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갈 수 있을까 [문화 전반]

글 입력 2021.03.31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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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라는 나라만큼 ‘먼 나라 이웃 나라’라는 관용구가 잘 어울리는 나라가 있을까?

 

급격한 경제 성장을 거치며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온 한국만큼이나 천지개벽 수준의 발전을 해온 나라가 중국이다. 폐허에서 세계 무대에 서는 대국이 되기까지 짧은 시간이 걸렸고, 민주화를 향한 격변의 현대사를 겪었다는 점에서 한국과 중국은 어딘가 닮아있다.

 
하지만 동아시아 사회가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유사성을 배제한다면 또 많은 것이 다르다. 최근 중국의 행보와 고조되는 반중 정서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국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중국 지식인의 저서를 접했다.
 
『인생』, 『허삼관 매혈기』, 『형제』 등 중국 현대사의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다룬 소설들을 집필해 늘 노벨 문학상에 거론되는 중국의 대표 소설가 위화의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는 현대 중국을 10개의 키워드를 통해 객관적으로 응시한다.
 
인민, 영수, 독서, 글쓰기, 루쉰, 차이, 혁명, 풀뿌리, 산채(山寨), 홀유(忽悠)가 바로 그 키워드다. 위화는 제3자가 알 수 없는 중국의 모습을 내부자의 시선에서 가감 없이 드러낸다. 날카롭고 솔직한 그의 관점 덕분에 이 책은 중국 대륙에서 아직까지도 출판 금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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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장에서는 위화가 어린 시절 가졌던 ‘마오쩌둥이 곧 인민’이란 생각에서 톈안문 사건을 겪으며 군대와 탱크 앞에서도 진실과 정의를 향한 인민들의 외침에서 진정한 인민의 의미를 깨달았노라는 이야기다. 한국어판 제목인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도 이 대목에서 빚어진 문장이다.
 
<영수>장에서 등장하는 ‘영수(領袖)’는 역시 마오쩌둥이다. 이 장에서는 위화의 어린 시절 영수 마오쩌둥 신격화의 시대를 묘사하고, <독서>장에서는 문화대혁명 때문에 읽을 책이라곤 사회주의 혁명문학과 『마오쩌둥 선집』, 그리고 『마오 주석 어록』뿐이었던 시절을 회상하며, <글쓰기>장에서는 문화대혁명 당시의 대자보 쓰기로부터 비롯되어 국가로부터 배정받은 치과의사라는 직업에서 벗어나 작가로 발돋움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루쉰>에서는 왜인지 <영수>장을 읽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루쉰 역시 마오쩌둥과 비슷하게 절대적인 존재였기 때문일 것이다. <차이>장에선 빠른 시간 내에 극단에서 극단으로 격변의 시기를 거친 중국 사회의 ‘격차’에 대해서 조명한다.
 

 

“돈은 행복을 가름하는 기준이 아닙니다.” 이 중국 유학생의 한마디를 듣자 나는 몸이 떨려왔다. 이는 한 개인의 목소리가 아니라 오늘날 일부 중국인 집단이 내는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날이 발전하는 중국의 이미지에 푹 빠져 아직도 1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상상조차 하기 힘든 가난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다. 나는 중국인의 진정한 비극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빈곤과 기아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이 빈곤과 기아보다 더 무서운 것이다. (125p)

 

 
<혁명>은 허울뿐인 혁명과 서로를 의심하게 하고 배신하게 만드는 광적인 시대를 조명하고 오늘의 혁명 동지가 내일의 계급의 적이 되게 만든 중국 사회에 팽배했던 ‘불신’에 대해 다룬다. <풀뿌리>는 정치 권력의 재분배였던 문화대혁명과 경제 권력의 재분배였던 개혁개방을 설명하고 개혁개방 이후 중국 경제를 비약적으로 도약시킨 민중에 관해서 서술한다.
 
<산채(山寨)>와 <홀유(忽悠)>는 단어만으로는 어떤 내용이 쓰였을지 짐작하기 어렵다. 단어의 뜻을 설명하자면 산채는 ‘모방’과 ‘짝퉁’을 의미하고, 홀유는 ‘사기’에 비해 비교적 부드러운 ‘속임수’를 의미한다. 두 단어는 모두 오늘날 중국 사회의 급속하고 불균형적인 성장의 부작용으로서 설명되기에 두 단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황금만능주의를 추구하며 원칙이 무시되고 도덕성이 결핍된 편법적인 중국 사회를 의미하는 것이 산채와 홀유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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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은 국제사회의 눈치도 보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어린아이 같다. 맹목적 애국주의가 비이성적으로 표출되고 극단적 중화주의가 팽배해있다. 국가를 향한 비이성적인 충성심은 중국 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주변으로 뻗쳐나간다. 소수민족을 탄압하고 다른 나라의 문화를 중국의 것이라고 우긴다.
 
