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서양 미술사 여행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 63일 침대맡 미술관

글 입력 2021.03.04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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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성상화, 고전 회화 등을 직접 볼 기회는 여행하지 않고는 거의 없다 해도 무방하다. 그래서 교환학생 시절 미국의 여러 미술관에 다니며 봤던 유럽 미술 작품들에 호기심은 생겼으나, 막상 한국에 돌아오니 접하기 어려워 잠시 멀어졌던 것 같다. 통용되는 상식을 깨고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하는 현대 미술과는 달리, 유럽의 인물화, 정물화 등은 정해진 규칙이 있는 것 같아 오히려 어렵게 느껴지는 면도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고전 작품을 해석하는 힘을 기르고 싶었다. 회화의 세부를 놓치지 않고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었는가를 유추해나가며 풍부한 해석을 하고 싶었다. 붓 터치나 색감을 그대로 느낄 수는 없으나, 미술관에서는 보기 힘든 그림의 위쪽 구석 자리를 살펴보거나 규모가 큰 작품을 한눈에 담아 구도를 살펴볼 수 있는 것도 사진을 통해서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루브르 박물관에 가게 되면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


저자는 작품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해석하기 전, ‘들어가며’에서 전 유럽에 걸친 간단한 역사의 흐름으로 개괄하고, 시대별로 어떤 국가가 예술의 유행을 주도했는지 이야기한다. 또 과거에는 요새로 사용되었던 루브르 성이 어떻게 박물관이 되었는가를 먼저 설명한다.

 

책은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플랑드르, 네덜란드 회화를 소개한다. 국가별로 나뉜 각 장은 발달했던 사조와 역사적 배경을 개괄적으로 설명한 후 개별 작품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작품들의 사조는 1400년대부터 1900년대에 걸쳐 유행한, 르네상스, 바로크, 고전주의, 로코코, 낭만주의와 신고전주의다. 모두 익숙한 용어이기는 하지만 각 사조의 특징을 언어로 설명하기는 어려웠는데, 다양한 화가를 통해 반복적으로 그림의 특징을 살펴보니 기억하기 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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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왼쪽 페이지에는 작품의 사진이, 오른쪽 페이지에는 작품에 해당하는 해설이 오도록 구성되어 있다. 가끔 미술 교양서에서 작품에 대한 해설이 길어지다 보면 그림이 있는 페이지를 왔다 갔다 하며 들춰보아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는데, `침대맡 미술관`이라는 제목에 맞게 가독성을 높인 구성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해설은 화가에 대한 설명과 그림 속 인물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루고, 그림에 대한 주관적 감상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한 쪽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설명이지만 화가의 화풍이 어떤 사조의 영향을 받았는지, 화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당대 사람들에게 이 그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생생하게 이야기해주어 그림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이해하기 부족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또 각 사조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대표작을 한 점씩 고루 소개하고 있어 독자가 그림들을 비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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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여러 미술관을 다니며 느낀 점은, 영어로 된 설명을 읽기 위해서는 평상시보다 몇 배의 체력이 소모된다는 것이다.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있기는 하지만 이는 몇몇 작품에만 적용되었을 뿐이라 영어 설명을 읽어야 할 때가 더 많았다. 또 가끔 작품 자체를 느끼기보다 텍스트에만 집중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곤 했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이렇게 간단하게나마 작품에 관한 설명을 읽고 가면 작품을 제쳐놓고 긴 설명을 읽는 일이 줄어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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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귀에 총재>, 샤를 르브룅

 

 

책으로 회화를 감상하는 데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 그중 하나는 작품의 크기에서 오는 아우라를 온전히 느낄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작품 하단에 쓰여 있는 작품의 크기를 보고, 머릿속으로 작품이 얼마 정도의 크기인지 가늠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가로, 세로의 길이가 각각 295, 357㎝에 이르는 <세귀에 총재> 같은 작품은 일반적인 아파트의 바닥부터 천장까지의 높이보다 더 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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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박물관의 작품은 역시 루브르 박물관의 홈페이지를 통해 더 자세한 정보를 살펴볼 수 있다.

 

플래시 프로그램 사용 제한으로 지금은 사용이 어렵지만 루브르 박물관 가상 투어도 가능하고, “A Closer Look”이라는 섹션에서는 동영상을 통해 그림을 확대해 자세히 보여주고, 박물관에 걸려있는 작품의 실제 크기를 가늠하게 하며, 역사적, 미술사적 배경도 소개한다.

루브르 박물관 홈페이지뿐만 아니라 유튜브에 ‘Louvre museum walking tour’ 등의 영상으로 박물관에 있는 듯한 느낌을 즐길 수도 있으니, 책을 읽으며 박물관에 작품이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찾아봐도 좋을 것 같다.

 

다만 이런 영상들은 그림을 빠르게 지나쳐 가기 때문에 작품을 자세히 보기 위한 용도로는 적절하지 않다.


*


머리말 부분에서 드러난 저자의 태도는 조금 아쉬웠다. 동양의 문화와 서양의 문화를 동등한 선상에 두고 대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서양인과 동등한 파트너"가 되려면 우수한 서양의 문화를 배워야만 하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었다.


단위 면적 당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박물관과 미술관을 가진 미국과 유럽에서는 당연히 미술 작품에 대한 접근성도 훨씬 높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동양인이 `뒤처지고` 있다는 식의 표현은 정당하지 않고, 다원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요즘의 경향에도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표현은 역설적으로 내가 어떻게 유럽 미술을 보아야 할지를 생각해보게 했다. 나는 유럽 미술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문화권에 속해 있든 회화는 그저 하나의 상징을 다루는 수단일 뿐이고, 시대상을 보여주는 기록일 뿐이지 꼭 어떤 문화권의, 어떤 박물관의 작품만이 보고 배워야 할 것이 된다는 건 불합리하다. 이제 열등감으로 타 문화를 배우는 시대는 지났다.

 

그러나 이 책은 나처럼 서양 미술사에 막 흥미를 갖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취향을 찾아가기 좋은 시작점이 될 것이다. 방대한 예술사를 압축적으로 제시하고 있어 독서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이라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한다. 이 책을 발판 삼아 더 관심이 가는 분야의 지식을 보충해나가며 그림을 즐기는 방법을 나름대로 만들어나가면, 어떤 미술관에 가더라도 길을 잃는 일 없이 작품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김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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