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J 선생님의 다이아몬드 스텝

글 입력 2023.12.23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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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프로젝트를 접했을 때 누구에게 마음을 전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답니다. 감사하게도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생각해보면, 저는 저만의 방법으로 마음을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같이 무엇을 하자고 제안하거나, 상대가 좋아할 법한 것을 보면 상대를 떠올리고, 알려주고, 그리고 가끔은 좋아한다고, 고맙다고 툭툭 내뱉기도 해요. 쑥스러움이 앞설 때는 기념일의 힘을 빌려서라도요. 문득 선생님께는 한 번도 고마움을 표한 적이 없다는 게 생각났습니다. 당시에는 몰랐던 마음들이 뒤늦게 보여서 아쉬워요.

 

어느 날 선생님은 저를 따로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방송반에서, 아침 방송에 참여할 일일 아나운서를 구하는데, 제가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요. 저의 목소리가 참 좋다고,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고, 덧붙이시면서요. 저는 꽤 놀라고 한편으로는 기뻤습니다. 해보고 싶은 일이라면 꼭 도전하는 성격이지만, 평소에는 엄청 내성적이었던지라 저를 만났던 다른 선생님들은 저를 착하고 예의 바른 학생 정도로만 알았거든요. 가족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저의 특별한 재능을 말해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다시 그때 이야기를 하자면, 저는 기쁜 마음으로 기회를 잡았습니다. 대본을 읽으러 떨리는 마음으로 방송실에 처음 가봤는데, 카메라 앞에서 말한다는 게 참 신기했어요. 전교생에게 중계되는 방송에서 내가 나의 목소리로 그들에게 무언가 전달할 수 있다는 게 좋았습니다. 몇 년 후에 방송반을 들고 싶어서 면접을 보기도 했었어요. 아쉽지만 뽑히진 않았지만요. 지금도 저는 선생님이 아껴주신 목소리를 전문적으로 활용하는 일을 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 뒤로 저의 목소리의 좋은 점들을 알게 되었답니다.

 

중저음인 저의 목소리는 상대방을 편안하게 하고, 다양한 소식들을 중립적으로 전달하는데 신뢰감을 줘요. 목소리 자체가 주는 맑음은 동화나 다른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낭송하는 데도 탁월합니다. 목소리는 저라는 사람의 한 부분인데, 사실 나에 대해서 알아가는 건 남을 아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더라고요. 선생님이 주신 기회가, 한마디의 칭찬이 저에 대해 알아가는 큰 실마리가 되었습니다. 그게 지금까지도 계속 생각나고, 감사해요.

 

또 다른 기억으로, 선생님께서는 집에 가기 전 항상 동요를 틀어주고, 우리는 다 같이 노래를 부르고 나서야 종례를 마쳤습니다. 집에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가끔은 마음을 담지 않은 가락을 노래했던 적도 있었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가 다 같이 동요를 불러야만 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아요. 그때도 그렇게 말씀하셨죠. 앞으로 더 나이가 들면, 동요를 부를 일이 적어질 거라고요.

 

그때는 왜 몰랐을까요. 아름다운 가사와 그 속에 담긴 희망을요. 선생님, 저는 지금도 동화책을 읽어요. 이성적으로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 책임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지만, 쉴 구석이 가끔은 필요해요.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는 다 큰 어른에게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그런 울림을 저희에게 주고 싶으셨던 거죠?

 

선생님, 선생님이 알려주신 꿀벌의 여행이라는 노래가 있었죠. 저는 저희가 함께 그 노래를 부르던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나요. 조그만 날개로 머나먼 나라까지 꽃을 찾아 떠나는 꿀벌의 여정을 저는 지금도 가끔 흥얼거려요. 노래에 맞춰 선생님께서 손수 시범을 보여주신 다이아몬드 스텝을 아직도 몸은 기억한답니다. 참 신기해요. 벌써 십 년도 넘은 일인데 말이에요.

 

글을 쓰다 말고, 문득 생각에 잠겼습니다. 전해지지 않는 마음이, 닿지 않는 마음이 의미가 있을까요? 누군가에게 쓰는 글이 제가 쓰는 편지처럼 닿을 수 없다면 그 글에는 힘이 있을까요? 그러다 저는 또 생각했습니다. ‘마음도 기록해 두지 않으면 잊힌다.’ 언젠가 저의 삶이 더 바빠진다면, 선생님과의 추억도 잠시 잊고 살겠지요? 물론 아예 잊힐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하루를 이틀을 그렇게 수년을 살아가다 보면, 과거의 소중한 추억들 위로 새로운 기억들이, 감정들이 덮여가곤 하잖아요. 그렇게 됐을 때, 저는 과거를 추억할 수 있게 이 글을 책갈피 삼아 저라는 책에 끼워두겠습니다. 이렇게 글이라는 게 남으면, 한 자 한 자 써 내려갔던 기억을 하나라도 더 만들면, 조금 더 오래 기억할 수 있을 거예요. 혹은 잠시 잊더라도 끄집어내기가 쉬울 거예요.

 

혹시 감사하게도 이 글이 선생님께 닿았다면, 몇 안 되는 순간들을 기억하고 고마워하는 제자가 반가우셨을까요. 그런 조그만 순간들이 돌이켜보니 그때 그 어린 소녀에게 참 소중했었다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선생님, 어디서 무엇을 하시든 항상 건강하세요.

 

선생님의 삶에는 지금쯤 어떤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을까요? 그 단아했던 다이아몬드 스텝은 어떠한 선율에도 참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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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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