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역사적 인물을 소재로 한 뮤지컬,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을까? [공연]

글 입력 2021.03.18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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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문학작품과 극은 역사적 인물을 소재로 삼고 있다.

 

우리는 역사적 인물의 삶을 통해 그 시대에 살았던 특정 인물의 감정과 상황에 감정 이입 할 수 있으며, 동시에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다양한 장르에서 역사적 인물을 제목으로 한 작품들(선덕여왕, 대장금, 주몽 등)이 소위 대박을 터트리며 흥행하였고, 이는 뮤지컬 분야에서도 동일하게 작용했다.

 

오히려, 뮤지컬에서는 특정 역사적 인물을 타이틀 롤로 하는 것이 성공 공식으로 여겨지는 만큼, 다른 장르보다 더욱 이런 경향이 강하다고 할 수 있겠다. <모차르트>, <엘리자벳>, <마리 앙투아네트>, <마타 하리> 등 수많은 작품이 역사적 인물들의 삶을 그리고 있으며 흥행에 성공하고 현재까지 꾸준히 재연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에는 피해 갈 수 없는 문제가 하나 있다. 바로 “고증”에 대한 문제이다. 특정 인물을 다룰 때는 무엇보다 사실적인 고증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 인물을 미화하거나 왜곡하는 것이 아닌, 사실 그 자체를 그려야 한다.

 

물론, 공연은 그 인물의 전체 삶을 서사적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연출자(또는 극작가)가 가장 흥미롭게 느끼거나 중요한 사건을 중심으로 하여 만들어진다. 또한, 극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사건을 ‘재현’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특정 순간에 초점을 맞추어 상상력을 더해 진행하는 것이지 그 인물의 모습을 연출자가 사실과 다르게 왜곡하여 표현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이것이 관객들이 허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면, 그 작품은 대중들로부터 비판받을 수밖에 없다.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명성황후>, <엘리자벳>, 이 세 작품을 예로 들어서 설명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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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를 살펴보도록 하자.

 

본 극은 프랑스 혁명을 통해 오인된 프랑스의 마지막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모습에서 벗어나 다른 각도로 마리 앙투아네트의 삶을 그리고 있다. 그녀의 삶을 조명하여 그녀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자 했기 때문에, 프랑스 혁명은 단편적으로 표현된다. 작품은 혼란스러웠던 당시에 마리 앙투아네트(이하 마리)가 얼마나 심리적으로, 정치적으로 불안정했는지를 보여주며 관중으로 하여금 그녀의 삶에 동감하고 연민을 느끼게 한다.

 

마리는 어린 나이에 자신의 나라를 떠나 프랑스로 와 루이 16세와 정치적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정략혼을 맺었다. 하지만 당시 프랑스와 관계가 좋지 않았던 오스트리아의 공주라는 이유로 귀족들과 백성들의 미움을 한 몸에 받았다. 이러한 그녀의 평판을 급격히 악화시킨 것은 극에서도 나오는 일명 ‘목걸이 사건’이다.

 

그녀는 흔히 그녀를 대표하는 어구인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고 하세요”라는 말을 한 적이없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의 사치로 프랑스가 몰락 직전이었다고 알려졌지만, 역사가들의 연구에 의해 그녀의 역대 왕비 누구보다 검소한 삶을 살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처럼 그녀의 악녀 이미지는 조작된 것이었다.

 

뮤지컬에서 이런 점이 잘 드러나고 있으며, 극이 진행되는 동안 불운했던 그녀의 삶에 어느새인가 동정심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을 시민들이 단순히 금전적인 이유로 행동한 결과라고 표현하여 그 이념과 의의를 왜곡시켰다.

 

이에 국내 초연 당시, 프랑스혁명을 비하했다는 비판이 많이 제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를 망하게 한 악녀로 인식되던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인물에 대해 다른 각도로서의 생각해 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이 정도까지는 관객들에게 용인이 가능한 수준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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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뮤지컬 <명성황후>이다.

 

가장 성공한 한국 창작 뮤지컬인 만큼, 해외에서도 공연된 적이 있고 한국 뮤지컬 분야에 많은 업적을 세운 작품이다. 초연이 올라온 1995년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올라오고 있으며,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 뮤지컬은 큰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역사적 고증의 오류, 즉 ‘명성황후’라는 인물에 대한 미화이다.

