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신문에는 부고가 실리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다.

마음이 자꾸 겨울이 된다
글 입력 2023.11.12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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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브생로랑에게 中

 

 

신문에는 부고가 실리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다.


당직을 하면서 제일 많이 처리하는 기사도 대부분 부고다. 누군가의 죽음을 알리기 위한 기사는 생각보다 간결하다. 어느 날 세상을 떴으며 빈소는 어디이며 며칠이 발인이라는 간결한 내용이 들어간다. 유명인이나 기업 총수의 경우 부고에는 각주가 달린다. 그의 삶은 어떠했고 어떠한 업적을 남겼으며 어떤 사람으로 살아갔다는 남은 자들이 요약한 각주.


부고에는 별세 날짜, 빈소, 발인, 연락처가 게시된다. 고인의 이름 뒤로는 가족관계가 쭉 나열되어 있다.


부고를 하나의 기사 형태로 풀어쓰는 경우도 있다. 고위공직자 출신이거나 연예인, 사람들이 궁금해할 만한 인물에 대해서는 부고에도 서사가 덧씌워진다. 그 사람이 생전 어떤 사람이었고, 무슨 업적이 있었고 어떠한 경위로 사망에 이르게 됐는지도 설명해 주는 일종의 전기라고 보면 된다. 


부고 기사에는 떠난 사람의 찬란한 삶만 있는 건 아니다. 과거에 어떠한 잘못을 했는지 어떠한 실수를 했는지도 돌이켜지는 경우가 많다. 고인을 떠올릴 수 있는 유쾌한 일들도, 불쾌한 일들도 전부 부고 기사에 들어갈 수 있다.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돌이키든 그것은 고인의 몫은 아니다. 고인은 말이 없으므로.


옛날에야 신문에 난 부고를 통해 연락이 끊겼던 과거의 사람과 연이 닿거나 소식을 듣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요즘은 장례식장에서 보내는 부고 알림 서비스도 있고, 직장에서도 알아서 부고를 공지해 주니 예전처럼 신문 기사를 보고 누군가의 부재를 실감하는 일은 드물 것이다. 


알던 사람의 죽음은 이제 너무도 빠르게 문자로, 카톡으로 전해지니까. 그래도 부고 기사를 쓸 땐 몸에 힘이 들어간다. 누군가의 마지막 이야기를 서툴게 쓰고 싶지 않아서다. 연락처가 틀리지 않았는지, 빈소를 올바르게 적었는지, 내가 당직을 선 날 놓친 부고는 없는지 꼼꼼하게 체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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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은 내가 모르는 사람의 부고였지만 작년에는 한참 들여다보고 슬퍼해야 했던 소식이 하나 있었다. 겨울이었다. 나는 하고 있던 기자 생활에 대한 물음표를 지우기 위해 이직과 신입 지원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주요 뉴스를 정리하던 눈에 밟힌 부고는 가까운 시기에 받았던 어떤 회사의 탈락 소식보다 마음이 아렸다. 


조세희 작가의 작고 소식이었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공'이 필요 없는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는데 먼저 가버린 사람의 뒤를 보면서 입이 썼다. 그가 그리던 1970년대의 불평등과 2023년의 불평등이 크게 다를 것 없다는 것에 대한 죄스러움도 존재했다. 조세희 작가의 마지막을 기리는 기사는 대부분 애틋함과 안타까움, 고통스러움, 후회 등이 녹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각별한 추도사를 보면서 자주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이후에 다행인지 이직을 했고, 이전보다는 더 바빠진 삶을 살고 있다. 무슨 기사를 썼는지도 아득한 일주일을 보내고 나면 가끔 조세희 작가의 부고 기사를 처음 봤던 날이 생각난다. 삶의 무게가 가득했던 한 사람의 마지막을 봤을 때 내가 어떤 감정을 느꼈던가. 부끄럽게도 나는 그때와 지금 크게 달라지지 못한 삶을 살고 있고, 세상도 크게 달라진 바가 없다.


나는 여전히 당직엔 부고 기사를 많이 쓰고 일희일비하는 삶을 산다.


누구의 아빠, 누구의 엄마, 누구의 손주, 누구의 배우자, 전 직장과 현 직장. 누군가가 살아온 인생의 큼지막한 꼬리표가 달린 부고를 몇 분 안에 써 내려갈 때면 언제 내 부고는 어떻게 쓰일까 궁금해진다. 내 부고보다 기자로서의 삶에 대한 부고를 먼저 던지게 될까. 최근에는 그 가능성도 높게 사고 있다. 


얼마 전엔 기자 동기들과 이 업계는 '좋은 사람들만 떠난다'라고 이야기하고는 씁쓸해했다. 최근에 사람이 힘들어 일을 쉬거나 그만두는 동기나 선배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어딜 가나 사람은 있으니, 이것조차 못 버틴 내가 실패자 같아. 약속이라도 한 마냥 공통적으로 이렇게 말하는데 그때마다 소리를 지르며 그들의 입을 막고 싶다. 그 말만은 하지 말기를, 그러면서. 


왜 떠난 그들이 자신을 실패자라고 지칭했는지 그 경위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어디로 옮겼는지, 어떻게 옮겼는지에 따라 기자로서의 가치를 매기는 시장이 분명 있기에, 무엇인가를 이겨내지 못하고 쉰다는 것을 어떻게 포장할지 막막하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었다. 대부분 이들은 휴직 끝에 그만뒀다. 이는 비단 기자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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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로서의 부고는 직업에 대한 애정이 식었을 때, 더 이상 한 글자도 쓰기 싫을 때, 어떤 목표점도 없어질 때, 이 직업이 싫어질 때... 대체 언제일까. 아직도 답은 내지 못했다. 


당직 중이던 날 기자를 그만둔다면 실릴 수 있을 나의 부고도 슬쩍 적어봤다.


▲조수빈(OOO 기자) 씨 기자상(喪)=전직 O월 O일 혹은 퇴사 O월 O일.


짧다. 20대의 반을 쏟았는데 정리는 이렇게 짧다.


기자가 끝나는 날 나는 다른 직업이 생기거나, 무작정 그만뒀거나 둘 중 하나는 선택했겠지. 어떠한 군더더기도 없이 그만둘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나는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를 물으면 옛날보단 욕심이 옅어지고 미래가 흐려져서 괄호 안의 내 직업이 기자가 될지, 영 다른 직업이 될지는 확신할 수 없다.


누군가가 내 (직업) 부고 기사를 써준다면 부탁하고 싶은 말은 있다. 늘 용감했고 기특했던 사람. 매번 열정적으로 빛나며 사랑을 외치던 사람이었다. 아꼈고 안타까웠던 일과 드디어 헤어지다. 내 사회생활의 전부를 차지한 애틋했던 직업이었지만 요새는 끝이 보이는 것 같아 마음이 자꾸 겨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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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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