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잠재적인 마법의 순간을 위한 101번째 시도 [미술/전시]

글 입력 2021.03.13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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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진행 중인 권하윤 작가의 '잠재적인 마법의 순간을 위한 XX 번째 시도'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퍼포먼스를 예약하셨다면 읽지 않고 경험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

 

'Everything you can imagine is real 상상할 수 있다면 그건 이미 현실이다'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다가오는 현실이 막막해질 때, 해보고 싶은 욕망에 보잘것없는 내가 비쳐 자신감을 잃어갈 때 이 문장을 되뇌곤 한다. 하고 싶다고 생각했으니 진짜로 해낼 수 있다고. 그렇게 몇 번 다독이고 나면 정말 뭐든지 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


인류가 살아온 방식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인류는 스스로 볼 수 없는 자신의 어깨너머를 바라보며 몇천 년이라는 세월을 달려왔다. 그동안 세상은 상상하지 못할 만큼 변화했다. 말도 안 된다던 누군가의 상상이 먼 훗날 세상을 바꾸었다. 어제의 상상은 내일의 현실이 된다. 두 발로 달리던 인간은 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이제는 푸른 별을 떠나 끝없는 밤하늘로 날아간다. 이 정도면 인류의 역사를 상상의 역사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지금 이곳에서도 항상 저기 어딘가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한 사람이 동시에 수많은 세계를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비록 꺼내서 보여줄 수 없고 말로 형언하기도 어려워 상상 속에 존재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 세계들이 실재가 되어 나타난다면 어떨까.

 

 

 

또 다른 우주, 멀티버스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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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진행 중인 《국립현대미술관 다원예술 2021: 멀티버스》는 예술가들을 통해 이 상상의 세계를 현실로 끌어온다. 멀티버스(Multiverse, 다중우주)란 우리 우주가 유일하게 존재한다는 하나(uni)의 우주(universe)론에서 벗어나 여러(multi) 우주가 존재한다는 생각이다. 양자역학에서는 이를 평행 우주로 설명하는데, 같지만 다른 수많은 우주들이 평행선을 이루며 공존하고 있다고 말한다.

 

미술관에서 다중우주니 양자역학이니 하는 말을 마주쳐야 한다는 것이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국립현대미술관이 멀티버스라는 이름을 내세운 이유는 예술 역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예술가들은 끊임없는 호기심으로 세계를 탐구하여 자신만의 소우주를 만들어낸다. 현실의 일부분을 심어 상상력으로 무럭무럭 자라난 소우주는 현실과 다른 형태로 우리 주위를 공전한다. 우리가 흔히 작품이라고 부르는 것들 말이다. 그러니 미술관에서의 메타버스란 예술가가 상상한 소우주들의 존재를 느껴보는 것일 테다.

 

지금까지의 작품 감상은 주로 시선을 통해 이뤄졌다. 관념적인 의미에서 눈길을 따라 작품 속으로 걸어들어갔다면 첨단 기술의 발달은 전혀 다른 몰입적인 체험을 가능케 하고 있다. VR, AR, AI 등의 기술은 상상과 현실의 물리적인 접점을 만들어 낸다. 예술가가 상상한 가상의 우주는 현실에 '실재'하게 되며 우리는 우리의 신체를 이용해 그 우주로 걸어들어간다.

 

그렇기에 이 전시는 실제로 일종의 멀티버스를 구현해 내는 셈이다. 예술가들이 창조한 멀티버스를 통해 현재 사회와 개인이 어떤 질문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예술과 기술의 적극적인 만남이 어디까지 실현될 수 있을 것인지를 탐구한다. 2월부터 12월까지 총 여섯 작가의 우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2월과 3월의 첫 문을 여는 것은 권하윤 작가의 VR 퍼포먼스 '잠재적인 마법의 순간을 위한 XX 번째 시도'이다. 그리고 글의 제목에서 이미 말했듯, 나는 101번째 체험자였다.

 

 

 

비밀의 문이 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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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각 5분 전까지 도착해달라는 안내를 받고 모인 우리는 총 다섯 명. 안쪽에서 안내자가 도와줄 것이니 따르면 된다는 말을 들었다. 사진 촬영은 삼가주시고, 안전에 유의해달라는 문구를 다시 한번 읽고 작은방으로 들어갔다. 마법이라는 제목 때문인지 비밀의 문이 열리는 기분이었다.

