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작가란 문장을 만드는 사람 - 짧게 잘 쓰는 법

글 입력 2020.10.17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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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장을 길게 쓴다. 길게 쓰지 않고 싶지만 어쩔 수가 없다. 글을 쓰려면 생각을 해야 하고,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끊을 타이밍을 놓치고 만다. 그 두서없음은 문장에 그대로 드러나고... 글쓰기란 정말 할 게 못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다시 컴퓨터 앞에 앉는다.

 

나처럼 긴 문장과 뜻대로 써지지 않는 글에 골머리 썩는 이들을 위해 교유서가에서 새 책이 나왔다. 벌린 클링켄보그의 <짧게 잘 쓰는 법>. 원제는 'Several short sentences about writing'. 직역하면 '글쓰기에 관한 몇몇 짧은 문장들' 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두 가지 제목 다 책의 중심 내용이다. 이 책은 짧은 문장을 잘 쓰는 실용법을 알려주고, 글쓰기 행위 자체에 관한 통찰과 조언을 던진다. 짧고 지혜로운 단문으로.

 

 

 

글쓰기에 관한 짧은 문장들


 

 

모든 글쓰기는

세계를 언어로 바꿉니다.

 

27p

 

 

저자 벌린 클링켄보그는 미국의 작가이자 16년 간 <뉴욕타임스> 편집위원을 맡았다. 그가 20여년 간 하버드대를 포함한 미국 각 대학에서 글쓰기 강의를 하며 쌓은 경험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겼다. 클링켄보그는 글쓰기에 대한 기존 통념(영감, 독창성, 작가의 벽과 논리 전개에 대한 압박....)이 사실이 아니며 이런 통념들이 사람들의 글 쓰는 능력을 오히려 감퇴시킨다고 말한다. 주제의 참신함나 매력적인 캐릭터를 강조하는 많은 작법서들 사이에서 이 책은 잔잔하게 빛난다.

 

클링켄보그가 제일 강조하는 건 문장이다. 단순히 문장을 잘 써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접두사는 무조건 없애고 피동사는 쓰지 말고 같은 규칙 나열이 아니라, 그는 글쓰기의 본질이 문장과 문장이 암시하는 것들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지적이거나 권위 있는 문장, 글쓰기 규칙에 충실한 문장이 아닌 작가의 내적 울림에서 나오는 문장. 그 문장들의 연쇄가 한 편의 좋은 글을 만든다고 말이다.

 

우리가 받은 교육과 금지, 전제, 의무는 모두 의심의 대상이다. 좋은 글은 군더더기 없이 명료한 문장으로 말한다. 명료한 문장은 어쩔 수 없이 짧은 문장이다. 문장에 없어도 되는 단어들을 모두 찾아 없애고 나면 작가의 의도만 담은 짧고 깔끔한 문장이 남는다. 문장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작가의 삶이다. 문장을 넘어선 더 원대한 작가의 업적은 없다고 클링켄보그는 주장한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리듬감, 한 문장이 담고 있는 암시와 울림. 결국 독자를 사로잡는 건 논리 전개나, 지적 권위가 아니다. 문장 하나하나가 품고 있는 내적인 힘이다.

 

 

좋은 글은 표면적인 힘과 내부에 존재하는 긴장의 균형을 통해 가장 미세한 효과도 눈에 띄게 만듭니다. 이는 작가의 천재성이나 영감 혹은 의도에 대한 서술이 아닙니다. 모든 문장이 다른 모든 문장에 영향을 주는 방법에 관한 언급입니다. 작가가 자신의 문장에 갖는 주의력은 말한 것입니다. 작가의 문장들이 서로 귀를 기울이는 방식을 묘사한 것입니다.

