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열 번째 목소리, 기술감독 어경준

그 많은 세계는 어떻게 무대가 될까?
글 입력 2021.01.23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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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10

기술감독 어경준

 


 

 

무대 위 세계는 환상적이다. 객석에 앉아 또 하나의 세계를 펼쳐 보이는 공연을 마주하고 있으면,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른 채 막이 지나간다.

 

하지만 그 새로운 세계를 무대 위에 옮겨 놓는 과정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없던 세상을 마음껏 구현하기엔 매번 비용, 시간, 인력, 안전과 같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바짝 뒤따르기 때문이다.

 

30년가량 무대 곁에서 우리가 열광하는 ‘환상의 세계’를 구현하기 위해 현실의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조율한 사람이 있다. 뮤지컬 <마타하리>, <광화문연가>, <타이타닉>, <드림걸즈>, 연극 <멕베스>, <리어왕> 등 다수 작품에 기술감독으로 참여하고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무대미술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어경준 기술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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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안녕하세요. 경준님!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기술감독 어경준입니다. 공연제작 과정에서 다양한 기술적 문제를 조율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Q. 학부 시절 연극영화과에서 영화를 전공한 것으로 아는데요. 어떻게 기술감독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등록금 벌이를 위해 아는 선배를 통해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무대제작소에서 무대장치를 제작하는 목수 보조로 시작하여 졸업하고는 직업이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무대장치를 제작하는 일을 하다가 또 다른 선배를 통해 기술감독이라는 직업을 소개받았고, 이후 그 길을 따라 걷게 되었습니다.

 

 

Q. 3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무대 곁에 계신 거네요. 정말 대단하세요. (웃음) 경준님은 흔히 ‘테크니컬 디렉터’(technical director)로 표기되는 기술감독의 범위를 넓혀, ‘테크니컬 매니저’(technical manager)로 지칭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경준님이 생각하는 기술감독의 역할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한 설명 부탁드려도 될까요?

 

공연제작 기술분야의 관리자에는 크게 조율(managing)하는 역할과 지시(directing)하는 역할이 있습니다. 조율하는 역할은 예술적 관점을 가진 그룹(creative team)과 그 관점을 실현하는 그룹(production team) 사이에서 시간, 예산, 인력 등의 물리적 여건을 고려하여 예술적 비전이 물리적으로 구현되도록 조율하는 역할을 말합니다.

 

지시하는 역할은 조율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계획에 따라 기술인력(crew)에게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작업을 지휘하는 역할을 말합니다. 이 둘을 통틀어 테크니컬 매니저(technical manager)라고 합니다.

 

기술감독은 경영의 도구라 할 수 있습니다. 창작이라는 추상적이고 위험요소가 많은 제작과정을 최대한 예측 가능하고, 통제 가능하도록 기술적인 정보와 방법론을 공연 제작자에게 제공합니다.

 

 

Q. 창작진 및 제작진과의 지속적이고도 다각적인 소통이 필수적이겠네요. 서로 다른 입장 사이에 선 기술감독으로서, 한 작품을 맡아 무대에 올리기까지의 대략적인 과정이 궁금합니다.

 

기술감독의 작업 과정은 크게 예측, 계획, 실행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창작 아이디어의 다양한 필요조건을 예측합니다. 소요시간, 비용, 인력 등의 경제적인 요소를 비롯해 위험 요소와 해결 방법 등 기술적 요소 등을 예측하고 이 정보를 창작팀과 제작자에게 전달하여 예술적 결정에 도움을 줍니다. 이 단계에서는 현장 조사, 시장 조사 등 다양한 조사 활동으로 필요한 정보를 확보하여 직면한 위험요소와 가능성을 탐색합니다.

 

두 번째 단계에는 예측한 소요비용과 기술요소를 활용 가능하도록 계획을 세웁니다. 안전수칙 등도 이에 포함되는데 예기치 않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상세한 계획을 세워 현장을 통제하도록 합니다. 이 단계에서 설계와 도면이 만들어지고, 월간·주간 일정 등 작업계획이 만들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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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타하리> 제작도면 (EMK뮤지컬컴퍼니)
 

 

마지막 단계는 계획에 따라 실행하는 단계입니다. 필요한 사람, 장비, 공간 등을 구하고 계획에 따라 현장 작업을 진행합니다. 이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사고를 방지하여 비용, 일정 등의 변경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합니다. 사고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예기치 않은 변수로 인해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면 현장에 맞는 대안을 마련하여 해결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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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타하리> 제작 사진 (EMK뮤지컬컴퍼니)

 

 