 

암전이 된 깜깜한 시야 속에 갑자기 밝은 스포트라이트가 켜졌다. 방 한가운데 놓인 VR 기기들이 빛을 받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비장해서 마치 선택받은 용사가 된 것 같았다. 점점 밝아지는 빛에 둘러보니 온통 하얀 방이다. 바닥에는 VR 기기를 중심으로 오각형이 흰색으로 여러 겹 그려져 있고, 벽에는 점선을 따라 움직이는 손을 그린 그림들이 있었다.

 

분명 안내해 주시는 분이 있다고 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한 남자분이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오각형의 모양을 따라 한 번, 두 번, 세 번. 아무 말도 없이 빙글빙글 뛰다 VR 기기를 꺼내 쓰는 모습에 당황스러웠다. 기기를 작동시켜 이리저리 확인해보더니 벗고 우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리로 오라는 것이다.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던 나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만 봤다.

 

내 옆에 있던 친구가 먼저 도전해보기로 했다. 쭈뼛거리며 다가가 VR 기기를 쓴 친구는 안내하는 말을 듣다 어떤 행위를 하기 시작했다. 허공을 꾹꾹 누르더니 이내 무언가 쥐고 오각형 안을 바삐 돌아다녔다. 그리고 그런 친구의 주변을 남자분이 맴돌았다. 처음에는 안전을 위해 따라다닌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동작이 눈에 들어왔다. 친구의 손이 지나간 궤적을 맞은편에서 따라 하며 물 흐르듯이 연결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두 사람이 가상과 현실을 초월하여 서로 춤을 추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닿지 않지만 마치 닿을 것처럼 마주 보고 있는 가상과 현실의 손. 그제서야 이 작품이 어째서 VR 퍼포먼스 작품이며 퍼포머가 필요했는지 깨달았다. 퍼포머는 가상과 현재를 이어주는 매개자였던 것이다. 양쪽 모두에 존재하는 자로 인해 두 우주는 손의 행위로 이어져 공존하고 있었다.

 

또 다른 관람객인 줄 알았던 여성분이 벽에 그려진 손 모양들로 춤을 추며 나에게 다가왔다. 그러니까, 다섯인 줄 알았던 이 프로그램의 체험자는 사실 세명이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닿지 않는 거리를 유지한 손에 이끌려 나는 보이지 않는 세계로 들어갔다.

 

 

 

그곳에 존재하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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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적인 마법의 순간을 위한 XX 번째 시도'

 

 

알 수 없는 기계로 가득 찬 공간이었다. 세계 전체가 하나의 기계 같았다. 이리저리 꼬인 회로들과 차가운 기계 사이에 작게 자란 풀들이 존재하는 곳. 그곳에 내 손이 있었다. 허공에 나타나는 손의 형태에 손을 맞춰보고 있으니 가상의 손이 진짜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손을 꼭 쥐었다 폈다. 그 세계에 나는 딱 손 하나만큼의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손의 감각에 익숙해진 후 고개를 드니 중앙에 기둥이 하나 있었는데 밝게 빛나는 빛 덩어리가 둥둥 떠있었다. 그걸 채집해 공간 곳곳의 빛나는 위치에 가져다 넣으면 된다고 했다. 어렵지 않은 일이라 순조롭게 빛을 심어주었다. 적막하게 느껴졌던 공간이 어느새 활발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이제 다시 보니 중앙의 기둥이 세계수처럼 보였다. 나무가 생기를 머금으며 크게 자라나기 시작했다. 동력을 얻은 기계처럼 펌프질하고 운동하면서 세계는 다음에 일어날 행위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다음으로 어디선가 반딧불이가 날아왔다. 현실의 반딧불이보단 게임의 반딧불이를 닮았다. 구체적인 형체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쫑쫑 모여있는 작은 빛 덩어리들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면 어느 순간 하늘 위로 올려보낼 수 있다. 생각보다 잘 모여지지가 않아 애를 먹었다. 실제로 잡을 수 없으니 더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여야 했다.

 

그렇게 하늘로 올라간 반딧불이는 별자리가 되어 머리 위를 반짝였다. 별들이 움직이며 도는 사이 사위가 점점 어두워진다. 완벽한 어둠에 휩싸이면 내 몸은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잠재적인 마법의 순간을 위한 XX 번째 시도


 

권하윤 작가는 현실과 가상을 맴돌며 기억과 재현에 대한 작업을 해오고 있다. 주로 타인의 기억을 듣고 자신의 상상을 입혀 기억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기억에 대한 공동의 공간을 관람객이 몰입감 있게 느낄 수 있도록 3D 애니메이션과 VR 등을 자유롭게 활용한다. 이렇게 재가공된 기억은 가상이지만 실제처럼, 어쩌면 실제보다 더 밀도 높게 우리를 빠져들게 한다.

