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찰스 부코스키 레시피, 꽃병 그리고 날달걀 여섯개와 한파운드의 고기 - 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

글 입력 2020.11.20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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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부코스키의 자유분방한 글을 리뷰하기 위해, 나도 이 리뷰를 마음이 가는 대로 써보려 한다. 이 글은 가독성 규범의 제 일원칙을 어긴다. 나는 글쓰는 사람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으로 글을 전개할 것이다. 이 형편없는 글은 찰스 부코스키의 글쓰기를 동경한 결과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사람 셋이 있다. 첫째, 빵모자를 쓰고 은은한 조명에 취해 눈물을 닦는 갬성 힙스터, 둘째, 사람이 천사나 악마, 혹은 멀린이나 유니콘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광신도, 셋째, 이 리스트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어떠한 노력 없이 고개만 주억거리는 사람. 양심적으로 마지막엔 이 글을 쓰는 나를 포함한다.

 

이 양심도 없고 뻔뻔한 민낯은 자본주의 사회의 얼굴이다. 현대사회의 미디어 레이어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신화를 약속했다. 사실 자아의 수많은 중첩 중에서 무엇이 거짓이고 진실인가를 따지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그럼에도 현대사회가 끊임없이 제시하는 신화는 너무 명백하고 명확하다. 그래서 난 그들이 우리를 기만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좌우간 미디어의 달콤한 부채질 아래에 우리는 모두 거울을 닦는다. 우리 모두 자기애라는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 아쉽지만 불치병인듯 하다. 생각해보니 현대사회의 질병이라 보는 것도 대단한 나르시시즘이다. 이 병은 우리가 모두 원죄를 타고났다는 낯부끄러운 아주 오래된 신화 시절부터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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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부코스키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 중 세 번째에 들어가는 사람이다. 그는 길거리의 술병처럼 굴러다닌다. <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에서 그 역시 자기애라는 만성질환에서 벗어날 수 없음이 관찰된다. 하지만 그는 그 자신이 가진 알량한 자기애조차도 끔찍한 농담으로 승화시킨다.

 

그는 그 자신을 스스로 시인이라 부르지만, 지성인으로 부르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셰익스피어를 재앙으로, 지성인을 창녀보다 더 지갑을 터는 자식으로 바꾸는 능력이 있다. 탁월한 입담은 현대사회가 끊임없이 꿈꾸게 하는 가족, 사랑, 지성은 모두 취기 들어간 노인네의 뒷담으로 바꾸어 버린다.

 

이것이 찰스 부코스키의 매력이다. 이 음탕한 노인네의 끔찍한 농담은 듣기 거북한 면이 있지만, 매우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이상한 설득력 또한 가지고 있다. 그의 시선은 때로 인종차별적이고 여성 혐오적이다. 그의 시선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말고 엉망인 세상을 대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사실 천천히 읽어보면 찰스 부코스키는 특정한 어떤 대상을 혐오하기보다는, 어떤 방식으로 굴러가길 바라는 세상과 인간에 대해서 혐오한다. 그런 그가 행복한 시지프스를 상상하는 카뮈를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찰스부코스키의 시선은 재치있고 우습지만, 세상을 꿰뚫는다. 이 책의 후반에는 갇힌 시인 스티르코프와 간수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수감된 시인과 그에게 이상과 정의에 대한 글을 왜 썼냐고 물어보는 간수의 이야기는 숭고한 이상과 같이 무언가 '엄청나게 대단한' 이야기를 할 것 같이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결코 그런 방식으로 글을 전개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는 시인의 입을 통해 이 글이 수록되는 잡지 <오픈시티>를 광고하는 듯한 뻔뻔함까지 보여준다. 나는 스티르코프가 찰스 부코스키의 또 다른 분신으로 생각한다. 그를 가두고 고문하는 간수는 그가 혐오하는 세상이나 그 세상 속 인간들이다. 스티르코프는 달콤한 노래를 틀고 꽃병에 날달걀 여섯 개와 한 파운드의 고기를 넣고 자위하는 나사 빠진 인간이다. 그를 심문하는 간수는 시인을 고문하라 말하고 그의 꽃병을 빼앗은 다음 날달걀 여섯개와 한 파운드의 고기를 준비한다.

