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어둠이 말한다, 살아보자고 - 아무도 없는 곳

대화 외부의 공간에 앉아 또 다른 나들의 이야기를 엿듣다, 영화 <아무도 없는 곳>
글 입력 2021.04.05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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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객관적인 세계에는 직접 도달할 수 없다는 한계를 지닌 존재다. 우리 각자의 세계 중심엔 ‘나’가 있고 외부세계는 각자의 경험을 토대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인간에게 문화예술이란 일종의 수단으로써의 언어라는 생각이 든다. ‘나’밖에 모르던 우리가 문학, 영상, 음악, 공연, 미술 등 다양한 방식으로 형상화된 언어를 통해 외부세계와 상호작용하면서 ‘너’의 곁에 서는 법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외부세계와의 상호작용은 놀랍게도 ‘나’로 귀결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결국 나를 알아가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귀결되는 것과도 같다. 따라서 문화예술이란 사랑이 그러하듯 ‘나’와 ‘타인’을, 나아가 함께하는 ‘우리’에 대한 본질적인 앎을 통해 한 인간의 성숙을 돕는다고 믿는다.

 

김종관 감독의 영화 <아무도 없는 곳>은 타인과 주고받는 온기와 이야기가 지닌 힘을 다섯 명의 인물과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잘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는 7년 만에 서울로 돌아온 소설가 창석이 여러 일상적인 공간에서 익숙한 듯 낯선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며 이야기를 완성해가는 과정을 그렸다.

 

 

 

대화, 주고 또 받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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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 영화에는 총 다섯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영화는 소설을 쓰는 창석이 미영, 유진, 성하, 주은 네 명의 인물을 각기 다른 공간에서 만나고 그곳에서 얼마간의 ‘대화’를 나누는 장면들로 대부분이 채워진다.

 

<아무도 없는 곳>의 김종관 감독은 전작들에서도 대화 신을 통해 특색 있는 연출을 시도한 바 있다. 영화 <더 테이블>은 카페에 놓인 테이블 하나를 두고 그곳에서 하루동안 이루어지는 네 쌍의 손님들의 대화를 담은 영화다. 또 영화 <최악의 하루>에는 16분가량 인물 은희와 료헤이의 대화 신이 이어진다. 감독은 앞선 전작들을 통해 둘의 대화로만 이어지는 장편영화를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던 것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흘러오게 됐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대화라는 형식에 조금 더 집중하게 된다. 돌이켜보면 일상 속에서 대화에 참여하는 것이 아닌 대화를 외부에서 관찰할 기회는 흔치 않고, 그래서 대화를 우연히 엿듣게 된 날은 특별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상황들이 지닌 매력은, 이름도 성격도 역사도 모르는 두 사람을 두고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만으로 퍼즐을 맞추듯 대화 조각조각을 내 방식대로 상상을 더해 맞춰가는 데 있다. 그리고 김종관 감독의 영화는 이러한 대화 외부의 공간을 관객에게 하나씩 놓아준다. 그리고 1시간 반가량을 타고 가는 기차 안에서 뒷좌석에 앉은 두 탑승객의 이야기를 엿들을 때처럼, 관객의 귀와 마음은 영화 속 인물들의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기다릴’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들에게


 

앞서 말했듯 영화 대부분의 장면은 소설가 창석과 다른 네 명의 인물 간 대화 신이다. 대화 신 사이 곳곳에 놓인 장면들은 창석이 타인과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겪는 내면의 변화를 암시하고 또 보여준다.

 

창석은 인물들과의 대화 속에서 말을 하기보다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쪽에 속한다. 하지만 대화 신 사이에 섞인 창석의 단독 신들을 통해서는 듣는 행위만으로도 창석의 삶은 크게 뒤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 또한 대화 신을 보고 듣는 독자의 마음과도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화란 주고 또 받는 것이라 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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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석의 요동치는 내면은 이 영화가 일관되게 비추는 죽음을 떠올리게 했다. 또 감독은 <아무도 없는 곳>이 어둠을 잘 들여다보고 관찰할 수 있는 영화이기를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그래서인지 어둠 반대쪽의 빛, 죽음 반대쪽의 삶, 비일상 반대쪽의 일상 중 빛과 삶과 일상이 아닌 것들이 소중한 이유를 이 영화에서 찾을 수 있었다.

 

창석을 포함한 다섯 명이 지닌 상실감과 상처의 결을 내 안에서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평소엔 잘 들여다보지 못했지만 이미 존재했던 것을 우연히 발견한다는 것은, 타인의 아픔과 상실의 존재감을 멀리서나마 체감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서울의 공간들이 배경이 되었다고 한다. 또 카페, 박물관, 위스키 바 등 도심에 위치한 일상적인 공간들이 주가 된다. 하지만 요즘에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공중전화부스가 등장하기도 한다. 또 지금으로부터 몇십 년 전에 유행했을 법한 분위기의 카페가 공간적 배경으로 쓰이기도 한다. 경계를 알 수 없을 만큼 다닥다닥 붙어 혼란을 야기하는 상반되는 속도의 공간들처럼 빛과 어둠도, 삶과 죽음도, 우리의 마음도 그러하다.

 

모든 것의 끝에는 죽음이 ‘기다린다’는 진리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기란 쉽지 않다. 희망이나 기적 같은 것들은 인간이 을의 위치에 놓여 ‘기다릴’ 수밖에 없는 대상이고, 그들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또 한 번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한 질문을 곱씹게 한다. 하지만 영화 <아무도 없는 곳>은 우리가 ‘기다릴’ 수밖에 없는 약한 존재라서, 그렇게 가늘게 상실과 두려움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답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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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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