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창밖에 눈이 오네요 [문화 전반]

글 입력 2020.12.19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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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초에 첫눈이 왔다. 사전상으로 첫눈은 그해 겨울에 처음 내린 눈을 말한다고 한다. 지난 10년간은 11월에 첫눈이 왔었는데 올해는 조금 늦은 12월에서야 첫눈이 찾아왔다. 코로나로 인해 애매하게 멈춰져 있던 사람들의 시간과는 달리 자연의 시간은 꾸준히 흐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 소식이었다.


파란 하늘에서 가볍고 하얀 물질이 내려오는 게 일 년을 놓고 보았을 때 이례적인 일이어서인지 눈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인식이 있다. 어쩌면 한국의 문화적 특징일 수 있다. 일 년 사계절 중에 겨울부터 봄이 될 무렵까지 약 5개월 동안만 볼 수 있는 현상인 데다, 그마저도 한 달에 많아야 겨우 3~5일 정도이기 때문이다.

 

자주 보지 못하는 현상이라 각별히 여기는 모습은 조선 시대에도 존재했다. 옛 서양에서 시작되어 현재 한국에도 자리 잡은 만우절은 조선 시대 궁중에서 이미 있었다고 한다. 다만 지금 날짜와 다르게 첫눈이 내리는 날이었다. 우리가 아는 만우절처럼 첫눈이 내리는 날에는 어떤 거짓말을 해도 용서가 된다고 한다.


현대에 와서 첫눈은 첫사랑과 연관된 이야기들로 그 특별한 의미를 이어오고 있다. 첫눈을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영화 <건축학개론> 속 1996년 서연과 승민이 언제일지도 모를 첫눈 오는 날을 기약하던 것이다.


 

첫눈 오는 날 뭐해?

첫눈? 그거 언제 오는데?

글쎄.. 때 되면..

그럼 우리 그날 만날까?

 

영화 <건축학개론> 中

 

 

비록 첫눈은 아니었지만, 눈이 온 새벽에 이미 바닥에 얇게 쌓인 눈을 보고 떠오른 작품들을 소개하고 싶다. 또 쌀쌀한 날에 눈이 내리면 이 작품들을 감상하며 공중에 흩날리는 눈송이를 즐겨보기를 기약하면서 말이다.

 

 


1. 드라마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옆 건물 옥상에 연하게 쌓인 눈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올린 작품이다. 이도우 작가의 책 원작을 한 드라마로 올해 2월 말부터 16부작으로 방영했다. 사실 어떤 계기로 처음 접하게 되었는지 명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잔잔하고 전체적으로 포근한 분위기를 가진 작품이라 보는 내내 마음이 따뜻했다.


원작이 확실해서 이미 내용적인 작품성은 인정을 받고 시작한 드라마였음에도 생각보다 시청률이 높지는 않았지만, 차분하게 시골 풍경과 이웃의 따뜻한 정을 볼 수 있는 점에서 <리틀 포레스트>가 생각나는 힐링 드라마였다. 평온하고 서정적인 분위기로 마니아층이 생성되기도 했다.


어느 겨울날 서울에서 해원이 고향에 온 순간부터 과거 회상을 제외한 거의 모든 장면이 평화로운 자연에 둘러싸여 있는 해원의 고향 혜천시를 배경으로 한다. 드라마의 주 시간적 배경이 겨울이기 때문에 봄이 오기 전까지 화면 구석에서 녹지 않은 하얀 눈을 볼 수 있다.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 눈부시게 아름다운 자연 풍경, 마음에 와닿는 대사들이 모두 합쳐져서 겨울의 추위를 잠시 잊고 따뜻한 마음만을 느끼게 한다. 내용 전개에 있어서 눈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단지 눈은 카메라 렌즈 안으로 인물들과 함께 들어오고 너무도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경치를 완성했다.

 

 

 

2. 도서 <프로즌 파이어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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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보울러의 소설은 흔히 청소년 문학 작품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처음 내가 팀 보울러의 <리버보이>를 읽은 이후 분명 어린 시절의 청소년 모습과는 달리 훌쩍 커버렸음에도 난 지금도 <리버보이>를 눈물 없이 덮지 못한다. 그의 작품을 청소년 한정으로 두기에는 성인의 나이가 된 나의 마음을 여전히 울린다.