 

이 짤막한 이야기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작가의 유머감각뿐만은 아니다. 이 글은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보여준다. 그에게 삶의 가치나 사랑은 어떤 진리의 영역에 있지 않다. 우리가 철석같이 믿고 있는 고귀한 꽃병에 날달걀 여섯개와 한 파운드의 고기를 섞은 것뿐일지도 모른다. 그런 것들을 쫓는 것은 고귀한 일이라기보다 꽃병과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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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괴팍한 글의 마지막 문장은 더 가관이다. "밖에서 세상은 이가 득실거리는 개가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아름다운 레몬 나무에 오줌을 누는 듯 흘러가고 있다." 찰스 부코스키는 하나의 농담처럼 이 단편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이 마지막 문장에서는 아이러니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시궁창 같은 세상이 굴러가는 방식은 추잡하기 짝이 없지만, 반짝이는 아름다운 레몬 나무의 색과 더러운 개가 누는 황금빛 오줌은 이상하리만큼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찰스 부코스키는 이 글은 맥주 한 병 끼고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에 타이핑해서 자유로운 마음으로 완성했다고 한다. 그의 말대로 이 책의 형식은 일관적이지 않다. 처음에는 찰스 부코스키 본인의 자서전이라 생각하고 연속된 글을 읽듯이 읽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의 각 섹션에 대한 구분은 명확하지 않다. 주인공을 부르는 이름이 다양하든 점에서 단편 소설이 섞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별한 논리 없이 머리가 깨지고, 동성 섹스를 하고, 뚱뚱한 여자 창녀와 뜨거운 밤을 보내는 이야기가 뒤죽박죽 섞여 있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에서 찰스 부코스키의 시선이 유지된다. 글은 뚜렷한 구성없이 자유롭게 전개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 책을 해석하기보다는, 즐기는 마음으로 읽었다. 하나하나 해석하고 이해하려고 하면 이 책은 너무 어렵다.

 

조금 정신을 놓고 보면 이 책은 무진장 재밌다. 그는 숭고한 가치를 따르는 것에 입을 비죽 내밀고,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 제목대로 이 책은 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무언가 대단한 것을 하는 것처럼 꾸밈으로써 자신의 결여를 허겁지겁 숨기는 사람들보다 진실하다.

 

이 작가가 가진 매력을 잘 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이 참 안타깝다. 떠나기 아쉬워 그가 명언이라도 되는 것처럼 써내려나 간 문장을 이 아래 써놓음으로써 이 작가의 괴팍한 매력을 전달하려고 한다. 그는 이틀 동안 술을 마시며 셔츠 마분지에 아래와 같은 글을 써내려갔다. 이런 방식으로나마 그의 유쾌함과 날카로운 시선을 느꼈으면 좋겠다.

 

 

고통이 없다는 것은 감각이 사라졌다는 말이다.

우리가 느끼는 기쁨은 전부 악마와 거래한 것이다.

 

예술과 인생의 차이는

예술이 더 견딜만 하다는 것이다.

 

죽은 그리스 신을 따르느니

살아 있는 백수의 말을 듣겠다.

 

섹스는 노래를 부르며

죽음의 엉덩이를 걷어차는 것이다.

 

균형이 제대로 잡힌 사람이란 곧 미치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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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

NOTES OF A DIRTY OLD MAN

 

 

분류

에세이 / 외국에세이

미국에세이, 문학 / 세계문학 / 미국문학

 

지은이

찰스 부코스키(Charles Bukowski)

 

옮긴이

공민희

 

출판사

도서출판 잔

 

발행일

2020년 10월 23일

 

페이지

304쪽

 

정가

14,200원

 

ISBN

979-11-90234-09-2 03840

 

 

[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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