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계를 머금은 목소리 [음악]

지극히 개인적인 플레이리스트2 - 세상의 모든 소리를 삼킨 악기, 이소라편
글 입력 2021.03.02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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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라에 처음 빠져 든 때는, 2009년 중학생이 되던 해다. 당시 미쳐있던 SS501(어른들이 '에스에스오공일'이라고 부르면 화를 내곤 했다. 더블에스라고요!) 앨범 CD를 듣기 위해 돈을 모아 CD플레이어를 구입한 나는, 우연히 엄마 책장에 꽂혀 있던 이소라의 2집을 발견하게 되었고, 한 번 들어나볼까 하고 재생하게 된다.

 

그날 이후 나는 더블에스오공일의 CD들은 죄다 한구석에 처박아 놓은 채 이소라의 앨범을 모으는 일로 덕질의 방향을 바꾼다. 엠카운트다운의 노예(?)였던 어린 나의 귀에 이소라의 애절하고 낭만적인 목소리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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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당시 나의 맘을 앗아간

이소라 2집 '영화에서처럼'을 시작으로

중학생 때 모았던 이소라의 앨범들.

늦게 입덕한 이유로 절판된 앨범들은 구하지 못했다.

 

 

그 이후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탐구한 이소라의 매력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사계를 머금은 악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녀의 목소리는 때론 애절한 비올라나 바이올린 같거나 산뜻한 플룻이나 피콜로 류의 목관악기 같으며 또 중후하고 깊이 있는 첼로처럼 들리기도 한다. 어떨 때는 울림 있는 피아노 같기도 하다. 꼭 세상의 모든 소리를 집어삼킨 악기 같다.

 

'사계를 머금었다'고 표현한 이유는 그녀가 노래한 모든 계절의 노래에서 그 계절에 맞는 향이 나기 때문이다. 예민한 사람이라면 계절이 바뀔 때 공기의 냄새가 미묘하게 바뀐 것을 알아챌 수 있을 텐데, 이소라의 노래에서는 바로 그 미묘한 계절 냄새가 난다.

 

계절 향이 나는 그녀의 대표적인 노래 몇 가지를 고르자면 다음과 같다.

 

 

6집 '봄'

이소라 6집의 '봄'을 들은 사람이라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봄의 이미지와 노래가 너무 어울리지 않아 깜짝 놀랄 것이다. 보통 우리가 떠올리는 봄의 이미지는 따뜻하고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분홍빛의 모습이기 때문.

 

그러나 푸르스름한 이소라의 '봄'은 3-4월 꽃샘추위가 오는 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소라의 '봄'은 기다림의 결실이자 기다림의 시작이다. 기다림은 가을, 겨울을 거쳐 봄이 오면 다시 시작된다. 다시 시작되는 기다림은 좀 서글프긴 해도 견딜만하다. 그래도 따뜻해질 것을 알기 때문에.

 

5집, '데이트'

해가 쨍쨍한 오뉴월쯤의 휴일과 같은 노래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때의 온도가 느껴진다. 자전거를 타고 (표현은 이렇게 해도 사실 필자는 자전거를 못 탄다.) 공원을 누빌 때 기분 좋게 따뜻해지는 등의 온도다. 피크닉을 가고 싶지만 여의치 않을 때, 이 곡으로 대리 만족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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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5집 'sharry'

한 여름 햇살이 내리쬐는 날 맑은 계곡물을 들여다보는 듯한 노래다. 투명한 물은 빛을 반사시켜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7,8월의 뜨거운 여름, 계곡 물속에 발을 담그는 청량감이다. 연둣빛의 파릇한 잎들이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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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4집 '가을시선'

높고 웅장한 9월의 가을 하늘이 느껴진다. 오케스트라 반주 맞춰 부르는 이소라의 목소리가 꼭 현악기가 내는 소리처럼 느껴진다. 듣는 순간 내 주변의 공간이 넓어지는 곡이다.

 

6집 '바람이 분다'

개인적으로 11월의 노래라고 생각한다. 10월 단풍의 아름다움도 가고 12월 크리스마스의 따뜻한 기대도 오지 않은 쓸쓸한 11월의 노래. 바깥공기에 금방 서늘해지는 부드러운 가죽 재킷의 촉감이다. 이별로 한바탕 크게 뒤흔들린 나의 세계와 상관없는 무심함의 온도로 가을은 물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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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경향신문과 음악 전문 웹진 가슴 네트워크가 선정한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포함된 이소라의 6집.

