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12월에는 그의 음악을 꺼내 듣는다 [음악]

글 입력 2023.12.08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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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2월이 되면 기침처럼 터져 나오는 그리움이 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난 이의 발자국 위를 애써 다시 밟는 일도 이제 습관이 되었다. 여섯 해 전 눈을 감은 종현의 목소리를 찾아 듣는 일 말이다.

 

샤이니를 크게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들과 같은 소속사의 다른 그룹을 좋아하던 어린 나는 해당 소속사 가수들의 음악을 골고루 챙겨 듣곤 했다. 그중 종현의 솔로 앨범은 꽤나 자주 들었다. 신보를 발매할 때마다 버선발로 달려가 반겼다. 날카로우면서도 강인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찢어지는 종현의 다양한 목소리가 좋았다.

 

그가 세상을 떠나던 날은 아직도 선연하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는 거짓말이라 여겼다. TV를 틀면 당장이라도 나올 것 같은 얼굴과 이어폰을 꽂으면 당연하게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쉽게 믿기 힘들었다.

 

이후에도 우연히 그의 노래를 듣거나 얼굴을 떠올리는 날에는 종종 울었다. 특별히 그의 팬이 아니었음에도 종현은 나의 학창 시절을 함께한 일부였다. 그의 목소리에 빚진 적이 많았다. 갚아 나갈 길은 눈물을 참지 않는 것뿐이었다.

 

꽤나 오랜 시간이 흘렀다. 슬픔보다 그리움이 커질 때쯤 종현의 노래를 들어도 울지 않게 되었다. 그의 생각을 하지 않는 날들을 보내며 한 해가 끝나 갔다. 그럼에도 12월이 되면, 눈이 내리고 연말의 훈훈한 기운이 거리에 감돌면 나는 어김없이 6년 전 그날 그 순간으로 돌아가고 만다.

 

예술가가 떠난 뒤 세상에 남은 작품은 애도의 통로가 된다. 그리하여 오늘은 그 시절 내가 좋아한 그의 음악을 몇 곡 소개하고자 한다. 마냥 슬프고자 하는 의식은 아니다. 종현의 목소리에 함께 웃고, 떠들고, 춤추는 것은 그의 음악에 오랜 생명력을 부여한다. 그렇게 오래 살아남은 음악들이, 종현을 사랑하고 종현을 기억하는 많은 이들의 곁에서 위로가 되어 준다면 좋겠다.

 

 

 

 

시간이 늦었어 (Bonus Track)

 

종현의 첫 번째 솔로 앨범 ‘Base’의 마지막 트랙이다.

 

끈적한 베이스라인과 늦은 시간에도 ‘너’를 보내기 싫어하는 투정 같은 가사가 곡의 농염한 분위기를 말해 준다. 그런가 하면 간주의 산뜻한 휘파람과 종현의 세밀한 가성이 이 곡을 마냥 뻔한 곡으로 남지 않게 한다.

 

 

 

 

White T-Shirt

 

2016년 발매된 종현의 첫 정규 앨범 수록곡이다.

 

SM 엔터테인먼트가 2015년경부터 주로 내세운 트로피컬 하우스의 정석이다. 경쾌한 피아노 멜로디와 시원하게 내지르는 종현의 고음이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듯하다. 지금은 겨울이지만 쨍한 햇살과 푸른 바다가 그리울 때면 이 곡을 꺼내 듣기만 해도 언제든 여름으로 훌쩍 떠날 수 있다.

 

 

 

 

02:34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곡의 분위기는 밝고 어수선하다.

 

종현이 오랫동안 진행한 라디오 ‘푸른 밤 종현입니다’ 녹화가 끝나는 새벽 2시에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나누는 사소한 대화가 가사의 전부다. 전화 통화나 이야기 나누는 소리를 종현이 직접 녹음해 현실감이 살아 있는 곡이다. 자연스러운 그의 목소리에 그리움이 문득 고개를 든다.

 

 

 

 

Lonely (feat. 태연)

 

2017년 발매된 소품집 ‘이야기 Op. 2’의 타이틀곡이다.

 

프로젝트 그룹 S.M. THE BALLAD에서 ‘숨소리’로 호흡을 맞춘 종현과 태연이 다시 만났다. 이별을 준비하는 두 사람의 진심과 거짓말이 반복되는 가사는 실제 연인의 대화를 듣는 듯 생생하다. 그러나 덤덤한 느낌의 피아노와 현악기는 오히려 따뜻하게까지 느껴져 아이러니한 겨울의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우린 봄이 오기 전에

 

종현이 떠난 후 발표된 유작 ‘Poet | Artist’의 마지막 트랙이다.

 

고백하자면 이 앨범을 자주 찾아 듣지 못했다. 슬픔 때문일 수도, 슬픔을 변명으로 내세운 거부감 때문일 수도 있다. 그의 부재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앨범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이 곡만은 소중히 꺼내 들었다. 봄이 오기 전에, 따뜻하기 전에 한번 보자는 그의 제안에 어찌 그러자고 대답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를 만날 수 있는 봄이 이제는 영영 오지 않게 되었지만, 기다리는 마음만으로 어디선가 춘풍이 불어오는 듯하다.

 

*

 

이 다섯 곡은 정말 많이 들었고, 앞으로도 오랜 시간 나의 플레이리스트에 남아 있을 테다.

 

유명 그룹 샤이니의 메인 보컬이자 출중한 실력의 싱어송라이터로서 종현이 남긴 수많은 곡들은 케이팝 역사에서 유의미한 지표가 되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일 년 중 하루, 12월의 단 한순간이라도 그 유산을 찾아 들었으면 좋겠다.

 

그의 음악을 들으며 슬퍼하거나, 그리워하거나, 혹은 즐거워할 수도 있다. 듣는 이의 자유다. 아무렴 어떤가. 듣는다는 행위로 생명을 얻은 그의 음악들은 넘치는 사랑 아래 계속 살아갈 수 있다. 그 달콤한 삶의 맛에 가끔은 굴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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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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