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소원을 들어준다는 것 [영화]

영화 <위시>를 통해 본 소원의 의미
글 입력 2024.01.22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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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데 있어 우리에게 소원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새해를 맞이하면 흔히 여러 유명한 절이 많은 사람으로 북적이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그곳에서 그들은 절대자를 향해 절을 하며 소원을 빌거나 돈을 내고 종이를 구매해 소원을 적는 등 각자의 방식대로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생각해보면 돈을 내고 소원을 적는다고 해서 그 소원이 이루어지리라는 보장은 없고 더 나아가 신의 존재 여부에 관해서도 의견이 분분한데 우리는 적지 않은 돈과 시간을 소비한다. 이것을 과연 이들의 단순한 이성적인 판단 부족으로 치부하며 하찮게 여길 수 있을까?

 

디즈니 100주년을 맞아 새롭게 개봉한 영화 <위시>는 소원을 소재로 하여 그것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표현했다.

 

 

 

소원을 맡기면 이루어지나요?


 

영화는 소원이 이뤄지는 마법의 왕국 로사스를 배경으로 하여 백성들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매그니피코 왕’과 주인공 ‘아샤’를 중심으로 내용을 전개해나간다.

 

18세가 되면 왕에게 소원을 맡기는 백성들은 그와 동시에 소원의 내용을 잊게 된다. 모든 백성의 소원을 들어줄 것이라고 믿었던 왕은 왕국에 도움이 되는 소원만을 들어주며 대부분의 소원은 배제한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소녀 아샤가 백성들의 소원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정을 그린다.


주인공 아샤가 노력을 하는 과정은 그동안의 디즈니가 쌓아온 행보에 비하면 다소 진부하고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오간다. 또한, 영화에서 악역으로 비춰진 매그니피코 왕이 정말 악역인지에 관한 의문도 존재한다. 백성들이 소원을 왕에게 맡기고 그 내용을 잊어버렸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충분히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점, 왕이 소원을 들어주는 기준은 왕국에 도움이 되는 기준이기에 공익을 추구한다는 점이 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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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영화의 주제와 연결해보자면 겉으로 드러나는 소원의 의미에만 치중하기 보단 그 안에 내포된 진실함을 파악해보아야 한다.

 

먼저 매그니피코 왕이 추구하는 공익은 그 기준이 불분명하다. 백성들과의 합의를 통해 거치는 것이 아닌 자의적으로 기준을 설정해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 개인의 소원을 희생할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의문이 든다. 더불어 소원을 이루지 못해 좌절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소원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단순히 행복의 양만을 늘리는 것에 불과하다. 


이는 백성들이 소원의 내용을 잊어버린 후에도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것은 진정한 행복이 아닐 수 있다는 것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그들이 사는 삶은 자신의 소원이 무엇인지도 모르기에 그것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물론 현실에 안주하는 것 역시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영화는 우리의 꿈을 기억하지도 못한 채 아무런 도전도 하지 않는 삶이 과연 완전한 행복인지에 관해 숙고하게 만든다.


따라서 영화 <위시>는 소원을 이루기 위한 과정을 중요시한다. 우리가 꿈꾸는 소원 대부분은 이루기 쉽지 않을 수 있겠지만, 왕과 같은 절대적인 존재가 소원을 이루어주길 막연하게 기대하는 것보다는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소원을 이루어내는 집념과 도전 그리고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절대자에게 절을 하거나 소원을 적은 종이를 걸어두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의 행보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내용은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뻔하고 동화적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지만, 이는 결국 행복의 의미와도 연결된다. 한순간의 결과보다는 그 과정에서 느낀 소소한 즐거움이 행복의 형상과 가깝듯이, 소원을 이룬 결과보다는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며 수없이 거쳤던 간이역에 깊은 의미를 둔다.

 

 

 

진정한 유토피아적 세계란


 

영화의 결말은 아샤가 모두의 빼앗긴 소원을 돌려준 후 저마다의 노력으로 소원을 이루어 나가는 이상적 세계를 보여주며 끝이 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소원을 이루는 경로의 초점을 ‘노력’에만 치중했다는 것이다.


영화 <위시>의 감독인 제니퍼 리(Jennifer Lee)는 영화의 주제를 정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는 질문에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 꽤 수동적이다. 별에 소원을 빌면서 이루어지길 바라니까.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힘과 의지로 소원을 실현해 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항상 이야기해 왔다.”라는 답변을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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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세상에 우리의 힘과 의지만으로 이룰 수 없는 소원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새해를 맞아 가족과 함께 간 절에서 우리 역시 소원을 비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 가족 외에도 많은 사람이 절을 하며 소원을 빌고 있었는데, 엎드린 채 오랫동안 소원의 내용을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이를 보게 되었다. 


<눈물의 중력>이라는 시에는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울 수밖에 없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슬픔에 압도되어 온몸이 허물어지는 것처럼, 어떤 소원은 너무나도 간절하고 무거워서 손을 지탱해 무릎을 일으켜 세우는 것조차 힘겨울 때가 있다. 벽면과 울타리에 붙어있는 수많은 소원 중에는 모두의 노력을 합심해도 충분하지 않은 소원이 있다. 마음은 너무나 간절하고 절박하지만, 스스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소원을 별이나 신에게 의지하는 것이 마냥 수동적인 태도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렇기에 로사스 왕국이 진정한 유토피아적 세계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소원을 이루기 위한 개인 노력의 중요성만을 강조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개인의 의지와 노력으로 충분히 성취가 가능한 소원과 그렇지 못한 소원을 분별하는 것, 노력만으로 성취할 수 없는 소원을 가진 자의 절박함에 공감하여 소원을 들어주는 왕의 존재를 부각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모두가 행복한 이상적인 세상이 아닐까.

 

그리고 나는 그때 절 곳곳에 저마다의 표현으로 가득 채워진 모두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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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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