 

 

겨울

2집, 'Happy christmas'

12월 크리스마스 시즌이 오면 조관우의 '겨울 이야기'와 함께 꼭 찾아 듣는 노래.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국내 캐롤 중 원탑이라고 생각한다. 흰 눈이 흩뿌리는 스노우볼 속 같은 마을 오두막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가족들이 떠오른다. 이 곡에서 이소라의 목소리는 몽글몽글한 흰 함박눈 같이 내린다.

 

4집, '랑데뷰'

1월, 눈이 소복소복 쌓인 카페 앞 풍경을 보며 오랜만의 누군가를 만나는 노래. 친구가 약속시간에 늦어 혼자 기다려야 할 때면 나는 종종 이 노래를 듣곤 한다. 반가운 사람을 맞는 설렘이 고스란히 느껴지기 때문.

 

5집, 겨울, 이별

영화 '러브레터'의 한 장면 같다. 차갑고 긴 2월의 겨울, 꽁꽁 얼어붙은 세상 속에서 속도 모르고 아름답게 내리는 눈을 맞는 장면의 청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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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러브레터'의 한 장면

 

 

이소라는 매년 겨울, 혹은 봄이 되면 콘서트를 연다. 오랫동안 그리던 그녀의 목소리를 처음으로 직접 듣게 된 것은 2017년 겨울 콘서트 때의 일이다. 당시에 사랑했던 사람의 배려로 콘서트를 갈 수 있었는데 그날의 일기를 보면 내가 얼마나 감격했었는지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다.

 

 

2017년 12월 27일 수요일 이소라의 콘서트를 다녀오고...

 

*느낀 점이 많아 항목화 시키겠다.

 

1. "사운드 오브 뮤직"의 주인공은 행복할 때 머리 뚜껑(?)이 날아가지 않도록 정수리를 눌러준다고 한다. 나 역시 처음 이소라의 실물과 목소리를 영접(?)하고 정수리가 잘 붙어 있는지 확인해봐야 했다.

 

2.  이렇게 진심을 다해 기쁘고 벅찼던 것이 얼마만인가 싶어 눈물이 났다. 동시에 연애 초, 내 늙은 애인이 날 보며 눈물 흘리던 때가 떠올랐다. 왜냐고 물어보니 잘 모르겠다며 너무 좋다는 얘기만 하며 연신 눈물을 훔치던. 이제 그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너무 좋아서 눈물을 흘릴 수도 있구나.

 

3. 그녀의 곡들로 가득 찬 두 시간은 여행과 같았다. 이건 주로 책 읽을 때 드는 기분인데, 간접체험이라고 해야 하나, 예를 들면 '바람이 분다'를 들으면 이별한 당일 날 구름 가득한 하늘 아래를 걷는 느낌, '랑데뷰'를 들으면 눈 쌓인 1월 카페에서 그리워하던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된 느낌이 드는 것. 여행과 다른 점이 있다면 노래와 책은 특정한 '상황'까지도 경험하게 한다.

 

4. 역시나 솔직한 이소라. 솔직하다는 것은 용기 있다는 것. 용기는 많은 것을 바꾼다.

 

5. 세션과 무대가 없었다면 이 느낌이 온전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변'은 늘 그 사람을 좌지우지한다.

  

 

오는 3월 14일, 그녀의 목소리가 이번에는 랜선을 타고 다시 한번 코시국에 지친 우리의 마음에 위로와 감동을 전달할 예정이라고 한다. 필자는 일정이 있어 아쉽게도 라이브로 즐길 수는 없을 예정이나 이번 온라인 콘서트로 이소라의 목소리를 접하는 이들이라면 내가 2017년에 느낀 것과 같은 감동을 느낄 것이라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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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우리에게 또 애절한 감동을 줄 수 있는 이유는 그녀가 한 차례 많이 아팠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고통의 터널을 지나온 사람의 위로는 그렇지 않은 위로보다 한층 더 따뜻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팬으로서, 나는 그녀가 이제는 덜 아프길 바란다.

 

이제는 그녀가 남들에게 감동과 위안을 주는 만큼, 스스로도 준 것 이상의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으로 노래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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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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