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전시, 대중친화적으로 변신하다 - 스트릿 노이즈 STREET NOISE

상업과 예술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던 전시
글 입력 2021.03.11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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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08_[Street-Noise]포스터-닉워커.jpg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전시'라면 구색이 갖추어진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통상적이었다.

 

언젠가부터 예술은 '예술'이라는 한 단어로 지칭하기에는 사회문화와 그 이상의 많은 영역들을 포괄하고, 또 한데 어우러지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영향이 전시 풍경에도 미친걸까.

 

잠실의 도심에 위치한 압도적인 높이의 롯데월드타워의 코 앞에 위치한 롯데월드몰 B1층에서 진행되고 있는 'STREET NOISE' 전시는 더 이상 예술은 독자적으로 존립하는 소수 엘리티시즘의 문화가 아니라 대중의 문화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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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를 한 문장으로 일축하면, '확실히 낯설고도, 친숙한'이라는 평을 하고싶다.

 

상업광고나 일러스트레이션을 통해 '어, 이거 본 적 있었는데?'싶은 작가들의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나 OBEY,루이비통을 비롯한 상업 브랜드들의 로고가 예술과 함께 어울리고 있다. 분명 '갤러리'라는 이름으로 '전시'되어지고 있는 공간인데, 영화에서나 보던 외국 클럽 근방의 스트릿에 방문한 것처럼 회색 담벽과 그래피티, 네온사인과 철조망들에 둘러싸이는 경험을 한다.

 

이 전시장의 어느 곳에도 전형적인 화이트 큐브 형식을 갖춘 갤러리의 단편은 존재하지 않는다. 상업 브랜드가 즐비한 롯데월드몰 지하에, 고소한 빵 냄새를 풍기는 디저트 카페 정면에 위치한 갤러리 안에, 껄렁한 비트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공간이 있고, 저마다의 아이디어를 가진 작품들이 걸려있다.

 

우리는 이 공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2021년 한국에서 전시장이란 어떤 역할을 하고있고, 대중들이 예술에게 기대하는 바가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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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5BRA

 

 

익숙한 국내 아티스트의 작업도 있었다. '노브라'라고 발음해야하는 N5BRA 작가의 작품은 지난 아라아트센터에서 열린 를 통해 라이브 페인팅을 지켜본 적이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몇 개의 간결한 선만으로 거대한 벽면을 압도적으로 채우는 것이 참 신기한 작업이다. 호수로 계산해보면 몇 백호는 족히 넘을 거대한 벽면 가득히 전개되는 페인팅을 완성본으로 만나볼 수 있는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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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WZ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바로 이 벽면 그래피티 작업이다. 에어브러쉬와 락커 등의 재료가 쓰인 것 같은 벽면은 완벽하게 감각적이고 세련된 느낌이다. '힙하다'라는 표현을 쓰면 최고의 감상평이지 않을까.

 

실제로 봐야만 느껴지는 재료의 특성이 너무 좋았다. 오묘하게 매트하면서도 진득한 느낌을 가진 안료가 벽에 달라붙어있는 느낌과, 육안으로 가까이 봤을때만 감상할 수 있는 스프레이의 퍼진 느낌은 작가의 손이 지나간 흔적이 날 것으로 느껴지는 부분이다.

 

이 작품 역시 압도적인 크기가 특징인데, 전시가 끝나면 뒤덮이게 되는 장소특정적인 예술이라는 것을 집에 돌아와서야 깨닫는다. 오래오래 감상해보며 특유의 유쾌한 감성을 잔뜩 느끼고 왔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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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구성에는 에디션 넘버가 있는 작품이나, 미니멀한 느낌의 작품도 함께 있어 감상의 폭이 넓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피티, 스트릿 아트라는 키워드로 묶기엔 좀 더 다양한 성격의 작품들이 톡톡 튀고있는 느낌을 받았다.

