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전시]

이상과 구본웅
글 입력 2021.05.01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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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총 4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다. 전시의 시대 배경은 1930~1950년대 전후 경성을 중심으로 일제강점기, 광복, 6, 25전쟁이라는 격동의 시대를 살아간 미술가와 문학가의 삶을 보여준다. 부조리한 현실을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려는 그들의 예술 세계뿐만 아니라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미술가와 문학가들의 만남과 교류까지 살펴볼 수 있었다.


그 첫 만남은 다방 제비었다. 시인 이상 운영했던 그곳은 서로의 예술 세계를 마음껏 교류할 수 있는 만남의 장소이자 부조리한 현실을 잠시나마 탈피할 수 있었던 자유의 공간이었다. 문인 박태원・김기림, 화가 구본웅・황술조・길진섭・김환기・유영국・김병기 등이 드나들며 예술을 논했다.

 

 

 

이상


 

전시를 다 보고 난 뒤 가장 인상 깊었던 미술가와 문학가의 만남이 있었다. 바로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상(李箱)과 그의 초상화를 그린 구본웅의 이야기이다.


구본웅은 화가, 이상은 소설가다. 이상은 필자에게 매우 익숙한 문학가이다. 문학 시간에 꼭 등장하는 문학가이자 개인적으로 그의 단편 소설 ‘날개’를 좋아했기 때문에 전시관에서 이상의 살아생전 흔적을 눈으로 볼 수 있었을 때는 이유 없는 전율까지 느껴졌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주인공 ’나’ 33번지 유곽에서 일하는 여인의 남편이다. 아내가 손님과 일하는 시간(정오에서 자정까지)에는 절대로  일하는 공간에는 들어갈 수 없다. 이 규율만 지키면 아내는 밥도 주고 돈도 준다. ‘나’는 아내에게 사육되는 존재이다.


아내가 외출하면 아내의 방에 가서 화장품 냄새를 맡거나 돋보기로 화장지를 태우면서 시간을 보낸다. 이러한 일상의 반복 속 어느 날, 밖에서 비를 맞은 주인공은 자정이 되기 전에 귀가할 수밖에 없게 된다. 어쩔 수 없이 아내의 금기를 어기게 된 주인공은 혼날 것을 걱정하며 자기 방으로 들어갔는데, 아내가 약을 가져다준다. 주인공은 아스피린일 줄 알고 먹지만, 그것이 아스피린이 아닌 수면제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자신의 삶에 드리워진 억압을 자의로 끊을 수 없음을 통달한 ‘나’는 경성 미쓰꼬시 옥상으로 올라간다. 이때 정오의 사이렌이 울고 ‘나’는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라고 외치며 소설은 끝이 난다.

 

이 소설의 탄생 배경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 있다. 바로 구본웅이다. 이상은 구본웅과 함께 온천에 요양하러 갔는데 그곳에서 구본웅과 긴밀한 관계였던 금홍을 만나게 된다. 이상은 금홍과 사랑에 빠지게 되고 경성 종로에 제비다방을 개업하고 그곳의 마담 자리를 금홍에게 주기도 하며 2년간 동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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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웅



제비 다방 벽에는 많은 그림이 걸려있었는데, 그중 눈에 가장 띄는 것은 구본웅이 그린 ‘친구의 초상’이다. 바로 아래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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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가 피어오르는 파이프 담배를 물며 형형한 눈빛을 가졌다. 어딘가 오만해 보이지만 고뇌와 번민이 들여다보인다. 거친 붓놀림과 전체적으로 어둡고 칙칙한 색채지만 눈 밑과 입술의 선홍빛 색채는 곧은 심지를 느낄 수 있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이 그림의 주인공은 이상이다.


처음에는 이 그림의 주인공이 이상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그래서 이 그림의 숨긴 일화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강렬함에 한동안 그 자리에 떠나지 못했다. 이 둘 사이에서 금홍이라는 인물을 두고 생각해보았을 때 느낀 이상을 향한 구본웅의 분노, 그리고 오랜 단짝이었던 이상을 생각하면 구본웅이 느꼈던 이상의 강렬한 혼을 그려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구본웅의 거친 붓질은 20세기 초 서구 모더니즘의 경향인 야수파 표현이 떠오른다. 대표작 여인을 보면  과장되게 표현한 여성의 신체와 형태의 왜곡, 강한 색채감은 구본웅만의 독특한 예술세계가 성립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구본웅의 그림에 이상이 담겨 있듯이 이상의 작품에도 구본웅이 등장한 적이 있는데 바로 소설 ‘봉별기’에서 등장한 ‘나와 농(弄)하는 친구’로 묘사한 ‘화우 K 군’이 바로 구본웅이다.


문학가였던 이상과 미술가였던 둘은 전혀 접점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이 둘의 만남은 보통 학교에서부터 시작된다. 구본웅은 어릴 적 하녀의 실수로 떨어트려 사고를 당해 척추 장애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구전(口傳)은 의학적 신빙성이 낮다. 아마도 선천적 척추 질환이 세 살 이후 발현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이로 인해 학교 4년이나 늦게 들어가게 되고 외관상 불편한 몸 때문에 따돌림이 심했다. 그러나 이 당시 다가와 준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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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둘의 일화 중 이상과 구본웅이 길을 걷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곡마단이 온 줄 알고 이 둘을 따라다녔다고 한다. 훌쩍 큰 키에 망토를 입고 까치집 머리를 한 이상과 작은 키에 질질 끌리는 인버네스(소매 대신에 망토가 달린 남자용 외투)를 입고 있는 구본웅의 모습이 아이들의 눈엔 신기해 보였던 모양이다.


이상과 구본웅의 인연은 가족 관계로도 이어진다. 구본웅의 새어머니에게는 이복동생이 있었다. 이는 변동림(김향안)이다. 이 여인은 이상과 결혼을 하게 된다. 즉, 구본웅은 이상의 이모부가 된 것이다. 이 둘의 결혼은 이상이 폐결핵으로 도쿄에서 사망하면서 자연스레 없던 일이 되었지만, 이상이 살아있었다면 이 둘은 친구 관계를 넘어 가족으로도 연결되었을 사이라는 것이 참 신기한 인연이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후에  변동림은 화가 김환기와 결혼하며 김향안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상은 1936년 10월 도쿄로 갔다가, 이듬해 4월 구치소 생활을 겪은 후 제일 먼저 숨을 거둔다. 그의 나이 27세였다. 원래 허약했던 구본웅은 한국전쟁 중인 1953년 거의 영양실조와 폐렴으로 새어머니와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47세의 생을 마감했다.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학창시절에는 단편 소설 '날개'를 쓴 이상에 중점을 두었다면 이번 전시를 통해 '이상'이 쓴 날개에 더 중점을 둘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미술가들과 문학가들의 몰랐던 인간적인 내면과 예술의 세계에 대해 알게 되었다.마치 눈으로 보는 천일야화 같았다.


이상과 구본웅의 관계 외에도 구상과 이중섭, 백석과 정현웅 등 다양한 문학가와 미술가들의 작품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1930~1950년대 전후 시대적 어두움에도 불구하고 미술과 문학은 꽃을 피웠다. 그리고 이 둘은 계속해서 소통하며 새로운 세계로 나가려 했다.


이미지와 텍스트라는 각자의 표현방식으로 인간 세상을 예민하게 관찰하고 표현하면서 미술가와 문학가는 자신의 분야에서 예술적 영감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예술혼을 자극했다. 그리하여 더 수준 높은 문학・미술 작품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러한 그들의 만남은 우리 곁에 아주 깊이 오랫동안 머물 것이다.

 

 

[나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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