Q. 실제 제작에 앞서, 계획을 대비한 예측까지 세밀한 설계 과정을 거치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한편으로는 견해차로 인한 조율이 불가피한 현실을 짐작하게 하기도 하는데요. 현장에서 기술감독을 하며 느낀 어려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국내 공연제작 현장은 경제적, 기술적 관점보다 예술적 관점이 보다 지배적입니다. 예술적 관점은 보통 ‘최고의 시나리오’(best case scenario)를 기반으로 이상을 논하는 반면, 기술적 관점은 ‘최악의 시나리오’(worst case scenario)를 기반으로 위험요소를 제거하거나 대비하는 방향으로 접근합니다. 그러다 보니 기술적 관점을 부정적 관점으로 보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감성적 접근이 아쉬울 때가 있습니다.

 

또한, 기술분야는 시스템과 체계를 기반으로 한 팀워크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기술감독이 예산집행 권한이 없는 자문직인 경우가 많아 실제로 조언과 부탁 이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책임만 있고 권한이 없다고 느껴 심리적으로 피로할 때가 있습니다.

 

 

Q. 백스테이지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온몸으로 격감해오셨을 것 같아요. 합리적인 소통 과정이 어서 자리 잡길 바랍니다. 한편으로, 경준님은 지금까지 수많은 작품에 참여하셨는데요. 이제껏 작업한 작품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무엇인가요?

 

2016년 오토메이션 기술감독(무대장치 기계설계)으로 참여한 뮤지컬 <마타하리>가 기억에 남습니다. 전례 없는 무대장치의 규모를 해결하면서 힘도 많이 들었지만, 성장도 많이 한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2012년에서 2017년까지 정구호 디자이너와 함께한 작품들로 <포이즈>, <단>, <토너먼트>, (예술의 진화), <묵향>, <향연> 등이 있는데, 이 작품들을 통해 제 역할의 폭을 확장하게 되어 기억에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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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 공연 사진 (국립무용단) / <묵향> 공연 사진 (국립무용단)

 

 

Q. 학부 때부터 현재까지 쉬지 않고 도전을 거듭하셨더라고요. 기술감독 및 무대장치 설계는 물론, 무대 제작소 및 공연기술연구소(TDS) 운영, 미국 유학, 현재 무대미술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까지……. 이토록 멈추지 않고 경준님을 끌어들이는 무대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항상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인 것 같습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흥분이 지금까지 저를 이끌고있는 것 같아요. 새로운 것을 발견해 집어 들고 나면 또 다른 새로운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그렇게 한발 한발 가다 보니 돌이킬 수 없는 깊은 숲속까지 와있더라고요. 시간이 지날수록 관점도 변하고 그 때문에 또 새로운 것에 흥미가 생기는 연쇄반응이 동력인 것 같습니다.

 

 

Q. 기본적인 호기심과 관심이 자연스럽게 경준님을 숲으로 이끈 거네요. (웃음) 그렇다면, 경준님이 생각하는 기술감독으로서의 자질을 꼽자면 무엇인가요? 기술감독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모든 것을 검증하고 근거를 찾아내려는 과학적인 태도와 자신의 목적으로 스스로 움직이는 자기 주도적 성질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예술은 나로부터 시작해 타인과의 연결로 완성된다고 생각합니다. 나와 세상에 흥미를 잃지 말고 지속적으로 탐구하면 좋겠습니다.

 

 

Q. “모든 예술은 나로부터 시작해 타인과의 연결로 완성된다”는 말이 와닿습니다. 이번 2021년 새해를 맞아 목표하는 것이 있다면?

 
다양한 창작자들과 작지만 밀도 있는 창작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의미 있는 결과와 성장이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Q. 또 다른 성장을 낳을 경준님의 활동을 응원합니다. 이제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입니다. 빈칸을 채워 주시겠어요?

 

“무대는 ~다.”

 

무대는 새로운 것들로 가득한 놀라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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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더더기 없는 설명으로 기술감독의 역할에 대해 이해를 절로 도와주는 대화였다. 역시 수십 년간 무대 곁에서 숱한 고민을 거듭하였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예측과 조율, 갈등과 제작까지 숱하게 “NO”를 외쳐야 했던 그 긴 세월을 감히 짐작하게 만드는 담담한 문장들이었다.
 
무대를 주제로 다양한 일과 직업, 학업 등을 멈추지 않고 도전하며, 누구보다 입체적인 시각으로 판단을 내리는 그는 상상의 세계를 눈앞에 만들어 내는 현장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새로운 것을 찾아 발걸음을 내딛다 보니 도착해있다던 경준님의 숲에는 앞으로도 새로 발견될 길들이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무대 밖, 그들의 목소리를 담다

과정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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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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