 

56p

 

 

그 힘은 작가가 공예를 하듯 치밀하게 문장을 다듬으면서 나타난다. 클링켄버그는 다른 어떤 권위에도 기대지 말고 오직 내적의 힘에 의지해 글을 쓰라고 말한다. 요점, 논지, 순서 따위에 대한 집착은 작가를 문장에서 멀어지게 만들 뿐이다. "문장이 갖춰야 할 덕목과 가치는 그 문장 자체이며, 문장 밖으로 추출할 수 있는 의미가 아니라면?" 이런 책 속 질문을 읽다보면 내게 박혀있던 작법 통념들이 맑은 물에 씻겨가는 기분이 든다. 문장은 서로 의존해 불안정한 집을 만드는 게 아니라, 각 문장 하나하나가 존재 의미와 리듬감을 품고 글 속에서 자신을 증명한다. 문장이 어떻게, 누구에게 자신을 증명한다는 걸까? 그건 독자다.

 

저자가 문장만큼이나 글쓰기에 있어서 강조하는게 바로 독자의 권위다. 작가는 무엇보다도 좋은 독자여야 하고, 자신의 독서 경험에 바탕해 독자의 능력을 믿어야 한다. 클링켄버그는 작가가 독자를 믿지 못할 때, 논리 전개에 대한 강박이 생긴다고 말한다. '한줄 요약', 각 문단이 하나의 주제로 축약될 수 있다는 생각이 문장에서 생명력을 앗아간다. 독자는 작가가 자신의 의도와 주제와 요점을 하나하나 짚어줘야 할만큼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작가에게 필요한 건 무엇보다도 '주도면밀한 수동성'이다. 쓰고자 하는 욕망, 내면을 밖으로 쏟아내고자 하는 욕망을 뒤로 하고 독자에게 글의 운율과 의미를 맛볼 공간을 남기는 것. 이런 글을 위해선 무엇보다도 모든 문장을 의식적으로, 의도적으로 쓰고 다듬어야 한다.

 

 

모든 독자는 항상 둘입니다. 한 독자는 언어가 작동하는 방식에 예리한 직감을 가졌지만 문자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경향이 매우 강합니다. (...) 이런 독자는 여러분이 실수할 때마다 헛디딜 것입니다. 만약 두 방향으로 해석 가능한 길을 만났다면 매번 잘못된 길을 택할 거예요.

...

다른 독자는 교양 있고, 호기심 많고, 적응력이 뛰어나고, 지적이고, 편견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글이 명료하다면 어디든 여러분이 이끄는 대로 따라갈 것입니다. 모든 독자는 이 둘의 조합입니다. 둘 모두를 위해 쓰세요.

 

91p

 

 

명성을 위해서도 아니고 권위나 논리를 위해서도 아닌, 자신의 글을 읽을 독자를 위해 문장을 써라. 클링켄버그의 작법론은 간명하다. 무수한 글쓰기 스킬이나 방법론을 떠나 글쓰기 자체의 핵심에 가닿으라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명료하고 간결하게 할 것. 독자가 작가보다 더 대단한 존재임을 믿을 것. 이 책의 통찰은 그렇게 예리하면서도 다정하다. 독자로서 우리가 받는 감명을 되돌려 주는 게 작가의 일이다.

 

<짧게 글 쓰는 법>을 읽으면 내가 매번 빈 화면을 마주할 때면 드는 생각, 뭘 써야 하지? 내가 뭘 쓰고 있는거지? 내 말보다는 다른 권위 있는 사람들의 말을 빌려와야 하는 게 아닐까? 이 글쓰는 사람이라면 모두 겪는 어려움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글쓰기는 결국 파도에 몸을 맡기듯 그 어려움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발견한 것을 투명하고 솔직하게 써내는 수밖에 없다. 한 문장 한 문장을 짓고 연결하면서 말이다.


 

작가가 된다는 것은 자기에게 권위를 부여하는 행위의 연속입니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자신만이 스스로에게 권위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글을 잘 씀으로써, 끊임없는 발견을 통해 말입니다.

 

56p

 


[김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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