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회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예술가 [미술/전시]

4월, 서울과 광주에서 만난 작가 세실리아 비쿠냐
글 입력 2021.04.20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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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미카엘 하네케는 예술가를 “사회의 상처 속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영원히 소금을 발라대는 존재”라고 말했다. 장르와 형식을 불문하고 현실의 문제를 날카롭게 꼬집는 작품을 볼 때면 그 말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그런데 상처에 소금을 발라대는 존재가 있는가 하면, 상처를 어루만지는 존재도 있다. 이 글에서는 역사의 상흔을 기록하고, 기록을 통해 새로운 연대를 만들어 내는 칠레 출신의 작가 세실리아 비쿠냐(Cecilia Vicuña, 1948-)를 소개하려 한다.

 

세실리아 비쿠냐는 한 단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예술가다. 시인이자, 미술가이자, 영화감독이자 사회운동가이다. 비쿠냐의 작업은 주로 환경 파괴나 인권, 문화적 동질화 등 현대 사회의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칠레 산티아고에서 태어난 작가는 1970년대 초반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에 반해 일어난 군사 쿠데타 이후 칠레를 떠났다. 그동안 미국 노스 마이애미 현대미술관, 네덜란드 로테르담 람 비테 데 위드, 보스턴 미술관, 뉴욕 브루클린 박물관, 칠레 산티아고 기억과 인권 박물관 등에서 여러 차례의 개인전이 열렸으며 2017년 독일 카셀,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도큐멘타 14≫에도 참여했다. 또한 지금까지 22권의 예술 서적과 시집을 편찬하며 시인으로서의 활동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현재 세실리아 비쿠냐의 작업은 한국의 두 도시, 서울과 광주에서 관객과 만나고 있다. 서울 리만머핀 갤러리에서는 개인전 ≪키푸 기록 Knot Record≫이 열리고 있으며, 제13회 광주비엔날레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 Minds Rising Spirits Tuning≫에도 작가의 작품이 출품되었다. 리만머핀에서 열린 개인전이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열린 개인전인 만큼, 그동안 접할 기회가 드물었기 때문에 아직은 작가의 이름이 생소할 수도 있다. 서울과 광주에서 열리고 있는 두 전시는 환경, 전쟁, 여성 등 동시대의 굵직한 문제들을 섬세하고 서정적으로, 여리지만 강하게 다루는 작가의 작업을 만나볼 좋은 기회다.

 

회화, 설치, 영화, 애니메이션, 퍼포먼스, 시 등의 다양한 작품 중 ≪키푸 기록 Knot Record≫과 광주비엔날레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 Minds Rising Spirits Tuning≫에서는 회화, 설치, 영상 작업을 볼 수 있다. 특히 리만머핀에서의 전시는 작가의 작품세계에서 중요한 축을 이루는 ‘키푸(Quipu)’와 ‘프레카리오스(Precarios)’ 시리즈를 소개한다. ‘매듭’을 의미하는 키푸는 고대 페루에서 사용된 언어 체계인데, 끈으로 만든 매듭과 꼬임의 여러 가지 조합이 알파벳 같은 체계를 이룬다. 키푸는 의사소통을 하고, 기록을 보존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세실리아 비쿠냐의 작업에서 작가 자신이 태어난 지역의 전통을 참조하고, 그것을 변용하는 것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키푸는 콜럼버스가 미 대륙을 발견하기 이전, 페루의 사람들이 발전시켰고 그것이 스페인의 식민통치기에 금지되었다는 점에서 억압된 고대의 문화를 상징한다. 비쿠냐는 1960년대, 10대 시절에 키푸 작업을 시작한 이래로 키푸를 연구하고, 번역하고, 재활성화하는 작업을 지속했으며 그 작업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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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푸 기록(Quipu Girok)> 설치 전경

 

 

올해 제작된 작가의 신작이자 <키푸 기록(Quipu Girok)>은 고대 안데스어 ‘키푸’와 한국어 ‘기록’을 조합한 것으로, ‘매듭 기록’을 의미한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줄기 같기도 하고, 아래에서 위로 솟은 나무줄기 같기도 한 반투명한 천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작품은 2m가 넘는 길이의 천을 아크릴과 오일 스틱으로 채색하여 대나무 막대기에 수직으로 걸어놓은 작품이다. 각각의 천에는 상형문자를 연상시키는 기하학적인 기호들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작가가 1970년대에 제작했던 <태양(Solar)> 회화 시리즈로부터 영감을 얻은 것이다. 이전의 키푸 시리즈와는 달리 한복에 사용되는 천을 염색해서 사용했다는 점이 돋보인다.

 

이 전시에서 볼 수 있듯, 세실리아 비쿠냐는 고대의 키푸를 재현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큰 규모의 설치와 참여적인 퍼포먼스로 연결한다. 사람들과 함께 매듭을 묶거나 사람들 사이를 매듭으로 연결하는,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람들을 엮는(weave people)’ 작업을 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이를 서구식의 개인주의에 대항한다는 정치적인 의미를 담은 수행으로 시작했으며, 이후 한발 더 나아가 키푸로 연대하는 집단의 신체를 물의 움직임과 연결하여 환경 문제를 다루기도 했다. 작가는 이러한 작업을 가뭄과 지구 온난화 등 환경 문제, 그리고 물 사유화 등의 문제로 인해 말라가고 있는 칠레의 강가에서 수행하며 환경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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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카리오스(precarios) 시리즈 설치 전경

