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꿈을 샀습니다

글 입력 2021.04.16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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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같이 시간을 보냈다. 물론 현실에서는 아니고 하늘로 가신 후 처음으로 꿈에 나와주셨다. 우리는 같이 쇼핑을 했다. 모자를 사고 있었는데, 점원이 “모자 괜찮으세요?”라고 물었다. 그는 “네, 근데 제가 치료 중이라 머리가 많이 빠져서”라고 말끝을 흐렸다.
 
꿈에서도 그는 환자였다. 바로 꿈에서 깼고 이른 새벽이었다. 꿈속에서도 아픈 몸을 하고 있던 그 모습이 서글펐던 건지 오랜만에 본 알 수 없는 감정들의 복합인지 눈물이 터졌고 소리를 내서 울었다.
 
꿈이란 뭘까. 꿈이 뭐길래 감정까지 건드릴까. 이 생각을 오전이 되었고 서점에 갔다. 이날도 인기도서 칸에 자리 잡고 있던 도서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흘깃 봤다. 사실 유명세는 익히 들었지만, 발행된 지도 꽤 시간이 흘렀고 여러모로 젖혀두고 있었던 터라 이상한 오기심에 미뤄둔 참이었다.
 
그러다 첫 장만 슬렁슬렁 읽다가 나도 모르게 완독을 했다. 어젯밤이 준 힘도 있었고 단순히 무의식이 아닌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저편 너머의 세상과 맞닿아있다는 판타지적인 증거를 나 자신에게 입증시키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간략히 이 도서는 잠이 들어야만 입장할 수 있는 꿈을 판매하는 백화점이 배경이다.
 
꿈을 사는 사람, 판매하는 판매원, 백화점의 주인, 꿈을 만들어내는 제작자들이 나온다.
 
 
 

죽은자가 나오는 꿈을 만듭니다


 
제작자 캐릭터 중에는 ‘도제’가 있는데, 그는 매번 다른 곳에 가 있기에 모임에서 남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는다. 더하여 ‘나를 만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라는 식의 대사만 남기기 때문에 분량이 매우 적은 편이다. 하지만 난 그가 나오는 대목에서 눈물이 고였다.
 
 
전설의 꿈 제작자 중 가장 외부 활동이 적으며, 좀처럼 사람들이 있는 곳에 나타나지 않는 도제. 그는 죽은자가 나오는 꿈을 만드는 제작자였다.
 
 
할아버지가 계신 보훈청에 가족이 다 함께 가기 전날 밤, 그는 할머니의 꿈에 나왔다고 한다. 이전에 바라고 바래도 좀처럼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미움을 사던 시기였다. 여하튼 우리가 찾아가는 걸 듣고 몸단장을 하는 것인지 샤워를 굉장히 열심히 하고 있었다고 한다.
 
참 엮으려면 이렇게도 엮고 저렇게도 이야기를 엮듯이 모두 그 이야기를 듣고 “우리 본다고 꾸미느라 바빴네!” 등의 농담을 했다. 어딘가 서글펐지만, 그래도 그 순간 유쾌했다. 이날 아무래도 할머니는 도제가 만든 ‘보고 싶은 사람을 보는 꿈’을 구매했나 보다.
 
 
 

환상 엘리베이터


 

 
환상 엘리베이터. 꿈속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 전에 나왔으면 하는 장소를 잘 떠올리기만 하면, 층마다 원하는 장소로 연결되는 꿈이래.
 

 

이 대목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 나는 365일 중에 과장 없이 363일 정도 꿈을 꾼다. 나머지 이틀도 꿈을 꾸지만, 기억이 나지 않을 뿐이다. 상상력에 한계인지 어느 샌가부터는 꿨던 꿈을 주기적으로 꾸고 있다. 그래서 꿈속에서 가는 학교, 바다, 호텔, 음식점 등등이 확실히 정해져 있다.

 

각 장소에서 하는 일은 현실에서도 그러하듯 매번 다르다. 가끔 제시간에 학교에 갈 때도 있고 지각을 할 때도 있다. 바다에 가서는 바로 앞에 있는 그네를 탈 때도 있고 산책을 할 때도 있다. 그중 가장 소름이 돋았던 것은 도서에서 나오는 호텔의 모습이다.

 

내가 꿈에서 호텔을 가는 날의 시작은 이렇다. 굉장히 으리으리한 금빛 호텔의 1층 로비에 올라가서 투명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고 싶은 층을 선택한다. 몇 층까지 있는지는 정확히 셀 수 없을 만큼 높고 옥상에는 구름 아래 정원이 있다. 물론 나는 매번 다른 층에 가서 쉰다. 요즘은 옥상 아래 뷔페에 가서 고급 요리들을 먹는 편이다. 이 꿈을 꾸고 깨는 날은 기분이 좋다. 몸은 뉘어져 있지만 정신이 쉬고 온 느낌을 받기도 한다. 아무래도 이 클립을 자주 구매하나 보다.

 

나는 중학교 때까지 모든 사람이 매일 꿈을 꾸는 줄 알았다. 당연히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 꿈을 1년에 1번 내지 2번 정도만 꾼다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의 충격이란, 여전히 크다. 더하여 한 프로그램에서 나온 수면센터에서 꿈은 수면에 깊게 못 들기 때문에 뇌를 계속 움직인다는 결과를 보고 굉장히 낙담하기도 했다.
 
그 당시에 누워있는 자세를 바꾸기도 해보고 실크 잠옷도 구매해보고 따뜻한 케모마일 차를 마시는 등 노력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슬프게도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꿈을 꾸는 것도 하나의 행운임을 상기시키려 한다. 보고 싶지만 볼 수 없는 사람의 입체 모습을 볼 수도 있을뿐더러 아주 다른 모습의 세상에서 찰나로 살 수 있다.
 
그리고 딱 꿈이 허용하는 범위까지 생생하고 행복하다.
 
꿈. 오늘은 또 무슨 꿈을 구매할까. 어디를 가게 될까. 누구를 만나게 될까.
 
 
 

컬쳐리스트 명함.jpg

 

 

[문소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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