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정도 병인 양하여 [사람]

글 입력 2020.12.20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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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전 한 사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천천히 그 사람을 알아가고 싶었다. 그 사람이 말하는 방식과 행동, 나아가 삶을 대하는 태도까지. 그 사람과 잘 지내보고 싶었던 나는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 사람을 이해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나와 다른 접근 방식을 취했던 것 같다. 그에게는 나를 이해하는 것보다 공동의 과업을 수행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우리의 대화는 일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그럼 업무 적응에 시간을 좀 더 줄 수 없냐는 나의 물음에 그는 나무라기만 했다. 그의 말은 논리적이었지만, 따뜻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있었지만, 섭섭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결국 나는 이별을 선언했다. 우리의 여정은 여기까지가 좋을 것 같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잠시 당황한 것처럼 보였지만, 이내 나의 결론을 존중해 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마지막을 정리해가기 시작했다. 참 이상하게도, 끝을 정해두고 나니 관계가 편안해졌다. 그는 그제야 자신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었고 야속할 정도로 그와 대화하는 것이 더 이상 불편하지 않았다.


대망의 마지막 날, 나는 그다지 후련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쉬웠다. 이 상황이 짠하게 느껴졌고 그가 걱정되었다. 나는 미련이 남았고 조금 후회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아쉬움을 느끼는 내가 이상하기도 하고..., 아무튼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그런 멜랑꼴리한 기분으로 아직 정리되지 않은 업무 메일을 인수인계하며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다음날, 그에게서 회신을 받았다. 이 메일을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으로 시작된 메일을 읽다 나는 또 다른 멜랑꼴리한 기분을 느꼈다. 메일에는 개인적으로 미안한 것이 많다 고 적혀있었다. 미안하다 는 말이 왜 그렇게 내 마음을 일렁이게 만들었는지. 내가 그동안 그에게서 미안하다는 말을 참 듣고 싶어 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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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에게 상당한 기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기대를 충족시켜줄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매번 그는 자신의 기대치를 나에게 보여주었고 나는 그것이 몹시 부담스러웠다. 기대란 종종 '충족'이라는 단어와 짝을 이루지만, 그 뒤에는 대개 '못'이라는 부사가 붙곤 한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못질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상처를 더 이상 들여다볼 자신이 없었던 내가 먼저 마지막을 꺼내고 말았다.


그가 조금만 더 나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더라면 어땠을까?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내 상황을 이해해 주었다면 우리의 오늘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다 지나간 이야기인 걸. 다 지난 후에야 나는 그에게서, 내가 그토록 원하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사실 나는 그가 밉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 역시 그에게 나만의 기대를 걸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만 더 내 상황을 이해해 주기 바라며 우리가 이 시간을 함께 이겨나갈 수 있기를, 그가 나의 기대를 충족시켜주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내가 바라기 전에 먼저 행동했더라면 어땠을까? 그의 기대를 인정하고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움직였더라면 우리의 오늘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다 지나간 이야기인 걸. 다 지난 후에야 나는 그의 기대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3개월이라는 시간은 꽤 긴 시간이었던 모양이다. 나도 모르는 새, 그에게 정이 들고 말았다. 무엇보다도 마지막 1달 동안 그가 보여준 인간적인 모습, 그와의 대화 그리고 그의 마지막 회신은 나에게 진한 아쉬움으로 각인되었다. 다정도 병인 양하여, 아무래도 한동안 나는 이 아쉬움과 그리움 속에서 하루는 후회하고 또 하루는 위로하며 멜랑꼴리한 시간을 보내게 될 것 같다.

 

 

[김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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