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언니라고 불러도 될까요? [음악과 삶]

글 입력 2020.11.07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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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년 1월 1일부터 힘듦을 자처한다. 바로 새해 목표 -10kg를 세우고서 말이다! 치열하게 체지방을 빼고 근육을 늘려 거울 앞에서 미소 짓는 나를 상상한다. 결과만 생각하면 이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인가.

 

하지만 그 시간은 문지방에 새끼발가락을 찍힌 것만큼이나 고통스럽다. 아니, 다이어트는 그 짜릿한 고통을 매일 겪어야 한다. 달콤함에 천상을 오가는 바닐라 라떼와 달큰한 양념치킨의 맛을 한동안 잊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까맣게 잊는다. 자의적으로 ‘과정 지우기’라는 과오를 저지르는 것이다. 그것도 매년.

 

미디어도 ‘과정 지우기’에 동참했다. 한 유명 헬스케어 업체는 홍보한다.

 

<유명 연예인 A 씨, 3개월에 30kg 감량!>

 

우리는 비포에프터 사진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하지만 그들은 이상만 보여준다. 당사자가 치킨, 족발을 얼마나 참았는지, 러닝머신과 스쿼트로 얼마나 땀을 흘렸는지 대중은 체감하지 못한다. 철저하게 가려놓은 과정에 대중은 홀릴 수밖에 없다. 이에 부작용이 따른다.


- 연예인이니깐~

 

화려함을 강조하는 직업적 특성으로 인해 그들의 피땀눈물이 과소평가 된다. 천만 관객 배우가 되기까지, 1위 가수가 되기까지, 한 분야의 최고가 되기까지 얼마나 치열한 과정을 거쳤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주어를 생략해왔지만 내가 그렇게 생각했다. 따라서 넷플릭스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를 시청하고 약간은 창피했다.

 

연예인도 고통을 느끼는 인간임을, 그들도 결과를 위해 기나긴 마라톤을 치러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해당 콘텐츠는 성찰의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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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핑크 멤버 넷의 연습생 기간은 총 21년이다. (출처: 넷플릭스)

 

 

넷플릭스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는 화려해 보이기만 하는 KPOP 아티스트 블랙핑크의 명과 암을 보여주는 콘텐츠라고 홍보한다. 하지만 나는 삶을 대하는 자세를 보여주는 콘텐츠라고 생각한다.

 

21년. 호주, 한국, 태국에서 모인 소녀들이 21년이라는 시간을 버텼다. 오로지 가수라는 꿈 때문이었다. 그들은 13일을 폐쇄된 공간에서 트레이닝 받고 단 하루를 쉬었다. 육체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져갔다. 매일 누군가에게 평가받고 등급을 받았다. 우정을 쌓기에도 모자란 10대의 시간을 또래와 경쟁하며 보낸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한 것이 있었다.


 

“면전에서 이 일을 할 실력이 부족하단 말을 들었어요.”

 

- 블랙핑크 제니

 

 

멤버 제니는 꿈을 이루기 위한 역량이, 깜냥이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 나의 목표를 누군가가 ‘넌 안돼’라고 일방적으로 재단하는 상황까지 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극적인 말과 시간 위에서 21년의 과정을 버텼다. 가수가 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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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하루 14시간을 투자한 적이 있는가? (출처: 넷플릭스)

 

 

하지만 불투명한 미래에 불안하지는 않았을까. ‘내가 정말 가수가 될 상이 아닌가?’, ‘가수가 되지 못한다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은 전혀 없었을까.

 

당시 YG엔터테인먼트는 다인원 걸그룹을 기획했기에 20-30명의 여자 연습생이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변했고, 같이 연습하던 친구들이 하나둘 떠났다. 바로 내가, 내일, 이 자리에 없을 수도 있는 상황을 그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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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는 독점이 아니다. 누구나 한번씩은 꿈꾼다. (출처: 넷플릭스)

 

 

그들도 인간이었다. 멤버 리사도 자신을 의심하는 시간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제니는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했고 지수는 힘들다고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로제는 매일 부모님에게 힘들다고 말했지만, ‘힘들면 집에 돌아와’라는 말이 제일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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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나를 온전히 쏟아 부어야 한다. (출처: 넷플릭스)

 

 

네 소녀는 블랙핑크가 되었다. 데뷔와 동시에 음악방송 1위, KPOP 아티스트 최초로 세계 최대 음악 축제로 꼽히는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에 섰다. 그들의 21년은 앞으로 아티스트 생활에 자양분이 될 것이다. 지수, 제니, 로제, 리사는 쓰디쓴 과정을 참았고 달콤한 결과를 맛봤다.

 

물론 이 콘텐츠로 KPOP 아티스트의 양산 시스템에 대해 알고자 한다면 아쉽다. 고발 프로그램이나 르포가 아니기에 기형적인 시스템을 순화했다. 하지만 메시지가 있다. 원하는 목표와 도달점에 가닿기 위해서는 치열한 과정을 인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치열함은 타인과의 경쟁만을 뜻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말하기도 한다. 그들은 태어나자마자 블랙핑크가 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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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스타트업> (출처 : CJ ENM)

 

 

tvn <스타트업>에서 눈물버튼을 자극하는 대사가 흘러나왔다.


 

“넌 코스모스야. 아직 봄이잖아. 찬찬히 기다리면, 가을에 가장 예쁘게 필거야. 그러니까 너무 초조해 하지마.“

 

- tvn <스타트업> 中

 

 

한낱 77억 인구 중 한 명인 내가 뭐라고 불특정 다수에게 위로를 건네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처럼 끝을 알 수 없는 취업준비를 하는 취준생, 꿈을 위해 달리는 사람들 그리고 어떠한 이유로 인생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 누군가에게 외치고 싶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활짝 핀 코스모스가 될 것이다. 누구에게나 ‘과정’은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말을 하고 싶다.


- 멋있으면 언니라던데, 블랙핑크 언니라고 불러도 될까요?

 

누군가에게 ‘언니’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목표가 하나 더 생겼다. 그리고 이 글은 최근 몇 년의 과정을 즐기지 못하고 힘들어한 나에게 보내는 글이기도 하다.

 

 

[신재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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