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1946년생 순자씨와 수많은 '순자'들의 삶 - 황정은 '연년세세' [도서]

글 입력 2021.01.19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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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 연작소설

『연년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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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 상당히 좋아하는 작가다. 읽어야지 하다가 결국 몇 개월이 지난 후에야 읽었다. 새해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연년세세’라는 제목이 퍽 잘 어울리기도 하고, 시기적으로는. 이전에 필자가 반했던 황정은 작가 특유의 세상에 대한 반항심, 거침없는 대사 등은 많이 줄었다. 그러나 여전히 읽기와 쓰기, 사람을 좋아한다는 작가의 신조처럼 사람에 대한 관찰과 시선은 여전히 책 이곳저곳에 묻어났다.


작가는 사는 동안 유난히 ‘순자’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자주 만났고, “순자가 왜 이렇게 많을까”라는 질문에서 이 책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작가의 말을 읽는 중에도 ‘순자’라는 이름을 가진 필자의 가족이 생각이 날 정도이니, 우리 윗세대에선 참 흔한 이름이었나보다.

 

작가가 1946년생 순자씨를 인터뷰하면서 느꼈던 감정은 과연 책에 고스란히 담겼을까. 필자는 순자씨의 조카로서, 순자씨에 대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해 책장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연년세세는 <파묘>, <하고 싶은 말>, <무명無名>, <다가오는 것들> 총 4개의 단편소설이 모여 하나의 연작소설을 이룬다.


<파묘>에서 이순일이 이순일 외조부의 파묘를 위해 둘째 딸 한세진과 지경리에 동행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파묘>는 한세진의 시점으로 엄마 이순일을 바라본다. 이순일의 남편 한중언과 맏딸인 한영진, 막내인 한만수까지도 철원의 오지로 성묘를 오려고 하지 않고, 결국 한세진만이 엄마와 함께 철원으로 향한다. 어머니의 삶과 딸의 삶의 간극에서 폭력적인 과거와 피로한 현재가 교차하면서 아주 얕게나마 이들의 연대와 애틋함이 드러난다.


두 번째 장 <하고 싶은 말>은 맏딸 한영진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한영진을 보며 최근 인터넷 상에서 떠오르고 있는 핫한 신조어 중 하나인 ‘K장녀’가 생각이 났다. ‘K장녀’란 ‘Korean 장녀’라는 뜻으로, 한국에서 장녀로 태어나고 자란 여성을 말한다. 한국에서 장녀로 태어나 살아가면서 겪어야 했던 강제로 드리워진 책임감, 의무, 희생 등을 공감하는 여성들이 많아지며 ‘K장녀’는 수많은 여성들이 스스로를 지칭하는 자조적 의미의 용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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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오마이뉴스

 

 

한영진은 경제적으로 무능한 아버지 때문에 하고 싶던 그림을 포기해야만 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일을 시작해 가족의 생활비를 벌었다. 그녀의 신조는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 수는 없다’였다.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무대 위 공연으로 표출하는 한세진과 뉴질랜드로 유학 간 한만수가 부러웠을 터다.

 

모성 신화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등장한다. 첫 아이를 낳고서 한영진은 모성이 당연한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녀에게 모성이란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었다. 작가는 ‘모성’이라는 미명하에 당연하게 그려왔던 헌신을 꼬집는다.


세 번째 장 <무명無名>은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적인 현대사를 관통하며 순일이 겪었던 이야기 속으로 빨려들어가게 만든다. 전쟁으로 인해 부모님을 잃고 외조부와 함께 살면서, 자신의 실수로 인해 불에 타 죽었던 동생을 이야기한다. 이순일은 자신의 이름이 순자인 줄 알고 살았다. 하도 순자가 흔하니까, 어른들이 순일을 순자로 불렀기 때문이었다.

 

순일은 살아가는 동안 여러 순자를 만났다. 고모네에서 살 때 옆집 친구 순자는 노인이 된 지금까지도 순일에게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는지, 안부를 묻고 싶은 그런 존재다. 82년생 김지영의 삶을 보고 비슷한 나이대의 많은 여성들이 울분을 토하며 뜨겁게 공감했듯이, 1946년생 순자씨의 삶 또한 당시 여성들의 삶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마지막 장 <다가오는 것들>에선 한세진이 뉴욕 출장에서 만난 친척 제이미와 한세진의 동거인 하미영과의 대화를 통해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세상의 전형적 시선으로 볼 때 한세진은 겉도는 것처럼 보이는 인물이다. 그러나 첫째 딸과 막내 아들 사이의 말랑함 때문인지, 이순일의 하소연은 늘 한세진의 몫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엄마의 삶을 이해하고, 한세진을 보며 잘 살자는 마음가짐이 담긴 책의 제목 ‘연년세세’가 참 아리게, 그러면서도 따뜻하게 가슴을 채우는 작품이었다.


모두들 힘들었던 지난날에 멈춰있지 않기를. 그렇게 하지 않아도 삶은 어차피 지나간다. 그러니 올 한 해도 마음껏 울고 실망하고 환멸하고 분노하면서, 다시 말해 뜨겁게 사랑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서로에 대한 연민으로 조금씩 사랑하면서 살아간다면, 그나마 조금이라도 이 고된 세상을 버틸 수 있을테니. 우리의 궁극적 목표인 ‘잘 살기’라는 다짐을 잊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삶은 지나간다 바쁘게. 나탈리는 바쁘게. 울고 실망하고 환멸하고 분노하면서, 다시 말해 사랑하면서”


- 황정은의 『연년세세』 중에서

 




[임하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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