 

명성황후는 호칭에 대한 논란부터 그녀의 행보에 있어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인물이다. 그런데도 명성황후에 대한 평가는 조선을 망하게 하는 데 일조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을미사변을 계기로 하여 그녀의 삶보다는 일본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에 지금까지 ‘명성황후’라는 인물은 제작자의 흥미를 끌어 많은 작품으로 만들어졌다.

 

특히, 인기 드라마였던 드라마 <명성황후>에서는 “내가 조선의 국모다”라는 유명한 대사를 남기며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되었고, <불꽃처럼 나비처럼>에서도 가련하고 역사적 소용돌이에서 희생된 비운의 국모로 그려졌다.

 

뮤지컬 <명성황후> 또한 명성황후의 부정적인 면을 모두 없애고, 그녀를 철저히 미화 시켜 그려내고 있다. 이 극에서 그녀는 고종을 사랑하고 섬기는 부인이자, 세자를 사랑하는 어머니였다. 또한 당대 위태로웠던 조선을 지키기 위해 외국의 문화를 열심히 배우고, 뛰어난 외교를 펼치기 위해 노력했던 총명하고 훌륭한 왕비로 그려진다. 이에 비해, 흥선대원군은 무능력하게 그려진다. 더 나아가, 그녀는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매우 컸던 것으로 그려진다.

 

역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 이 극을 본다면 이러한 미화에 치가 떨리는 수준이다. 특히, 2막 마지막 장면인 “백성이여 일어나라”가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이자 대표 넘버로 여겨지는데, 이 장면은 엄청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분명, 이 작품이 가진 (작품으로서의) 역사와 한국 뮤지컬계에 끼친 영향이 적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작품이 계속해서 재연되는 만큼, 이러한 미화가 어느 정도는 수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화예술은 단순히 오락으로서의 역할 뿐만 아니라 교육의 역할도 수행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 작품은 역사적 지식이 미비한 관객들에게 잘못된 역사적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역사적 인물을 중심으로 하여 극을 만들 때 이처럼 미화하고 왜곡하는 것은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방해하는 큰 요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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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뮤지컬 <엘리자벳>을 살펴보겠다.

 

엘리자벳은 오스트리아의 마지막 황후이자 헝가리 왕국의 왕비이며 그녀의 성명은 엘리자베트 아말리에 오이게니(별명 씨씨)이다. 그녀는 평생을 황궁에서 나와 떠도는 생활 하다가 무정부주의자인 루케니에 의해 스위스에서 암살당했다. 비텔스바흐 가문의 바이에른에서의 공작 막시밀리안 요제프와 바이에른의 초대 국왕인 막시밀리안 1세 요제프의 딸인 바이에른 공주 루도비카의 차녀였던 그녀는 매우 자유로운 환경에서 자랐다.

 

하지만, 그녀에게 첫눈에 반한 프란츠 요제프 1세로 인해 그와 결혼하여 오스트리아의 황후가 되었다. 하지만, 자유로운 그녀의 성향은 엄격한 궁중의 분위기와 맞지 않았고, 특히 그녀의 시어머니였던 소피 대공비와 계속해서 대립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는 소피 대공비와의 정치 싸움으로 인해 아이의 양육권까지 잃고, 요제프의 방관으로 인하여 점점 지쳐갔다.

 

뮤지컬 <엘리자벳>은 그녀의 이런 삶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 극은 그녀의 불운한 삶을 그리는 데 집중하고 있지만 동시에 극에서 사회자 역할을 하는 루케니를 통해 부정적인 측면도 전달하고 있다. 즉, 그녀의 명암이 모두 보인다. 이로써 관객은 ‘엘리자벳’이라는 인물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 주체적으로 생각해 보게 된다. 동시에 엘리자벳과 루케니의 감정 모두에 이입하게 된다.

 

따라서 역사적 인물의 삶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 때 <엘리자벳>처럼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 모두 다루어 그 인물에 대한 판단은 관객에게 남기는 것이 가장 좋은 사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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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세 작품의 비교를 통해 역사적 인물을 소재로 한 뮤지컬의 창작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또한, 어떤 작품이 가장 적절한 예시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독자 여러분은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으신가요? 그리고 어떤 작품이 가장 고증이 잘 되면서도 극적으로도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김소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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