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세바스찬, 입을 열다 -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

원상 복구만이 복원은 아니라서.
글 입력 2020.12.13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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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이 있으면 악당이 있다. 빛과 어둠처럼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영웅 뒤에 숨겨진 조력자를 기억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없지는 않을 것이다. 배트맨에게 시선이 가는 사람이 있으면 묵묵히 일하는 세바스찬이 보이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게다가 보는 사람이 없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다는 뜻도 아니다.
 
스페인의 <원숭이 예수>는 그 제목을 모를 수는 있어도 작품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아마추어인 세실리아 성당 벽에 그려진 낡은 예수 벽화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걷잡을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고, 에케 호모라는 제목을 가진 이 벽화는 우스꽝스러운 그림으로 재탄생했다. 현재 수많은 관광객이 오직 이 복원에 실패한 벽화를 보러 스페인을 방문한다.
 
복원가, 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이 <원숭이 예수>다. 내가 그려도 이것보다 낫겠단 생각이 절로 나오는 이 그림은 도리어 복원가가 누구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하게 만드는 매개체 역할을 했다. 복원가. 이상하게 멸균복을 입고 조심스럽게 그림을 다루는 사람이나 높은 의자에 여러 물감을 짠 팔레트를 들고 조심히 색을 조합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 이상으론 아는 게 없다. 그러니 이 책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는 내게 복원가란 직업을 처음으로 알려주는 선생님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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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을 하면서 겪은 여러 경험을 풀어놓았을 거란 예상과 달리, 이 책은 제법 유명한 작품의 복원 이야기를 하며 복원가란 무엇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 서술한다. 즉, 책 역시 이 직업을 처음 접해본 사람을 학생으로 상정하고 적은 것이다. 좋은 학생이 되었을진 모르겠지만, 좋은 학생이 되기 위해 간단히 복습해볼 순 있겠다.
 
책의 초반은 미술 작품 하면 떠오르는 일반적인 작품을 복원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유화, 아크릴 물감 등이다. 그림이 오래되면 그 위에 먼지가 묻어 차츰 색이 바라기도 하고, 갈라지거나 울면서 손상이 가기도 한다. 복원가는 과학적인 도구를 사용해 최대한 작품, 즉 물감에는 손상이 없도록 먼지를 없애거나 갈라진 부분에 색을 넣기도 한다. 이때 중요한 원칙은 미술 작품을 훼손시키지 않는 것이다.
 
가령 물감이 갈라져 가뭄처럼 틈이 생긴 경우에 복원가는 틈을 비슷한 색으로 메꾼다. 단, 작품의 기존 부분을 덧그리면 안 되고, 갈라진 부분이 기존 부분과 똑같아서도 안 된다. 똑같은 물감으로 똑같이 칠하면 감쪽같긴 하겠지만 추후 더 좋은 복원 방법이 나왔을 때 작품과 복원한 부분을 구분할 수 없게 된다. 그러면 더 나은 방법을 사용할 수 없게 되며 작품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따라서 작품을 복원할 때 기존 작품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진행되고 복원한 부분은 항시 기록해두며 언제든 지울 수 있는 방식으로 한다.
 
중반부에 나오는 이야기는 좀 더 흥미롭다. 기존의 회화 방식에서 벗어나면서 사용하는 미술용품도 작가의 의도도 다양해진다. 따라서 복원가의 고민도 점점 커진다.
 
미디어 아트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 백남준의 작품 중 <다다익선>은 수많은 텔레비전을 쌓아 올려 만들었다. 최근 이 작품이 고민의 중심이 되었다. 더는 브라운관의 텔레비전을 만들지 않으니 고장이 났을 때 복원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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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관 텔레비전을 led 벽걸이 텔레비전으로 바꾸자는 이야기도 나오고 외관은 놔두고 내부 영상이 나오는 부분만 바꾸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혹자는 고장이 나 꺼진 브라운관 그대로 설치해두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신미경의 <화장실 프로젝트>는 비누로 만든 조각품을 화장실에 놓아둔다. 사람들이 비누로 손을 씻으면서 작품이 점점 닳아 코는 흔적도 없을 정도다. 기존의 작품이라면 훼손이라는 명목하에 안전하게 다른 곳으로 옮겨졌을지도 모르지만, 이 비누 조각상은 사용과 변화에 작가의 의도가 담겨있다. 이런 경우 코가 없어졌다고 새로운 코를 붙여 복원하는 것이 옳은 선택일까? 작품을 화장실에서 분리해 수장고에 놔두어야 할까?
 
