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하루 5분, 명화를 읽는 시간

알면 알수록 달리, 또 선명히 보이는 것들
글 입력 2021.03.31 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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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한 풍경의 거리가 부모님의 첫 데이트 장소였다는 것을 알고 난 후, 그 거리의 이름만 들어도 그날 초록빛의 연인 한 쌍이 어떤 마음으로 함께 거닐었을지 괜히 설레이게 되고, 어린 날 이해도 필요 없이 그저 신나는 리듬이 좋아 들었던 익스의 “안녕하세요” 속 가삿말이, 실제 멤버가 취업에 실패해 술을 진탕 마시고 쓴 것이라는 애달픈 후일담을 알고 난 후에는 그의 젊고 막막했던 날들을 내 커버린 삶과 비교하며 서툴게 공감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얼마나 더 알고 경험하느냐에 따라 달리 혹은 선명히 보이는 풍경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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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5분, 명화를 읽는 시간> 목차 중 일부

 

 

기무라 다이지의 <하루 5분, 명화를 읽는 시간>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고 지나쳤던 명화 속 숨은 이야기를 그림의 제목, 작가, 모델, 풍경, 성서 등, 각 장마다 특정 키워드로 나누어 알려주는 책이다.

 

나는 평소 단면적으로는 알 수 없는, 예컨대 역사와 문화에 따라 달라지는 특정한 색의 의미나, 사진과 영화 속의 숨은 장치, 연출 같은 ‘비하인드 더 씬’을 발굴해내는 것을 좋아한다. 여러 개의 작품을 대충 보고 넘기는 것보다 하나의 작품에 대해 찬찬히 알아보는 게 때로는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어떤 작품을 보고나면 유튜브나 커뮤니티에 올라온 해석 영상을 찾아보고, 그것에 대한 담론을 나누는 댓글의 현장에 기웃거리곤 한다. 이런 나의 특성에 기반해서, 명화의 숨은 이야기를 알려준다는 이 도서를 향유하게 되었고, 이렇게 리뷰까지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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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이 책은 부제목처럼 ‘반전 가득한 이야기’로 가득 채워져 있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읽게 되는 흥미로운 책이다. 예시로 잘 알려진 표현주의 화가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1863-1944, 노르웨이)의 '절규’ 에 대해 이 책이 이야기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일단 이 책을 읽기 이전에 나는 작품 속 절망적인 표정의 주인공을 보고, 그가 어떤 비극적인 사건을 겪고 충격을 받아 절규하는 것으로 이 그림을 알고있었다.(영화 ‘박하사탕’ 속 주인공이 지나간 인생을 후회하며 기찻길 위에서 “나 다시 돌아갈래 –“ 라는 대사를 치는 장면이 뭉크의 ‘절규' 속 주인공과 겹쳐 그렇게 느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의 설명에 의하면, 해 질 무렵 뭉크가 체험한 자연이 만들어낸 핏빛 노을의 환영에, 그림 속 주인공이 자연의 절규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귀를 막고 있다는 것이 이 작품의 원래 의도라고 한다. 작품이 완전히 새로이 보이는 순간이었다.

 

또 책의 부가적인 설명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예로부터 해가 넘어갈 때를 ‘땅거미 질 때(오마가토키 逢魔が時)’라고 표현하며 큰 재앙이 들이닥칠지 모를 불길한 시간이라는 의미로 쓰인다는데, 이렇게 명화의 숨은 이야기는 물론 다른 나라의 문화까지 알 수 있어 여러모로 유익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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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도 높은 색감과 화려한 화풍을 자랑하는 르누아르의 '여배우 사마리의 초상'

 

 

또 책을 읽고 특히 좋아하게 된 작가도 있다. 바로 이 책에 유달리 자주 등장한 것 같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 1841-1919, 프랑스)라는 인상주의 화가이다. 사실 르누아르의 그림은 일전부터 몇 점 알고 있었는데, 그림의 채도가 높고 화려하게 그려진 인물과 풍경이 취향에 맞아 종종 그의 그림을 찾아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찬란한 그의 그림과는 달리, 르누아르는 상층 부르주아 계급과 중산층 출신 화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인상파 화가 그룹 중 유일한 노동자 계급 출신이었으며, 그의 그림 속 빛나는 인물들이 실은 가혹한 삶 속에 놓여진 노동자들의 모습이라는 것을 책을 통해 알게 되어, 그의 그림을 좀 더 진중하게 살펴보게 되었다.