 

'증거 부족(2011)'에서는 프랑스로 망명을 신청한 나이지리아의 난민 오스카의 기억을, '489년(2015-2016)'에서는 DMZ에서 근무했던 한 군인의 경험을, '구보, 경성 방랑(2020)'에서는 1920, 30년대 신문 속 만화의 이미지로 구보가 거닐었을 기억 속의 경성을 환상적으로 재현했다.

 

이는 기억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과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끌어낸다. 기억은 주관적인 것인데 이를 객관적으로 받아들여도 될지. 심지어 작가처럼 듣고 본 기억의 재현은 원래의 기억과 어떤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고 말하면 좋을지. 기억은 저장되었다 원본 그대로 꺼내지는 것인지, 아니면 매 순간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인지. 기억은 항상 현실과 가상 사이 어딘가에 놓여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권하윤이 만들어낸 기억은 실재하지만 실재하지 않았던 세계이다. 가상이지만 현실이라는 VR과 닮은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작업들이 권하윤이 만든 기억에 푹 빠져들게 하는 것이었다면 이번 '잠재적인 마법의 순간을 위한 XX 번째 시도'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현실과의 접점을 만들어 낸다. 그것이 앞서 말했던 퍼포머의 존재이다. 각자의 궤도를 돌며 만나지 않지만 서로를 공전하는 두 세계의 우주. 퍼포머와 관람객의 손이 절대 닿지 않는다는 것이 가상과 현실의 거리감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관람객이 체험을 하는 순서에 따라 조금 차이가 있겠지만, 모든 관람객은 자신의 체험 전후로 다른 관람객이 현실이 아니라 가상에서 헤매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게 된다. 분명히 그곳에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 상상하게 된다. 모순적이지만 이 과정은 가상이라는 또 다른 우주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는 일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경험한 그곳이 과연 실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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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ia Pellegrini on Unsplash

 

 

처음 전시 공간에 들어섰을 때부터 왜 하필 가상과 현실을 잇는 도구로 손을 선택했을까 궁금했다.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로 이끄는 것도, 그 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것도, 관람객의 행위를 따라다니는 것도 모두 손의 역할이다. 가장 기술적인 세계 안에서 가장 인간적인 행위를 해야 하는 것이 인상적이지 않은가. 주어진 미션들을 통해 빛을 불어넣고 생명을 자라게 해 작은 우주를 관장하게 한다. 자연스레 씨를 뿌리고 농사를 짓고 생명을 키워낸 인류의 기억이 녹아있을 손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 손에 가상의 기억을 덧씌우며 인류의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이 공간에 경외감이 들었다. 인간은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해석이지만 5라는 숫자를 눈여겨봤다. 다섯 명의 사람과 오각형 등 5로 연결되는 것이 많았다. 체험을 하는 순간에는 눈앞의 행위에 빠져 정확히 세지 못했는데 모든 행위들이 다섯 번 정도 이루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숫자 5는 문화마다 조금 차이가 있지만 우주를 나타내는 숫자이자 인간을 상징하는 숫자이다. 인간이 두 팔과 다리를 쭉 뻗으면 오각형의 모습이 되기 때문이다. 우주는 고대부터 물, 불, 공기, 흙 그리고 정신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이 되었다. 더불어 플라톤은 정오각형의 입체인 정십이면체가 우주의 모습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이러한 숫자 5를 사용한 것은 오각형 위에 세워진 가상의 우주가 인간으로 완성되는 모습을 언뜻 비유한 것이었을까?

  

조금 더 마법적인 세계로 들어간다면 마법진에 흔히 쓰이는 오망성이 바로 이 오각형의 대각선으로 이루어진다. 우리가 흔히 별 모양 하면 떠올리는 모양이다. 오각형 안에만 존재하는 세계에서 내가 떠나보낸 반딧불이가 별이 되어 흐르는 것을 감상했다. 그 순간 문득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맨 처음 오각형을 따라 달리던 퍼포머의 행위가 오각형의 마법진을 깨우는 일이 아니었나 하고. 그때 또 다른 세계가 눈을 뜨고, 잠재적인 마법의 순간을 위한 XX 번째 시도가 시작된 것이었을 거라고. 정말 너무 낭만적인 현실의 마법이었다.

 

 

[최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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