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잃어버린 작품들의 미술사 - 뮤지엄 오브 로스트 아트

“잃어버린 작품을 모아둔 미술관을 상상해보라”
글 입력 2021.01.03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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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봄 뉘넌의 목사관 정원, 1884.

 

 

2020년 3월 어느 날. 네덜란드에 위치한 싱어 라런Singer Laren 미술관에 경보기가 울렸다. 경비원들이 서둘러 달려갔지만 작품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 사라진 작품은 빈센트 반 고흐의 <봄 뉘넌의 목사관 정원(The Parsonage Garden at Nuenen in Spring)>, 고흐의 작품들 중에도 꽤 알려진 작품으로 라런 미술관이 기획 전시를 위해 빌려온 작품이었다. 작품을 다시 찾았다는 소식은 아직 들려오지 않고 있다. 지금 고흐의 그림은 어디에 있을까? 그 도둑들은 도대체 어떤 목적으로 미술 작품을 훔쳐 간 걸까? 우리는 그 작품을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우리가 미술관에 갈 때 주로 가는 곳은 잘 정돈된 인상을 안겨주는 전시회다. 세심하게 배치된 작품,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 놓인 장치들 그리고 공간을 살피는 사람들까지. 그런 인상에 우리는 당연하게도 작품들이 철저한 관심 속에서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실제로도 그렇다. 작품들은 하나하나 결코 허투루 다루어지지 않는다. 많은 전문가들의 관심과 노력 속에서 미술 작품들은 연구되고 보존되고 기회가 될 때마다 저마다의 의미를 품고 전시회를 통해 우리와 만나고 있다.


그렇다면 시선을 과거로 그리고 작품 자체를 향해 두어보자. 200년 전 즈음 그려진 명화를 떠올려보거나, 인체를 완벽하게 묘사한 몇 백 년 전 르네상스 작품들을 떠올려볼 수 있겠다. 그런 몇 백 년, 길게는 몇 천년이 더 되는 시간 동안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모든 작품들이 어느 하나 사라지지 않고 오늘날까지 존재하고 있을까? 우여곡절 하나 없었다면 오히려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긴 세월이다. 여러 사건 속에서 사라지거나 훼손되고, 파괴되어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작품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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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작품을 모아둔 미술관을 상상해보라”

 

아무것도 모른 채 마주하려니 너무 막연한 문장이다. 인간은 어떤 작품을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잃어버려 왔을까. 도서 『뮤지엄 오브 로스트 아트』는 우리가 쉽게 마주하지 못했던 잃어버린 작품들의 역사를 조명한다.

 

“거기에는 세계의 모든 미술관의

소장품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작품이 있을 것이다”

 

 

오늘날 세상에는 수많은 미술관과 엄청난 양의 미술품이 있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미술품이 각기 다른 이유로 사라지거나 숨겨졌다. 지진으로 파괴된 거대 청동상, 종교개혁의 시대에 파괴된 성상, 나치가 강탈한 미술품, 테러리스트들이 파괴한 고대의 유적,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도난당하고 은닉되고 파괴되는 작품들. 만약 잃어버린 미술품들을 되살릴 수 있다면 현존하는 박물관보다 몇 배나 더 많은 박물관이 필요할 것이다. (책 소개)

 

 

미술 범죄 분야 전문가가 쓴 『뮤지엄 오브 로스트 아트』는 미술품이 당한 불운의 사건을 다양한 주제로 살펴본다. 도난, 전쟁, 사고, 성상 파괴, 반달리즘, 소유자 혹은 예술가가 스스로 파괴한 작품, 처음부터 파괴를 위해 만들어진 작품까지. 도서는 평소 우리가 알지 못했던 미술 작품에 얽힌 다양한 사건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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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다윗, 1501-1504.

 

: 이탈리아 미술품 파괴범 피에로 칸나타는 1991년 갈레리아 델라 아카데미아에 망치를 몰래 숨겨 들어와 <다윗>의 발가락 일부를 부수었다. 왜 이런 행동을 했냐는 물음에 칸나타는 베로네세의 그림이 자신에게 그렇게 하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칸나타는 정신질환 판정을 받고 입원했으나 풀려난 후에도 계속해서 작품을 훼손했다.

 

 

늘 그 자리에 별 탈 없이 철저한 보호 속에 있을 거라 믿은 미술품들이 겪은 황당한 사건부터 영화에 나올법한 계획적인 도난까지. 책을 꽉 채운 다사다난한 사건들은 어떤 작품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노력과 어쩌면 운도 있었기에 가능한 일임을 깨닫게 했다.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우리 곁에 남은 작품은 ‘생존의 축복’을 받은 작품이라는 저자의 표현이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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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스타브 쿠르베, 돌 깨는 사람들, 1849년

 

: 드레스덴 고전회화관에 소장되었으나

1945년 2월 13-15일에 파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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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시 에민, 1963년부터 1995년까지 나와 함께 잤던 모든 사람, 1995

 

: 2004년 모마트 보관소의 화재로 소실되었다.

 

 

미술사에서도 자주 언급되었기에 현재도 존재할 거라 생각했던 작품들이 이미 파괴되었다는 소식은 조금 충격적이었다. 서양미술사 속 사실주의에서 대표적인 작품으로 언급되는 <돌을 깨는 사람들>은 세계2차대전 때의 폭격으로 소실되었다(폭격으로 드레스덴 고전회화관에 있던 154점의 작품이 소실되고, 현재까지 206점이 반환되었다. 450여 점이 여전히 오리무중인데 이는 러시아 수집가들이 은밀히 가지고 있을 거라 여겨진다고 한다).