 

사회참여적인 성향을 띄거나, 다분히 상업적인 성격을 가진 작품들, 잭슨폴록을 오마주해 안료의 물질성만 남긴 추상화, 애니메이션, 굿즈 상품까지 일축하기 어려운 무언가들이 '와글와글'했다. '스트릿 노이즈'라는 전시명보다 이 느낌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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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전시장을 빠져나오면 여타 전시들보다 아트샵에 확실한 힘을 준 것이 느껴졌다.

 

흥미로웠던 것은 이번 전시가 가장 낯설게 느껴졌던 부분이 바로 이 아트샵 코너 때문이었는데, 전시와 아트샵, 즉 예술과 상업의 구분을 명확하게 전제하는 기존의 전시들의 경우 아트샵의 역할은 관람자로 하여금 '전시가 끝났다.'는 안내를 해주는 종결의 역할이자 새로운 소비를 부추기며 '기념품'을 판매하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는 '전시가 연장된다.'는 느낌을 주는 공간으로서 저마다의 뚜렷한 연출과 기획을 가진 것이 느껴졌다. 아마도 이 전시를 찾는 대중들이 가장 많이 사진을 찍고 긴 시간을 머무는 공간이 이 아트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곳에서 사가는 '굿즈(Goods)'들은 단순히 상품으로서의 의미가 아닌 '작품'으로 여겨지지 않을까? 수집이 아닌 소장의 의미로 말이다.

 

순수예술과 상업예술의 경계의 아이러니한 관계를 생각하다보면 참 여러가지 얘기를 할 수 있다. 정확히 구분하자면, 화랑이라기보다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고있는 전시였지만, 이 공간을 찾는 대중들은 쇼핑센터에서 즐거운 문화 체험을 했다는 감상을 가지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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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POST, STREET NOISE를 활용한 굿즈와 공간 연출이 이루어진 것도 흥미로운 점이었다. 우리가 조형적이라고 느낄 수 있는 것을 단순히 전시장에 걸릴거나 설치된 작품으로 한정짓지 않고 스쳐지날 수 있는 벽면, 바닥, 구석구석 신경쓴 것이 느껴져 개인적으로는 작품보다 이런 사소한 연출들에서 더 큰 재미를 느꼈던 전시였다.

 

상업단지 안에 위치한 갤러리의 특성 상, 결국 어떤 형태로든 소비로 이어지기에 혹자는 이러한 갤러리를 그다지 예술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이 전시장의 작품들에서 느낄 수 있는 작품의 메세지가 '~미술관','~갤러리'들에서 만날 수 있는 개념미술 등이 던지는 묵직한 무언가라고 묻는다면 단연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날 예술이 포괄하는 범주는 과연 어디까지이고, 작품을 생산하는 작가가 생각하는 예술과 그것을 소비하고 관람하는 대중이 생각하는 범주는 어디까지인가. 또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란 결국엔 무언가를 소비하는 과정과 흡사한 점이 있지 않은가, 순수예술과 상업예술을 완벽하게 유리시키는 것이 가능한가 등의 여러가지 재미있는 논점으로 생각해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 전시를 방문해본 더 많은 사람들의 후기가 궁금해지고, 과연 다른 사람들은 이 전시장에서 어떤 것을 보고 느꼈을지 대화해보고 싶어지는 흥미로운 전시방식이었다. 다음에 또 이런 형태의 전시를 볼 수 있다면, 아마도 나는 흔쾌히 발길을 행하지 않을까? 때로는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며 감상을 얻어가야만 할 것 같은 묘한 압박과 긴장이 있는 전시가 아닌, 여행지에서 만난 낯선 길거리 속에서 마음에 드는 장면 하나를 핸드폰 카메라로 소소하게 담아오는 기분을 들게하는 전시가 더 유쾌하게 기억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결국 전시와 문화, 예술이 사람에게 해주어야하는 역할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되는 전시였다. 단순히 사진을 찍거나 굿즈를 구경을 하기보다, 기존의 갤러리나 전시 방식과 어떤 점이 닮고 또 다른지 살펴보는 것도 이 전시의 재미있는 감상 포인트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지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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