 

 

자연에 관한 관심, 사라지는 것에 관한 관심과 그것을 기록하고자 하는 욕구는 ‘프레카리오스(precarios)’ 시리즈에서도 나타난다. ‘precario’는 ‘부서지기 쉬운, 연약한’을 뜻하며, 이 시리즈는 말 그대로 작고 연약한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작업은 작가가 자연으로부터 얻은 감각에서 출발했다. 1966년, 칠레의 한 해변에서 자신을 둘러싼 바람과 바다를 ‘감각’하고 작은 나뭇가지들을 해변에 수직으로 꽂았던 것이 프레카리오 작업의 시작이었다. 각각의 오브제에는 <철사 Hilo de fierro>, <플라스틱 둥지 Nido plástico>, <푸른 매듭 Nudo azul> 등 직관적인 제목이 붙여졌다. 그물망, 철사, 헝겊, 돌 등 쓰레기를 엉성하게 조합해 놓은 듯한 오브제들은 말 그대로 precario, 불안정한 상태에 머무른다. 또한 이 인위적인 폐기물들의 조합은 환경파괴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기도 한다.

 

광주 비엔날레에서는 작가가 60-70년대에 제작한 회화 작업과 1977년 열렸던 ≪베트남에 대한 경의≫ 전시를 재창조한 작업을 볼 수 있다. 리만머핀에서의 전시가 세실리아 비쿠냐의 시적인 세계를 소개한다면 광주 비엔날레에서는 역사·정치적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관심이 드러나는 작업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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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 대한 경의: 1977년 푼다시온 길베르토 아르자테 아벤다뇨에서 열린 세실리아 비쿠냐의 전시의 부분적인 재창조>(2020) 설치 전경

 

 

비엔날레에서 세실리아 비쿠냐의 작업은 군국주의, 독재 정권, 전쟁에 대한 트라우마를 담은 작품들과 함께 놓여 있다. <베트남에 대한 경의: 1977년 푼다시온 길베르토 아르자테 아벤다뇨에서 열린 세실리아 비쿠냐의 전시의 부분적인 재창조>(2020)는 직물에 제작된 일곱 점의 판화를 포함한다. 이는 70년대에 제작되었으나 이후 유실된 회화 작업을 재제작한 것이다. 총을 메고 숲을 지키는 베트남 여성들이 그려진 판화를 통해 작가는 ‘하나 되는 여성들’, 여성의 연대와 그것이 가진 힘을 표현한다.

 

작가가 베트남의 여성들을 천에 담게 된 동기는 함께 전시된 영상 <나의 베트남 이야기>(2021)에서 들을 수 있다. 이 영상에서 작가의 손은 베트남 전쟁 당시의 1968년 마이라이 학살이 담긴 사진과 한 소녀가 폭격으로부터 도망치는 사진을 흉터를 어루만지듯 쓰다듬는다. 베트남의 풍경은 1973년 칠레에서 일어난 군사 쿠데타의 풍경으로 이어진다. 이 쿠데타에서는 3만여 명이 학살되었다. 칠레에 머물던 시절, 베트남 전쟁의 사진을 본 작가는 붉은 스카프로 손목에 매듭을 묶고 밤낮으로 그 매듭을 묶고 다녔다. 베트남 전쟁의 승자는 작가가 런던에 머무르고 있던 1975년 결정되었고 작가는 잡지 <더 선데이 타임즈>가 표지에 실었던 베트남 공산주의자 소녀의 얼굴에서 강한 인상을 받아 1977년 보고타에서 ≪베트남에 대한 경의≫ 전시를 열었다.

 

베트남 전쟁의 사진을 보며 같은 아픔을 느끼고, 붉은 스카프를 손목에 두르고, 잊기 쉬운 일을 계속해서 상기하는 일. 매 순간 세상을 예민하게 감각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2020년 10월, 칠레 반정부시위 1주년 기념일에 한 페미니스트 집단은 세실리아 비쿠냐의 시구를 쓴 붉은 천을 산티아고 광장에 걸었다. 작가가 역사를 몸으로 겪으며 기록한 것들이 수십 년이 지난 뒤에 연대의 목소리로 발화되고 있는 것이다.

 

2021년의 서울과 광주에서 세실리아 비쿠냐의 작품을 만나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국립광주박물관 야외 팔각정에는 <소리로 꿈꾼 비>(2020)가 설치되어 있다. 음악가 리카르도 갈로와의 협업으로 창작된 이 작품은 차학경의 <딕테>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정자에 앉아 귀를 기울이면 해석하기 어려운 속삭임, 입김 소리, 소리와 소리 사이를 채우는 정적이 들린다. 차학경의 유고작인 <딕테>를 소리로만 이루어진 작업으로 옮기며 기념하고자 한 것이다. 두 작가 모두 고국을 떠나 생활했지만 고국에서의 기억을 가지고, 또 여성으로서의 고뇌를 담은 창작 활동을 했다는 점에서 세실리아 비쿠냐의 이 작업은 국적을 떠난 연대를 의미한다.

 

투명한 천에 그려진 총을 든 여성, 불안정하게 쌓인 작은 조각들, 해독할 수 없는 속삭임. 곧 소멸할 것만 같은 세실리아 비쿠냐의 이미지와 언어. 그 여리고 섬세한 것들이 역설적이게도 아주 오래도록 남아서 연대에 대한 기록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참고

Cecilia Vicuña 홈페이지

구겐하임 박물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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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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