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예술이 아니라 테러입니다 [문화 전반]

글 입력 2023.12.29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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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중순,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기상천외한 낙서가 등장했다. 발견되어서는 절대 안 될 곳에서 발견된 그 낙서는 첫 번째 시도로 끝나지 않았다. 16일 새벽, 경복궁 담벼락에 영상 스트리밍 사이트를 홍보하는 문구가 스프레이로 크게 적혔다. 바로 다음날 그 옆자리에는 특정 가수와 앨범 이름이 적힌 낙서가 발견되었다. 첫 사건의 모방범이 벌인 일이었다.

 

범인은 범행 하루 만인 18일 경찰서에 자진 출석해 조사받았다. 범행 동기에 대한 그의 대답은 사건 자체보다 더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문화재에 낙서하는 행위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말하며 조사 이후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전 예술을 한 것뿐”, “스펠링 틀린 건 좀 부끄럽다, 하트를 검은색으로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지만 ‘예술에선 틀린 것도 진실이다’라는 말처럼 오히려 한 번 꼬았다고 볼 수도 있겠다”라는 내용의 글이었다. 범죄에 대한 반성은커녕 당당한 태도로 예술을 논하는 모습에 사람들은 경악했다.

 

그가 모방했다고 주장한 예술은 미국 아티스트 그룹 ‘미스치프’의 사회 비판적 활동이다. 미스치프는 지배 계층이나 거대 자본과 같은 권력층을 겨냥한 풍자처럼 동시대의 사회 문제를 맹렬히 비판하기로 유명하다. 아주 작은 크기로 만든 명품 브랜드 가방을 약 8,400만 원에 판매하며 허울뿐인 명품 브랜드의 허상을 비꼬거나, 실제 포장 상자 크기만 한 시리얼 한 조각을 만들며 현대인의 과식 행태를 꼬집기도 했다.

 

경복궁 담벼락 낙서 사건의 범인은 미스치프와 같은 예술가가 될 수 있을까. 답은 당연하게도 ‘아니오’다. 전문가들은 이 테러를 “예술의 범주 안에서 논의할 수 있는 일 자체가 아니다”라며 ‘예술 반달리즘’으로 간주했다.

 

 

경복궁1.jpg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예술 반달리즘이란 문화유산이나 예술, 공공시설, 자연 경관 등을 파괴하거나 훼손하는 행위이다. 반달리즘은 5세기 중엽 로마를 침략한 아프리카 반달족의 야만적 파괴・약탈 행위를 뜻하는데, 예술품에 대한 반달리즘적 행위와 구분하기 위해 앞선 경복궁 사건과 같은 사례를 ‘예술 반달리즘’이라 부른다.

 

반달리즘은 역사적으로 빈번하게 일어났다. 사상 통제를 위한 고대 진나라의 분서갱유부터 2001년 탈레반 정권의 ‘바미안 석불 폭파 사건’까지 의도적인 테러 행위는 국가와 주체를 가리지 않고 벌어진다. 한국인에게는 2008년 일어난 ‘숭례문 방화 사건’이 가장 익숙한 사례일 것이다.

 

범인은 주거지 재건축 보상을 충분히 받지 못했으며 관련 민사소송에서 패소해 벌금을 내게 되었다는 이유로 억울한 심정을 표출하고자 홧김에 불을 질렀다. 그렇게 대한민국 국보 1호는 한순간에 풀썩 무너져 내렸다. 이후 복원되었지만 당시 국민들이 입은 충격은 쉽게 회복되지 못했다.

 

예술품을 대상으로 하는 예술 반달리즘 역시 다양한 이유로 자행된다. 대표적인 피해 작품으로는 모나리자가 있다. 1956년 프랑스인이 산성 물질을 뿌리고 같은 해 볼리비아인이 돌을 던져 모나리자의 왼쪽 팔꿈치가 색을 잃고 캔버스는 손상되었다.

 

1974년에는 박물관의 장애인 정책에 반기를 든 장애인이 도쿄 국립 박물관에 전시 중인 모나리자에 빨간 페인트를 뿌렸다. 2009년 프랑스 시민권을 거절당해 화가 난 러시아인이 작품에 찻잔을 던지기도 했다. 다행히 초창기 피해 이후 방탄유리를 씌워 놓아 추가 손상을 막을 수 있었다.

 

반달리즘은 재고의 여지없이 명백한 범죄 행위다. 경복궁 낙서 테러의 경우 문화재보호법 위반과 더불어 재물손괴죄로 범인은 실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법원은 증거인멸 우려로 2차 모방범에 구속 영장을 발부했다.

 

본 사건과 같은 반달리즘 행위를 막을 방법이 있을까? 개인의 우발적 행동을 예측하고 즉각 대응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만 문화재 등 시민의 접근이 용이하지만 보호 필요성이 높은 시설에 대한 치밀한 보호 체계가 있다면 큰 피해를 막을 수 있다.

 

반달리즘의 피해 대상은 해당 작품이나 시설에 한정되지 않는다.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사랑하는 시민, 문화재의 위상과 존재 사실에 자부심을 갖는 국민을 포함하는 테러 행위다. 예술은 자유로운 자아와 사상을 표현하는 좋은 도구지만, 그것이 범죄를 용인하는 수단이라는 뜻은 아니다. 이제는 예술과 위례를 구분할 때다.

 

 

참고자료

박성호. 「국가에 의한 ‘예술 반달리즘’과 예술가의 인격권 침해 – 대법원 2015. 8. 27. 선고 2012다204587 판결의 평석을 중심으로 -」 『계간 저작권』 28.4(2015), 37~62쪽.

이수아. 「[아트레터]#13 훼손되고 파괴된 예술 작품들」, 『소셜밸류』, 2021. 04. 05.

이혜원. 「경복궁 낙서 모방범 구속송치…“아직도 예술이라 생각?” 묻자 침묵」, 『동아일보』, 2023. 12. 28.

이혜미. 「”미스치프처럼 장난쳤다는 경복궁 낙서범이여, 예술은 그런 게 아니다”」, 『한국일보』, 2023. 12. 27.

임동근. 「억장 무너졌던 ‘국보1호’ 숭례문 화재 붕괴」, 『연합뉴스』, 2020. 02. 08.

정태우. 「문화재 훼손이 예술? ‘반달리즘(Vandalism)’」, 『YTN』, 2023.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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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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