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가치를 지켜내는 것에 대한 가치 -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 [도서]

작품과 정밀한 대화를 나누고 시간의 먼지를 털어내는 사람들.
글 입력 2020.12.14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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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는 여러 음악 장르 중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짧게는 30년, 길게는 70-80년 전에 나온 앨범들이 새로 나오는 앨범들 이상으로 청자들에게 사랑받고 지속적으로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대변하는데, 그와 더불어 과거에 녹음되었던 마스터 테이프나 음원이 우연한 계기로 발견되어 세상의 빛을 보는 경우도 빈번하다.

 

새로운 음악만큼이나 그 새로움의 발판이 된 과거 아티스트들의 흔적들이 여전히 신선하게 다가온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렇듯 재즈는 새로운 음악뿐 만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에 대한 끊임없는 재발견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장르다.


작품 보존은 어떤 면에서 재즈와 유사하다. 작품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는 물론이고 일반적인 시선과는 다른 각도로 응시하고 수많은 시간에 묻혀 그 가치가 불투명한 작품의 단서를 찾아내어 미술사적 맥락에 위치시키기도 한다.

 

당연히 보존가나 보존과학자 혼자만 하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작품과 가장 정밀한 대화를 나누고 시간의 먼지를 털어내어 그것들이 가진 보다 명확하고 다양한 의미를 발견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그 손길을 쫓아가보자.

 

 

 

미술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_표지_입체.jpg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의 저자이자 학예연구사인 김은진은 기존하는 것에 대한 여러 방면에서의 탐구 정신, 그리고 새로운 예술 형식의 확장성을 눈여겨보면서 유능한 전달자 역할을 수행하는 보존가와 보존과학자에 대해 얘기한다. 우선 작품 복원에 대한 윤리적 관점은 책 속 모든 주제를 아우르는 대전제로 작용한다.

 

‘왜’, ‘어떻게’, 그리고 ‘누가’. 복원 기술에 대한 이해가(‘어떻게’) 중요하지만 거기에 ‘왜’ 복원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이 결여돼있으면 곤란하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에 복원 학교가 생기며 “보존 행위의 근본적인 목적에 대한 고민과 처리 방법에 대한 표준화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이런 점에서 중요하다.

 

보존 작업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지 의문을 품는 메타적인 질문들이 실제 변화를 이끌어낸다. 게다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작품 보존을 고민하던 보존가들의 작업이 대중에게 접근하면서 저자의 말대로 보존과 복원은 “미술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이 될 가능성을 조금씩 내보이고 있다.

 

 

 

작품의 서사와 기술의 서사



저자는 미술품 복원에 활용하는 여러 과학 기술과 기법에 대해 설명하면서도 작품 개별의 서사를 함께 짚어준다. 그런 점에서 복원 기술의 놀라움과 동시에 작품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져 책을 덮은 후에도 작품과 관련된 요소들을 찾아보고 싶게끔 만든다.

 

 

[trans]친구의 초상.jpg

 

 

이를테면 접착제로 그림의 뒤에 새로운 천을 덧대는 작업인 ‘배접’을 설명하며 예시로 든 구본웅의 유화 <친구의 초상>은 작품의 서사가 그동안 작품이 거쳤던 복원의 과정과 포개지면서 더욱 풍성한 의미로 다가왔다.

 

시인 이상의 모습을 그렸다는 <친구의 초상>과 그 그림이 표지로 쓰였던 문예지, 그리고 1980년대 당시 국내 최신 복원 기술이었던 “왁스를 접착제로 사용”한 배접으로 인하여 작품의 전반적인 색감과 인물의 분위기까지 모두 달라져버린 사실은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작품의 역사였다.

 

당대의 기술을 동원하여 한 복원이더라도 시간이 지나 그 결과는 보존가의 의도와는 반대로 흘러 작품에 손상을 줄 수 있다. 이는 보존가가 자신의 직업을 내려놓기 전까지 안고 가야 할 책임이기도 하고 지금 최선의 선택이라고 판단되는 작업 방식에도 꾸준히 의문을 가지고 재고해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저자가 계속해서 작품 보존의 주관성과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 또한 위와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예술 작품에서 발생하는 현상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부분 역시 이해를 도왔다. 이를테면 이런 부분.

 

 
“보존과학자는 보존가의 활동에 필요한 과학적 정보를 연구하는 사람이다. 보존가는 작품의 보존 처리에 필요한 기본적인 과학 지식을 교육받는다. (...) 보존가가 외과 의사라면 보존과학자는 진단검사의학과 의사라고 할 수 있다.”
 


새롭게 느껴진 부분은 캔버스 위 물감층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우리가 회화 작품을 별다른 의문 없이 2차원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달리, 그림이 3차원 구조물이라는 얘기였다.


 
“마지막 물감이 칠해지기 전에 작가들은 무수히 많은 물감을 칠하고, 칠하고 또 칠한다. 그림의 바탕이 되는 종이, 캔버스, 나무틀, 나무판까지 생각한다면 그림은 완벽한 3차원 구조물이다.”
 


[trans]six mile bottom Frank Stella.jpg
프랭크 스텔라 - (1960). 출처: tate

 

[trans]Robert Rauschenberg.png
로버트 라우셴버그 - <무제> 일부 (1951). 출처 : sfmoma

 

 

물론 미술 비평가인 레오 스타인버그가 로버트 라우셴버그의 모노크롬 회화와 같은 작품을 통해 공간의 환영을 담고 있는 회화 개념에서 탈피해 캔버스를 ‘실재의 표면’으로 운용한다는 점을 언급했고, 프랭크 스텔라가 캔버스의 형태를 작품의 디자인 요소 자체로 활용하면서 아티스트의 관점에서 스크린이라는 회화 개념을 실제 공간을 차지하는 즉물적인 개념으로 바라보기도 했기에 회화의 3차원성이 마냥 없던 이야기는 아니다.(데이비드 배츨러, 『미니멀리즘』 [2003, 열화당] 참고)

 

하지만 그림을 공간으로, 정확히 말하자면 다층적인 구조물로 인식하여 작업하는 보존가들의 시선에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가치를 지켜내는 것에 대한 가치



보존과학자와 보존가는 작업하며 환경에 유해한 요소에 대해 끊임없이 대안과 자구책을 연구하고 있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지금 최선의 선택이라고 판단되는 작업 방식’이어도 환경 문제를 유발하는 요인이거나 장기적으로 작품 상태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것이라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직업윤리뿐만 아니라 보편적 윤리와도 관련한 문제다. 과학과 예술의 사이에서 가치를 지키고 만들어낸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나는 이 책을 통해 가치를 지키는 것에 대한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그게 미술사적 가치이든, 우리 자신의 가치를 지켜내는 것이든, 잘 알기 위해서는 역시 계속 고민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누군가는 그걸 애정이라고도 하고, 사랑이라고도 한다.

 

 

“사랑이 화학 반응에 불과하다고 할지라도 그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이아몬드의 성분이 탄소라고 해서 그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듯이.”

 

_황현산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난다, 2019) 중

 

 

 

*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
- 과거의 시간을 현재로 그리고 다시 미래로 -
 
 
지은이
김은진
 
출판사 : 생각의힘
 
분야
교양과학
 
규격
140*215mm
 
쪽 수 : 304쪽
 
발행일
2020년 11월 06일
 
정가 : 17,000원
 
ISBN
979-11-90955-03-4 (03600)
 
 
 

조원용 컬처리스트.jpg

 
 


[조원용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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