<프로즌 파이어>는 처음 <리버보이>를 읽었던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한참 그의 작품을 잊고 있던 중고등학교 시기에 읽은 책이다. 사실 눈을 보고 문득 떠올랐다기에는 이미 너무나 오래전에 읽은 책이다. 5년도 더 전에 읽었던 책이라 사실 제목과 주인공, 배경만 어렴풋이 기억이 나고 구체적인 줄거리를 잊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소개하고 싶은 이유는 책을 읽던 어린 시절의 내가 느낀 감정은 아직 생생하기 때문이다. <프로즌 파이어>는 겨울을 더 겨울답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자신이 정말 사랑하는 오빠를 잃은 소녀 더스티의 상처와 성장에 관한 이야기다. 극복이라고는 말하지만, 무심히 마음이 아려오는 것이 꼭 겨울을 닮은 책이다.


책에서는 새하얀 눈이 쌓인 풍경이 계속된다. 표지와 내용 시작부터 사방이 하얀 설경이 펼쳐진다. 분명 시각적인 정보는 책 표지 모습뿐인데도 더스티에게 보이는 차갑고 반짝이는 투명한 풍경이 나에게도 보이는 듯하다. 점차 추워지고 가끔 눈이 오는 요즘 날씨에 잘 어울리는 소설이다.

 

 

 

3. 음악 <눈>


 

 

 

이 곡은 언제나 그해에 찾아올 눈을 기대하며 듣게 되는 곡이다. 사실 눈 내려진 건물 옥상을 보고 Zion.T의 <눈>과 패닉의 <눈 녹듯> 두 곡이 함께 떠올랐지만 아직은 초겨울이니 눈 오는 날이 앞으로 더 많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Zion.T의 <눈>을 소개하고 싶다.


2017년 12월에 디지털 싱글로 발매된 이 곡은 선배 가수 이문세와의 협업으로 더욱 화제였던 곡이다. Zion.T는 함께 작업하게 된 배경을 앨범 소개를 통해 전했다. 설레는 감정과 슬픈 감정을 동시에 표현하기 위해 그는 현재진행형의 사랑의 따뜻함과 지나간 사랑의 그리움 모두를 한 곡으로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


지나간 사랑을 가장 담담하게 전할 수 있는 사람으로 떠올린 것이 바로 함께 작업한 이문세였다. 가사를 주의 깊게 들어보면 1절과 2절 용언의 어미가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주 작은 표현 차이로 두 가지 의미의 사랑을 그려낸 점이 이 곡을 계속해서 듣고 싶게 한다.


내가 어느 상황에 놓여있던 이 곡은 날 편안하게 위로하고 주변 풍경을 포근한 눈 내린 모습으로 바꾸어 놓는다. 간주 후 Zion.T가 가볍게 내뱉는 마지막 가사는 눈이 왔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실제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그리며 함께 마실 차 한 잔을 기대하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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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에 내린 눈으로 아직 미처 치우지 못한 건물의 옥상에는 지금도 하얗게 눈의 흔적이 남아있다. 분명 눈이 내리는 그 새벽, 나는 깨어있었지만 알지 못했다. 눈이 작게나마 소리를 내며 내리면 좋으련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상상해보며 아쉬워해본다.

 

글에서 소개하지는 못했지만 오랜만에 눈을 보니 영화 <윤희에게>, <설국열차>, <렛미인>이 생각났다. 모두 겨울을 배경으로 새하얗게 쌓인 눈을 카메라에 담은 작품들이다. 이와 비슷하게 예능 <꽃보다 청춘 - 아이슬란드>도 생각이 났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화면으로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이 밖에도 글을 읽는 독자가 생각한 작품들이 더 있을 것이다. 사람이 살기 전부터 이 세상에 존재했을 자연 현상 눈은 늘 우리와 함께였기에 인간이 만들 수 있는 모든 작품 종류 안에 자연스럽게 담긴다. 김춘수 시인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과 샤갈의 <비테프스크 위에서>도 그러했듯 말이다.

 

앞으로도 더 눈과 관련된 예술 작품들이 세상에 알려질 수 있도록 이따금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시간에 잠깐씩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 물론 나의 뜻대로 자연이 움직이지 않지만 보기에 아름다운 눈이 출퇴근길 교통체증과 제설작업의 어려움을 불러올 수도 있으니 말이다.

 

내리고 있는 눈을 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첫눈에 이어 지난 새벽에 눈 하강의 현장을 놓쳐서 아쉬운 마음이 크다. 다음번에는 모두를 행복하게 할 가벼운 눈이 세상이 밝을 때 내리길.

 

Let it SNOW❄

 

 

[정서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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