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무해한 AI를 위하여 - 방송계가 빠진 AI [드라마/예능]

AI, 이대로 사용하면 왜 안 되는데?
글 입력 2021.01.26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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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방송계는 AI(Artificial Intelligence)에 빠졌다.

 

세상을 떠난 이들을 AI로 부활시켜 산자와 이어주는 다큐멘터리는 물론이요, 하루 24시간, 일주일 내내 뉴스 보도를 해도 목소리는커녕 실수 한 번 하지 않는 아나운서 AI도 탄생했다.
 
그 중, 가장 놀라웠던 AI 접목 방송은 음악 프로그램이었다. 음악 프로에서는 지금 우리가 들을 수 없는 ‘추억의 목소리’들이 새로운 노래를 부르거나, 현재의 가수들과 함께 무대를 꾸미기도 했다. 물론, AI를 통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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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간에서는 ‘작고(作故)한 이들의 목소리로 새로운 노래를 들으니 감회가 새롭다’라는 호평이 있었지만, ‘고인이 AI로 부활하는 것을 원했을까’라는 의구심 담긴 목소리도 있었다.
 
실제 2019년 일본 공영방송 NHK의 연말 음악방송 홍백가합전(紅白歌合戰)에서는 30년 전 작고한 일본의 국민 가수인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가 AI로 다시 태어나, 새로운 곡을 선보였다. 국민 가수를 다시 볼 수 있어 감격스러웠다는 호평도 잠시, ‘고인에 대한 모욕’이라는 비판도 끊이지 않았다.
 
이처럼 AI는 누군가에게 고마움을 받기도, 혹은 누군가에게 비난을 받기도 한다. 그렇다면 AI가 양날의 검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AI로 누리는 영생의 시대

 

사실 앞서 얘기한 사례들뿐만 아니라, AI로 세상을 떠난 사람을 ‘소환’하는 일은 이전에도 많이 있었다. 사람들은 홀로그램으로 우리 곁을 떠나간 가수나, 한 기업의 총수를 이 세상에 소환하기도 했다.
 
이처럼 AI로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들의 생명을 연장하는 일은 이미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물론 해당 인물을 소환할 때는 해당 인물의 친지에게 동의를 받고, 그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인물에 부합한 AI를 설계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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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문제는 ‘부활’하게 되는 인물 당사자의 동의는 없으며, 또 AI로 소환된 인물이 주변인들의 기억에 맞지 않는 인물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도 요즘 AI 기술로 빈번하게 소환되는 가수들을 보며, 사람들은 ‘누구에게 동의를 받았으며, 실제 작고한 인물이 AI로 부활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라는 얘기를 했다.
 
이미 죽은 사람은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고 싶지 않은데, 남아있는 사람들의 욕심으로 그들의 생명을 연장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어쩌면 예전 진시황이 찾아 헤맸던 불로초가 바로 21세기의 AI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상의 목소리’가 가져올 문제들

 

상업적 이윤 분배도 하나의 문제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AI로 작고한 인물들의 목소리를 새롭게 탄생시켰을 때, 다가올 문제점 중 하나가 바로 ‘누구에게 얼마를, 어떻게 나눠야 하는가’였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추억의 목소리들을 새롭게 탄생시키는 프로그램을 일회성으로 방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초석으로, 만약 추억의 목소리를 활용한 정기적인 프로그램이 방영되거나 혹은 추억의 목소리를 가진 음원이 출시된다면, 그 수입은 어떻게 하는 게 맞는지에 대한 해답은 아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작고한 인물의 가족 친지, AI 프로그래밍 설계자, 그리고 AI 목소리 소환의 기획자 등 많은 이해관계자가 얽혀있고, 또 AI에게 목소리를 준 원곡자의 공이 큰 것인지, AI를 잘 설계한 기술자의 공이 큰 것인지도 알 수 없다. 무엇보다 이에 대한 선례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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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추억의 목소리가 ‘일상의 목소리’가 되었을 때, 해당 인물이 사회적으로 가지는 의미가 어떻게 바뀔지, 또 AI로 발매된 신곡을 들을 때, ‘역시 노래는 ○○○’이라는 말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선례가 없는 지금,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때

 

이처럼 AI로 누군가를 소환한다는 것은 많은 쟁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AI로 세상을 먼저 떠난 이들을 소환하는 것을 하면 안 되는가’라는 질문에는 마땅한 대답을 할 수 없다. 누군가는 일찍 떠난 자신의 아이를, 혹은 그리운 사람을 AI로 잠시 만나며 삶에 대한 의지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선례가 없다는 것은 즉, 아직 기술에 대한 활용법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AI로 고인에 대한 따뜻한 기억이 왜곡되지 않고, 사회적 논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선례가 없는 지금, AI 활용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그럴 때, 비로소 AI는 누군가에게 해가 되지 않는 무해한 기술로 자리 잡을 것이다.
 
 
참고자료
[PD 저널] AI 품은 방송, 기적 뒤에 남은 '잊힐 권리'‧저작권 숙제 (21.01.12/ 이재형 기자)
[방송작가] AI기술로 만들어 낼 미디어의 기적 (21년 1월 호/김성훈 업스테이지 대표)
[동아일보] 떠나간 이를 되돌린다는 것 (21.01.15/ 김희균 문화부장)
[문화일보] 디지털 永生시대 (20.03.02/ 이미숙 논설위원)
 
 
 

★ 한유빈 컬쳐리스트.jpg

 

 

 



[한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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