감 있는 캐릭터인 이방원과 정도전이 잡아줌으로써 극의 중심이 유지되었다.

 

창작 뮤지컬에서만 할 수 있는 것들을 여러 가지 시도해 본 느낌이었다. 강씨가 무대를 사로잡으며 열띤 춤사위와 거침없는 래핑을 선보일 때는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극이 마냥 가볍지는 않았다. 적당한 선을 지켜가면서 스토리를 진행했기에 몰입하는 데 방해받지 않았다. 이는 각 인물의 입장, 감정, 생각들을 잘 드러내는 넘버가 존재했기에 가능한 결과라는 생각이다.

 

오프닝 넘버인 ‘창업’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다 함께 합창할 때 “새 나라 새 역사 새 시대가 열릴 것이다”라는 당찬 포부가 담긴 가사, 저마다의 목표로 반짝이는 눈빛, 무대의 뜨거운 열기가 합쳐져 시작부터 벅찬 떨림을 주었다. 다 함께 노래하니 더 큰 에너지와 끼를 발산하는 듯했달까? 그날 본 배우들의 조합이 굉장히 좋았다는 생각이다.

 

대부분 경력이 없는 신인 뮤지컬 배우임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노래 실력과 연기력을 보여줘서 놀랐다. 극장의 음향 상태가 좋지 않아선지 뮤지컬을 보는 내내 막힌 느낌이 들었는데, 이를 가볍게 무시하듯 뚫고 나온 김동형 배우(이방원 역)의 노래에 감탄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전히 이방원 역에 몰입해 복수의 칼을 갈면서 분노와 처절함이 실린 연기를 보일 때는 전율까지 느껴졌다.

 

또한, <팬텀싱어>에 출연한 ‘인기현상’ 멤버인 박상돈 배우(정몽주 역)의 압도적인 성량과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음색에 소름이 돋았다. 원체 뛰어난 실력의 소유자라는 건 알았지만, 실제로 들으니 그 감동이 배가 되는 듯했다. 그중 이방원과 함께 부른 ‘하여가, 단심가’“이 몸이 죽고 죽어” 부분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시를 넘버로 바꾸었지만,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화자의 감정이 더 잘 전달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뮤지컬 <창업>은 이방원을 중심축으로 하여 극을 이끌어갔다. 그중 아버지 이성계와 아들 이방원, 다른 편에 선 절친한 벗 정도전과 정몽주, 배다른 아들 이방원과 자신이 낳은 아들 이방석에서 고심하는 강씨 등의 관계성이 돋보였다. 처음에는 이방원과 화목한 사이를 유지했던 인물들은 결국 그의 반대편에 섰다. 결국, 무사 정영규를 빼놓고는 모두 이방원에게 숙청당하거나 유배당했다.

 

한 나라를 건국하고 부강하게 함에서 달랐던 입장이 피의 숙청이란 끔찍한 결과를 낳았다. 그럼에도 이방원이 무시당했던 세월과 고통을 생각하면 그가 악한 사람이라 느껴지진 않았다. 온전한 애정을 받지 못하고 비뚤게 자란 그의 심정이 이해되어서 안쓰럽기도 했다. 그에 비해 이성계와 강씨는 한없이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사람으로, 자신의 신념을 굳건히 지켰던 정도전과 정몽주도 답답하고 꽉 막힌 사람처럼 보였다.

 

이로 인해 극에서 사건의 초점을 어디에 맞추는지, 인물을 어떻게 묘사하는지, 그들의 입장 차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가는지가 굉장히 중요함을 깨달았다.

 

*

 

<창업>은 씁쓸한 마무리 덕에 긴 여운이 남았던 뮤지컬이었다. 퓨전 사극 장르를 통해서 무거운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었고, 다양한 인물에게 초점을 맞춰 개별 서사와 감정을 두드러지게 표현했다. “역사물은 진지하다.”라는 편견을 깨준 창작 뮤지컬 <창업>, 그 덕분에 폭넓은 선택지를 가진 뮤지컬 관람객으로 거듭나지 않으리라 싶다.

 

 


 

 

창업
나라를 처음으로 엶


일자 : 2021.04.30 ~ 2021.05.30

시간
화, 목, 금 8시
수 4시, 8시
토 3시, 7시
주말 및 공휴일 2시, 6시
(월 공연 없음)

장소 : 대학로 예그린씨어터

티켓가격

전석 55,000원

  

제작

㈜광나는 사람들

 

주최

타임컴퍼니, 예그린씨어터


관람연령
초등학생이상 관람가

공연시간
1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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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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