상어를 방부제에 넣은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은 수조 속 상어가 부패하자 다른 상어를 구해 다시 작품을 만들었다.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의 작가 데미안 허스트는 기존 상어의 부패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복원하고자 하던 보존과학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다른 상어로 바꾸겠습니다. 어떤 상어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상어는 단지 내 아이디어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죠. 그것은 그저 그것일 뿐입니다.”
 
과거의 복원은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미술 작품을 오래 보관하는 것이 목표였다면 현대의 복원은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고 이에 맞게 최소한의 개입을 선호한다고 책은 말한다. 때론 작품을 처음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지만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의 의도로 작품을 훼손하거나 작가의 아이디어만이 작품이 되는 경우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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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그림을 처음 그렸던 그대로 놔두면 만사 오케이일 거로 생각했던 내게 현대 미술의 복원은 하나의 편견을 깨는 이야기이다. 해양 쓰레기가 너무 많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해양 쓰레기를 모아둔 작품이 훼손되었다고 쓰레기를 억지로 만들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해양 쓰레기를 다시 그만큼 가져와 보존한다면 다행이지만 그때의 작품과 지금의 작품이 같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고민되는 선택이다.
 
다시 백남준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다다익선>은 어떤 작품일까? 작가가 작품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브라운관 텔레비전 그 자체에 있는가, 영상에 있는가 혹은 텔레비전이 당시 새로운 문물이라고 불리던 부분에 있는가. 영상과 브라운관 텔레비전 이 모든 게 완벽히 어우러져야 할까.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것이고 그에 따라 정답도 달라질 것이다. 현대 미술의 복원은 각기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에게 자문하고 가장 나은 방향으로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후반부는 미술 작품이 놓이는 공간이자 복원가의 일터, 미술관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불과 물에 약한 미술 작품이 망가지지 않도록 미리 예방하는 것부터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방식 등을 간략하게 설명한다. 미술관의 작품에 대해선 알아도 미술관 자체는 알 방법이 없던 일반인에게 이런 설명은 흥미롭게 다가온다.
 
그중에서도 수장고는 상당히 인상 깊다. 대영미술관에서 루브르 박물관, 뉴욕 현대 미술관까지 방문할 때마다 하루 만에 보는 건 무리가 아닐까 고민했는데 사실 그곳에 있는 작품이 10분의 1밖에 안 된다니. 근래에는 10분의 9쯤의 작품이 담긴 수장고 일부분을 오픈하는 때도 있다니 괜히 마음이 아팠다. 미리 알았다면 볼 수 있었을 텐데.
 
시간이 지날수록 작품은 늘어날 것이다. 훼손되거나 사라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해도 새로 만들어지는 작품 수를 따라잡을 순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되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수장고는 계속 늘어날 것이고, 이에 대한 고민도 끊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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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복원가는 참 고단하다. 과학과 미술용품, 미술사에 능하면서 윤리적인 고민을 끊임없이 해야 하는데 결과물은 티 나지 않고 반대로 욕먹기는 쉽다. 최선을 다한 결과물이 꼭 호평을 받으리라는 법이 없다. 먼지를 없애는 과정에서 작품의 물감까지 없애버렸다거나 작품의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복원을 했다는 혹평을 받는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으니 몇 명의 비난은 어쩔 수 없다.
 
그런데도 책을 읽는 내내 복원가란 직업에 관심이 가는 건 왜일까. 수장고에 잠들어있을 작품을 만날 수 있으리란 희망, 명작을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고 내 손으로 더욱 빛나게 만들 수 있으리란 기대감?
 
가장 들뜨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 고단함에 있다. 작품을 어떻게 하면 더 작가의 의도대로 보존해 후대에 물려줄 수 있을지 수많은 고민 그 자체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복원가는 가르치는 사람이 있지만 정석은 존재하지 않는다. 윤리적인 부분을 고려하고 작품의 재료와 상태를 파악하면서 작가의 의도와 당시 시대 상황 및 현재의 시대 상황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 비슷한 재료나 같은 작가가 만든 작품이어도 복원 방식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에서는 몇 번이고 예술가는 무의식적으로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책에서 설명하는 복원가도 예술가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예술가가 추구한 새로운 재료와 작품 형식을 좇아 더 새로운 재료와 복원 방법을 연구한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해야 하니 고통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예술가만큼이나 매력적이다.
 
배트맨에게 집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묵묵히 받쳐주는 세바스찬에게 시선이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연히 복원가의 모습을 보고 무작정 유학길에 오른 이 책의 작가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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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
- 과거의 시간을 현재로 그리고 다시 미래로 -
 
 
지은이
김은진
 
출판사 : 생각의힘
 
분야
교양과학
 
규격
140*215mm
 
쪽 수 : 304쪽
 
발행일
2020년 11월 06일
 
정가 : 17,000원
 
ISBN
979-11-90955-03-4 (0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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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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