 

열약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르누아르는 ‘즐거운 그림만 그리겠다’는 신념으로 고된 노동자들의 모습을 파란 니스를 가득 칠해 번쩍거리는 효과를 주어 화려하게 표현 했다.

 

하지만 이와 달리 이들의 가난한 모습을 적나라한 사실로써 그린 부르주아 출신 작가 에드가 드가(Edgar De Gas, 1834-1917, 프랑스)의 그림을 연달아 보여주는 책의 전개를 통해 양극의 시각을 가진 두 작가의 그림을 비교해볼 수 있었는데, 특정 삶에 들어가 몸소 겪어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보는 시각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사실은 르누아르가 가난한 삶에 지친 노동자들을 누구보다 화려하고 즐겁게 그린 이유는 물질적으로는 부족한 삶이었지만 그런 삶 속에서도 행복한 날들이 있었기에 마음을 채웠던 경험에 기인한 것은 아닐까? 이렇게 나름의 해석을 덧붙이며, 배경을 알고 나니 오히려 더 빛나 보이는 르누아르의 작품을 감상하길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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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Moulain de la Galette)'

일상의 시름을 달래러 술집에 온 노동자들의 모습이 활기차게 표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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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의 '세탁부',  19세기 당시 유럽은

산업혁명 이후 직물 생산량이 급격히 늘고,

부르주아 계급의 다양한 섬유 제품 소비(모슬린, 레이스, 벨벳 등)로 인해

세탁부는 가혹한 노동업이라고 여겼다

 

 

이 밖에도 <하루 5분, 명화를 읽는 시간>은 고흐가 왜 똑같은 구도의 ‘아를의 침실’을 세 장씩이나 그렸는지, 다빈치의 ‘모나리자’ 속 여인은 전형적인 미인이 아닌데도 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초상화로 불리는지, 모네의 ‘포플러’ 연작 시리즈 속 포플러는 어떤 의미이며 정말 그림과 같은 색을 가졌을지 등, 명화에 대해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고, 또 그에 대한 답을 알려주며 그림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


사실 이 책을 받았을 당시, 밀려오는 일에 굉장히 바쁜 상태였다. 하지만 ‘하루에 20페이지라도 읽자’라는 다짐으로 매일 자기 전 이 책을 읽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쉽고 명쾌한 설명 덕에 정신 없는 한 주 속에서도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머리를 식히며 끝까지 즐겁게 완독할 수 있었다.

 

명화가 쉽고 즐겁다니, 한 걸음을 옮길 때 내는 소음마저 조심스러운 전통 미술관의 적막함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작고 길게 쓰여진 액자 밑 서문을 떠올리면 분명 역설적인 단어 같이 들리겠지만, 명화를 아는 것이 고위계층 혹은 지식이 많은 교양인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을 읽고나면 이해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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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5분, 명화를 읽는 시간>을 읽고

알게 된 미술 용어나 설명을 표시하며 읽었다

 

 

끝으로 <하루 5분, 명화를 읽는 시간>을 향유하는 내내 몰랐던 사실에 고개를 끄덕이고, 그림 속 인물의 조금 깨는 사생활에 충격을 받기도, 또 한 편으로는 한 면에 가득 채워진 아름다운 명화를 감상하느라 페이지를 넘기는 시간이 꽤 오래 걸렸던 순간 등을 경험한 풍족한 시간이었다.

 

앞으로 미술관에 갈 일이 생기거나, 인터넷을 서치하다 우연히 이 책에서 설명된 그림을 보게 된다면, 이전처럼 그냥 지나치지 않고, 더 넓고 깊어진 시각으로 유심히 보게 될 것 같다.

 

 

*
 
하루 5분, 명화를 읽는 시간
- 명화에는 놀라운 반전이 숨어 있다? -


지은이 : 기무라 다이지
 
옮긴이 : 최지영

출판사 : 북라이프

분야
미술일반/교양

규격
160*215

쪽 수 : 300쪽

발행일
2021년 03월 23일

정가 : 16,500원

ISBN
979-11-91013-17-7 (03600)

 

 

[정은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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