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삶을 사랑해야 한다 [도서]

La vie devant soi,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글 입력 2020.11.14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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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한동안 베스트셀러를 차지했던 어느 에세이 집의 이름에서, 이보다 내 생의 이유를 잘 표현하는 글귀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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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나는 먹고 싶은 게 많다. 엽기 떡볶이, 인도 커리, 뵈프 부르기뇽, 슈바이 학센, 크림 브륄레, 핫도그, 맛초킹……맛있는 음식을 보면 내 눈은 1.5배가 된다. 가고 싶은 곳도 많다. 아바이 마을, 경주 황리단 길, 제주도, 원주 뮤지엄 산 등등 색다른 분위기, 새로운 생각은 반복적인 일상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생이란 원래 힘들고, 지치는 일들의 연속이기 마련이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생을 재미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자기 앞의 생. 책의 제목부터 마음에 들었다. 생은 누구에게나 다른 분위기와 느낌, 의미를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계에는 수많은 세계관, 가치관이 존재한다. 개인 한 명 한 명의 경험을 존중하고, 사람이라는 틀로 일반화하지 않는 인상을 주어, 마음에 들었다.

 

자기 앞의 생은 프랑스 원어로는 la vie devant soi로 여생, 앞으로 남은 생을 의미한다. 프랑스 원어 제목이 한국 제목에 비해 더희망적인 느낌을 준다. 자기 앞의 생은 많은 생을 경험하고, 이를 회고하는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앞으로 남은 생은 미래를 향한 희망과 다짐을 표현한다. 이 책은 두 가지 의미를 모두 관통한다.


로자는 창녀의 아이들을 돌보아 주는 유태인 여성이다. 창녀는 아이를 기를 수 없기 때문에 숨겨져서 다른 사람의 손에 키워졌다. 발각되면 빈민 구제소에 가는 끔찍한 불행이 닥칠 수 있기 때문에 그녀는 사실을 숨길 각종 위조 서류들을 준비해 놓았다. 로자 또한 젊은 시절, 엉덩이로 벌어 먹고 살던 창녀였다.

 

이 소설의 주인공 모하메드는 로자 아줌마의 손에서 크는 아이들 중 한 명이였다. 많은 아이들이 입양되었지만 모하메드는 계속 로자 아줌마의 집에 남았다. 서류가 잘못되어, 모하메드는 학교에 가지 못한다. 대신 그는 알제리에서 온 하밀 할아버지에게 글과 교리를 배운다. 모하메드 또한 아랍인이고, 맡긴 엄마가 회교도로 길러 달라고 했기 때문에, 하밀 할아버지의 가르침은 그에게 유익한 것이었다. 모하메드는 감수성이 풍부하고 예민한 아이였다. 사랑과 애정, 얼굴도 모르는 부모의 존재를 그리워했다. 그는 누군가의 관심과 애정을 절실히 원했다.

 

‘그녀가 차문을 잠그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처음에 차 안에서 무언가를 훔쳐서 그녀의 기억을 되살려 볼까도 생각했지만 내 생일이라서 울적하기도 하고, 내가 왜 이런 일에 집착해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 나는 달랑 혼자 인데, 세상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다. 내가 도둑질을 해봤자 도둑이 나라는 것을 그녀가 알 리가 없다. 나는 그녀의 눈에 띄고 싶었다.’

 

모하메드가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만큼, 로자 아줌마와 하밀 할아버지는 점점 늙어갔다. 하밀 할아버지는 치매에 걸려 과거의 시간에 사는 빈도수가 점점 늘어났다. 습관적으로 모하메드에게 말하던, 그의 아름다운 추억조차도,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져 갔다. 로자 아줌마는 점점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몸 이곳저곳이 모두 고장 났고, 뇌 혈관이 좁아져서 종종 식물 인간 상태가 되었다. 아줌마의 상태가 안 좋아질수록, 이웃들은 그녀에게 친절을 베푼다. 모하메드는 로자 아줌마의 더러운 모습, 추잡한 모습, 역겨운 모습을 모두 다 보고, 괴로워하지만 로자 아줌마를 떠나지 않는다. 로자 아줌마와 모하메드 모두 서로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모하메드의 아버지라고 주장하는 카디르 유세프가 나타난다. 그는 질투심에 아내를 살해하고, 정신병원에 갇혔다가, 풀려 나와 자신의 아들을 찾으려 했다. 한심한 작자였다. 불리한 사실, 아내 살해에 대해서는 자기 중심적인 변명을 늘어 놓는다. 원래 피해 망상이 심했고, 창녀인 모하메드의 어머니, 아이샤가 하루에 20번도 넘게 관계를 했다며 살인을 정당화 하고자 한다.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살인자이니, 아들을 데려갈 수 없겠다고 로자 아줌마가 말하자 그는 의사로부터 퇴원 처방을 받았으니 괜찮다고 말한다. 로자 아줌마는 끝까지 유태인인 모세를 모하메드라고 우긴다.

