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성실한 나라에서 앨리스로 살기 [문화 전반]

성실하게 살면 저도 행복해질 수 있나요?
글 입력 2020.10.28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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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살아도 행복해 질 수 없는 세상.

단지, 행복해 지고 싶었어요.”

 

 

강렬한 문구를 앞세운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N포세대’라 불리는 각종 청년 세대의 담론과 불평등에 대한 담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영화이다.

 

영화 속 수남과 규영은 생존에 급급한 청년 세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회가 말하는 ‘정상성’을 위한 그들의 몸부림은 결코 해피엔딩을 향해 가지 못한다. 주인공인 수남과 규영은 거창한 꿈을 꾸지 않는다. 다만 다음에 태어날 자신들의 아기가 자신들의 가난을 대물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조그만 집을 사는 꿈을 꾼다.

 

결국 그들의 최대 바람은 “평범한 안정을 위한 분투”이며 “안정된 삶에 대한 소망” 일 뿐이다.

 

 

제가 아무리 꾸준히 일해도, 집값은 더 꾸준히 오르더라고요.. (중략) 아 조금만 더 하면 돼. 나만 열심히 하면 된다. 나만 하면 돼.

 

 

영화 속 수남은 남편의 바람이었던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한다. 그러나 계속해서 오르는 집값에 내 집 마련을 위한 노동은 쉴새 없이 이뤄지고 수남은 나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끊임 없이 되뇌인다. 손톱이 갈라지고 부르트도록 일을 해야만 달동네 옥탑의 작은 집을 겨우 살 수 있다.

 

고등학교를 다닐 적 특유의 성실함으로 14개의 자격증을 보유했던 수남의 성실함은 시대의 흐름에 맞추지 못했단 이유로 미련함이 된다. 그녀가 대학을 나왔더라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고졸 청년이었던 수남에게 그의 눈 앞에 닥친 모든 문제들 (주거문제와 고용의 문제)는 오직 그녀의 노력 부족으로 설명됐다.

 

그녀를 둘러싼 사회는 늘 그녀에게 희망이란 여지를 준다. 규영이 인공 와우의 수술로 더 잘 들을 수 있을것이란 희망, 집을 사면 그녀의 고생과 규영의 우울이 없어질 거란 희망, 동네가 재개발이 된다면 규영의 막대한 병원비를 갚을 수 있을 것이란 희망.

 

지금 신자유주의가 청년세대에게 적선하듯 던져주는 희망과 별반 다르지 않다. 노력하면 가질 수 있을 것이란 희망,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란 희망. 이러한 논리가 청년 세대에게 하여금 '자발적 노동'을 강요하고 사회의 불평등함을 교묘히 숨긴다. 그리고 결국 개인의 실패는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설명될 뿐, 이를 둘러싼 사회에 대한 불만 제기는 루저가 하는 이야기, 패배자의 구조 탓 결국 남의 탓이라 비아냥 받기 일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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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고 싶은 게 있으면 갖고 싶다고 말을 해야 한다, 이 말이지.
 

 

우리는 늘 쟁취해야 하는 환경에 놓여 있다. 앞서 말했듯 '노력 만능주의' 사회는 노력에 따라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욕심내지 않는 것 또한 중죄이다.

 

한때 유행했던 소확행 또한 무기력감에 빠져있는 청년 세대의 비관주의를 비판하며 작은 것이라도 욕망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자본주의에 투입된 신자유주의는 욕심내지 않는 것이 문제이고, 무기력에 빠져 돌아가지 않는 자본주의 체제를 걱정한다. 결국 무한히 돌아가는 경쟁사회가 그들의 자본력이 된다.

 

경쟁에 익숙해진 한국 사회 청년들은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조차 알지 못한채 도태되지 않기 위해 급급히 산다. 가장 개인적이어야 하는 sns 조차 자신의 셀링을 위한 공간으로 이용해야만 하는 청년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사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남에게 뒤쳐지지 않는 것, 남들보다 특출난 것이 중요한 화두이다.

 

결국 청년세대에게 불평등함은 고질적인 문제이다.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야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행복해져야 하는가. 잡히지 않을 것만 같은 행복은 희망이 아닌 고문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한국 사회 속 무기력에 빠져버린 청년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이지만, 자유주의의 방임으로 가장한 무한경쟁은 우리를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경쟁으로 끌어들인다.

 

과연 행복해질 수 없는 세상에서 행복을 바라는 것은 사치일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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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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