최근에는 신장에서의 강제노동과 소수민족 차별에 반대 목소리를 내며 신장에서 생산한 면화를 구입하지 않겠다고 밝힌 글로벌 패션 브랜드를 향한 중국의 불매운동이 있었다. 논란이 불거지자 H&M의 경우 중국의 온라인 쇼핑몰에서 퇴출되었고, 지도 어플에서는 H&M의 오프라인 매장이 검색되지 않는 등의 조치가 취해졌다.
 
나이키, 아디다스 등의 글로벌 패션 브랜드의 중국 모델들은 해당 브랜드의 모델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문을 서둘러 발표했다. 이런 상황을 미루어 짐작건대 중국인에겐 ‘표현하지 않을 자유’ 또한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이것은 허구의 날짜일까? 아니다. 진실이다. 이 날짜는 1989년 6월 4일의 톈안문 사건을 가리킨다. 6월 4일은 중국의 인터넷에서는 금지된 날짜다. 사람들은 이날을 기념하면서 교묘하게 ‘5월 35일’이라는 가상의 날짜를 만들어 정부 당국의 인터넷 검열을 피하고 있는 것이다. (7p)

 

 
책의 서문에서 위화는 ‘5월 35일’이라는 가상의 날짜를 언급하며 자신의 소설과 산문집의 차이에 대해서 말한다. 소설에서도 중국을 비판하는 장치들이 있지만, 소설은 ‘허구적’이기 때문에 중국 내에서 출판도 가능하다. 이를 ‘5월 35일’식 자유라고 말한다. 반면 산문집은 ‘허구성’이 없기에 중국 내에서 출판도 불가하다. ‘6월 4일’의 자유는 없는 중국의 현실이다.
 
재밌는 점은 중국인들은 ‘5월 35일’이라는 단어로 중국의 인터넷 검열을 피하고 있으며, 불매 리스트 중 하나였던 나이키에서 행사를 하자 35만 명이 몰리며 상품이 조기 매진됐다는 점이다. 하지만 강력하게 억압하는 중국 정부와 빠져나갈 뒷구멍을 확보해놓은 중국인들 사이의 아이러니한 관계는 사실 아슬한 외줄 타기처럼 보인다. 중국이 언제 폭압의 방망이를 크게 휘두를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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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산채’에서 찾을 수 있었다.
 

 

오늘날 중국 사회의 도덕성 상실과 시비의 혼돈이 산채 현상을 통해 유감없이 표현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사회생태에 기초하여 ‘산채’라는 단어는 중국인들의 마음속 깊이 틀어박혔다. 표절과 모방, 악의적 조롱, 비방 등 원래는 불법적이고 저급한 것으로 간주된 행위에 존재 이유를 제공하고, 사회여론과 사회심리적인 측면에서 점차 합리적인 지위를 확보해나가고 있다. (306p)

 

 
산채 현상이 중국 사회의 불균형적 발전의 폐단이라고는 하나, 중국인들은 산채 현상을 통해 돈의 맛을 보았고, 이러한 현상이 반복되면서 결국에는 산채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방향까지 나아가게 되었다고 이해된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짝퉁 명품이나 디자인과 기능을 베낀 전자 제품들, 또 끊임없는 한국 프로그램 표절 논란도 ‘산채’라는 개념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더 나아나가서는 최근 한국의 문화를 중국의 것이라고 우기는 일들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이런 터무니없는 국가 차원의 아집들을 보면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경제적 발전만큼 사회 인식이 따라오지 못하고 크게 정체된 느낌을 준다.
 
의미 없는 문자들과 목소리만 공허하게 울렸던 문화대혁명 시기의 대자보와 자아비판 대신 진정한 의미의 내부 비판이 현재 중국에 필요한 게 아닐까 싶다. 21세기에도 여전한 중국이 스스로 자정할 수 있으리란 낙관을 지금 당장 기대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중국의 곪은 부위를 정확히 짚어내는 위화의 산문집을 읽으면 그들에 대한 기대가 생기기도 한다.
 
인권 위에 국가 세워 폭주하는 중화주의는 과연 멈출 수 있을 것인가?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는 위화의 깨달음이 공허한 울림이 아니었음을 중국이 스스로 증명해내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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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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