 

예술가 트레이시 에민의 대표작 중 하나인 <1963년부터 1995년까지 나와 함께 잤던 모든 사람>은 2004년 런던 동부 레이튼의 모마트 보관소에서 일어난 화재로 소실되었다(이곳에는 컬렉터 찰스 사치의 소장품을 비롯, 데미안 허스트, 개빈 터크 등 합산하면 5000만 파운드에 이르는 가치를 가진 예술가들의 작품들이 소실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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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공백의 미술사’는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작품이 존재하는 다양한 맥락을 보여주고 있었다. ‘찾아볼 수 없으나 존재하는 작품’이라 다소 모순적인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이유는, 완전한 파괴가 아닌 도난으로 사라진 작품은 언젠가 다시 찾아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캔버스와 같은 재료가 하나하나 귀하던 시절에는 예술가가 이미 완성된 작품 위에 새로운 작품을 그리기도 했다. 그림 아래 존재하는 또 다른 그림 역시 기술로 그 존재가 확인되었지만 지금 당장 직접 볼 수 없는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도난은 희망을 준다. 도둑들도 훔친 물건을 보존해야만 가치가 높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미술품이 파괴되는 위험성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다. 납치 범죄와는 달리 몸값을 지불하지 않으면 범인은 미술품을 파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미술품이 되돌아온대도 범인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미술품은 파괴하면 가치가 없어지니까, 이건 마치 돈가방을 불태우는 것처럼 아무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 행위라는 것이다. 파손이나 파괴보다는 도난이 낫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작품이 남았으면 어쨌든 되찾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 ‘결론’ 중에서

 

 

이 공백의 미술사는 다양하게 확장되며 미술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 되기도 했다. ‘사라진 작품의 역사’는 처음부터 사라지거나 파괴되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 즉 일시적으로 존재하던 미술 작품의 한 맥락을 살펴보는 것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잃어버린 작품이 아닌 잃어버린 예술가의 이야기로 확장되는 부분도 매우 흥미로웠다.

 

조르조네가 32세에, 라파엘로가 37세에 죽지 않았다면 어떤 작품을 더 그려냈을까? 블라디미르 타틀린이 1934년 스탈린의 추상미술 공격 아래에서 정물화만 그리지 않고 자유롭게 작품 활동을 했다면 어땠을까? 『뮤지엄 오브 로스트 아트』는 단지 작품에 얽힌 사건을 서술하는 것을 넘어서, ‘미술의 잃어버림’에 걸쳐진 다채로운 맥락을 통해 미술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정말 공백의 ‘미술사’라 부를 만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었다.


이처럼 『뮤지엄 오브 로스트 아트』를 읽으며 미술사를 바라보는 시선을 확장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던 한편, 시대마다 작품과 예술가가 놓여있었던 상황들을 살펴보는 것은 인문학적으로 바라보았던 미술사를 보다 현실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작품 하나하나가 겪어야 했던 현실적인 상황을 실감하는 일은 분명 작품의 의미와 그려진 내용을 파악하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새로운 질문을 떠올리기도 했다. 이토록 미술 작품에 깊은 관심을 가진 인간 자체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그런 범죄를 저지르면서까지 작품을 훔쳐 가고, 그런 노력과 희생을 거치면서까지 미술 작품을 소중히 여기려는 인간의 움직임은 과연 무엇으로 일어나는 걸까. 나 역시 몇몇 글을 통해 하나의 작품이 인간보다 오래 살아남는 이유에 대해 나름대로의 생각을 드러내보곤 했지만, 『뮤지엄 오브 로스트 아트』는 보다 현실적인 관점으로 이 질문에 접근하게 했다. 아직 이런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떠올려보지는 못했지만, 나중에 한 번 살펴보고 싶은 흥미로운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잃어버린 걸작을 알게 되었을 때 그저 어깨를 으쓱하고 넘겨버리지 않는 것은 예술에 대한 사랑, 즉 예술이 가진 경제적 가치에 대한 관심이나 문화적 중요성 혹은 그 자체의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을 통해 그것을 보호하고 유지하려는 마음이 우리 자신을 지키려는 마음보다 더 크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 '결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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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엄 오브 로스트 아트』는 우리가 기억하는 미술 작품이 모두 현존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려줌과 동시에 우리가 오늘날 만날 수 있는 미술 작품들은 인간의 모든 미술사 어느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이런 공백의 미술사는 작품이 겪었던 일들 만큼이나 작품을 지키고 보존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을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게 했다. 미술을 향한 노력과 태도, 소유하고 파괴하고자 하는 욕망이 얽힌 인간과 작품 사이에 일어난 현실적인 사건들은 여느 미술사 책에선 실감할 수 없던 새로운 느낌과 질문을 안겨주었다.

 

인간은 왜 이토록 미술 작품을 지키기 위해 각별한 노력과 희생을 해온 걸까. 미술에 큰 관심이 없다 하더라도 작품이 사라지거나 파괴되는 소식에 세상이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왜 작품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걸까. 그렇게 하게 하는 예술의 힘과 인간의 관심은 무엇일까. 어쩌면 『뮤지엄 오브 로스트 아트』 속 잃어버린 작품들의 미술사는 우리가 생각해 보지 못했던 미술 작품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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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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