 

‘원래대로의 내 아들을 돌려주세요. 유태인은 싫어요. 온전한 회교도인 내 아들을 돌려 달라고요!’ 카디르 유세프는 모순적이고, 비열한 작자였다. 로자 아줌마와 모하메드는 계속 그를 놀린다. 심장이 안 좋았던 카디르는 심장 마비로 죽게 된다. 이웃들의 도움을 받아, 죽은 카디르를 밖으로 내 보낸다. 이 사건으로, 모하메드는 갑자기 4살을 더 먹게 된다. 서류상의 위조된 나이는 10살이였지만, 그의 실제 나이는 14살이었다.

 

로자 아줌마의 건강은 일시적으로 좋아졌지만, 대체적으로 나빠졌다. 의식을 잃는 일이 점점 잦아졌고, 기본적인 일상생활은 점점 어려워졌다. 의사는 로자 아줌마가 계속 병원에서 지내야 한다고 말했다. 로자 아줌마는 병원에 가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고통 속에서 더 이상 생을 견딜 수 없다고, 의미 없는 짓은 하고 싶지 않다고 누누히 말했다.

 

‘나는 식물인간으로 세계 기록을 세운 미국인이 예수그리스도보다도 더 심한 고행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십자가에 십칠 년여를 매달려 있었던 셈이니까. 더 이상 살아갈 능력도 없고, 살고 싶지도 않는 사람의 목구멍에 억지로 생을 처넣는 것보다 더 구역질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계속 핑계를 대면서 피해 왔지만,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왔다. 모하메드는 돈 많은 로자 아줌마의 친척이 와서 그녀를 이스라엘로 데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당연히 친척은 오지 않았고, 로자 아줌마는 오래 전부터 자신이 준비해 온 비밀공간, 유태인 동굴에 들어간다. 그녀는 마지막 힘을 발휘해 동굴로 들어갔고, 원하던 죽음을 맞이한다. 마흐무드는 3주간 그녀의 시신에 독한 향수를 뿌려 대며 로자 아줌마의 곁에 있고자 한다. 부패하는 냄새가 진동하면서, 아파트 거주민들이 시신을 찾아낸다. 마흐무드는 나딘, 라몽의 집으로 입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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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과연 아름다운 것일까? 내 대답은 아니오 이다.


삶을 많이 겪지 않은 아이들은 천진난만함과 순수함의 대상으로, 긍정적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삶을 겪을 대로 겪은 노인들은 어렵고, 까다로운 부정적인 대상으로 여겨진다.

 

'열다섯 살 때의 로자 아줌마는 아름다운 다갈색 머리를 하고 마치 앞날이 행복하기만 하리라는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열다섯 살의 그녀와 지금의 그녀를 비교하다 보면 속이 상해서 배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생이 그녀를 파괴한 것이다.'

 

삶은 이런 저런 사건들을 통해 많은 생채기를 남긴다. 그 생채기는 불행, 행운, 성공, 실패 등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려 진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매일매일이 같은 평면적 인물이 아니다. 경험에 따라 계속 달라지는 입체적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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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밀 할아버지가 노망이 들기 전에 한 말이 맞는 것 같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다.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나는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고, 계속 그녀가 그리울 것이다. 하지만 이 집 아이들이 조르니 당분간은 함께 있고 싶다. 나딘 아줌마는 내게 세상을 거꾸로 돌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중략) 라몽 의사 아저씨는 내 우산 아르튀르를 찾으러 내가 있던 곳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감정을 쏟을 가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르튀르를 필요로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고, 그래서 내가 몹시 걱정했기 때문이다. 사랑해야 한다.’

 

소설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찬 기운이 느껴진다. 사랑해야 한다 라는 마지막 문장이 특히 인상적이다.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람이던, 취미던, 사물이던 사랑하는 대상이 존재해야 한다. 그래야 미래를 꿈꾸고, 그 목표를 위해 노력할 수 있다. 애착과 사랑은 내 삶의 이유다. 또한,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삶의 이유이기도 하다.

 

 

 

[박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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