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대한민국에서 아파트란? '타인의 방'부터 '아파트 키즈'까지 [문화 전반]

글 입력 2020.10.07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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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다음날 오후쯤 한 여인이 이 방에 들어왔다. 그녀는 방안에 누군가가 침입한 흔적을 발견했다. 매우 놀라서 경찰을 부를까고도 생각했었지만, 놀란 가슴을 누르며 온 방안을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는데 틀림없이 그녀가 없는 새에 누군가가 들어온 것은 사실이긴 했지만 자세히 구석구석 살펴본 후에 잊어버린 것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자 안심해 버렸다.

 

그러나 그녀는 곧 잊어버린 것이 없는 대신 새로운 물건이 하나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물건은 그녀가 매우 좋아했던 것이었으므로 며칠 동안은 먼지도 털고 좀 뭣하긴 하지만 키스도 하긴 했었다. 허지만 나중엔 별 소용이 닿지 않는 물건임을 알아차렸고 싫증이 났으므로 그 물건을 다락 잡동사니 속에 처넣어 버렸다.

 

 

<타인의 방>은 1971년 최인호가 발표한 단편소설로 도시 생활 속 인간 소외 현상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온 ‘그’는 아내가 없는 집안을 둘러보다 집안의 일부가 되어 버린다.

 

 
그는 방금 거리에서 돌아왔다. 너무 피로해서 쓰러져 버릴 것 같았다. 그는 아파트 계단을 천천히 올라서 자기 방까지 왔다. 그는 운수 좋게도 방까지 오는 동안 아무도 만나지 못했었고 아파트 복도에도 사람은 없었다. 어디선가 시금치 끓이는 냄새가 나고 있었다. 그는 방문을 더듬어 문 앞에 프레스라고 쓰인 신문 투입구 안쪽의 초인종을 가볍게 두어 번 눌렀다.
 

 

최인호의 ‘타인의 방’이 쓰여진 1971년은 12~13층에 달하는 ‘여의도 시범아파트’가 완공되어, 아파트가 중산축이 선호하는 고급스러운 주거 유형으로 인식되던 시기였다. 그러면서 새롭게 떠오른 생활방식인 ‘아파트’가 문학 작품의 소재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작가의 눈에 아파트는 현대의 공간 그 자체로 보였던 것 같다. 자신의 집이지만 낯선 공간으로 느껴지는 ‘방’의 잡동사니가 되는 주인공을 모습을 통해 70년대 새롭게 떠오른 생활방식인 ‘아파트’를 묘사한다. ‘타인의 방’이라는 명칭에서 드러나듯 주인공이 자신의 '집'에서 느끼는 고독과 생경함을 표현하고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이웃과의 교류 단절을 그려내었다. 특히, 활동적이고 생명체처럼 묘사되는 사물과 딱딱한 잡동사니가 되어버리는 ‘나’의 대조를 통해 더 이상 행위의 주체가 아닌 객체로 전락한 현대인의 실상을 표현했다.

 


 

아파트의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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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전통적인 의미의 이 1) 여러 방을 아우르는 포용력과 여유를 지니고 2) 쉼(회복)과 소속감의 근원이 되며 3) 집단, 과거, 전통을 상징하는 반면, 으로 표상되는 아파트는 1) ‘나’ 혹은 ‘나의 가족’만을 포용할 수 있고 2) ‘나’에 속하지 않는 것에 대해 배타적으로 경계하며 3) 개인, 현대, 서구를 상징한다.

 

즉 아파트가 지닌 폐쇄성이 아파트를 집이 아니라 ‘방’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원인인 셈이다. 이러한 폐쇄성은 아파트 자체의 구조와 아파트를 전시하는 과정에서 강화된다.

 

우선 아파트가 대개 핵가족을 위해 설계되고 모델하우스 속 아파트가 오직 아파트 내부 공간을 강조하면서 아파트를 굉장히 좁은 공간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가치있는 아파트 만들기>에 따르면 모델하우스에서의 ‘환상’을 통해 심어진 인식은 아파트에서의 생활을 철저히 내부 공간 중심으로 축소해 현관문 바깥의 공용공간을 생활공간으로 편입시키지 않는 주택관을 형성하는 강력한 동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파트는 대개 세대>동>단지라는 위계적인 구조를 지닌다. 각 위계는 서로 다른 세대, 동, 단지와 분리되는 것을 강조하는데 그 과정에서 몇 겹의 단절이 발생하여 아파트 내부의 단절이 강화된다.

 

특히나 아파트 속 단절을 심화하는 이유는 ‘동질성’도 있다. 같은 공간 구조에서 거주하는 것은 동선과 가구 배치가 비슷하게 만든다. 그러다보니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경험의 동질화’가 발생한다. 대화와 소통의 기본 조건은 ‘다름’에서 시작한다고 지적한 바, 이러한 전제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서 아파트의 소통은 요원한 것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70년대 소설에서 지적한 단절의 ‘방’인 아파트는 현재까지 유효한 단절과 불통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삶의 장소가 되어 가는 아파트


 

먼저 공간(space)와 장소(place)를 구분해보겠다. 이푸 투안은 장소친밀함과 의미로 가득찬 구체적 장소이며, 정지, 안전, 애정 등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공간은 아직 인간의 경험과 의미가 투영되지 않은 세계로서, 장소보다 추상적이라 정리했다. 그리고 공간은 움직이며, 개방이며, 인간은 공간과 장소를 오가며 살아간다.

 

수많은 공간을 다니는 인간은 마음의 거처로 둘 장소가 필요하다. 특히 집은 인간이 사는 세계의 구체적인 중심이자 삶에 대한 궁극적인 신뢰를 의미한다. 다만 지금껏 살펴본 아파트는 장소로서 함량미달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국의 특수한 사회 경제적 맥락 속에서 아파트는 중산층과 고급 주거지 이미지를 획득했다. 서구식 생활양식과 입식 부엌, 상수도 시스템이 완비된 아파트는 구옥과 다른 주거지였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미지에 더해 재개발과 재건축과 부동산 시세가 만들어낸 아파트 불패 신화는 아파트에 대한 선망을 더욱 키웠다. 브랜드 아파트의 등장하며 아파트가 ‘명품’의 경지에 이르는 상황에 도달했다.

 

아파트 단지를 비판한 김덕영(2007)에 따르면 아파트 주거의 확산으로 인해 ‘집’이라는 공간의 문화적, 사회적 의미와 기능은 경제논리에 의해 철저하게 망각되어버렸다. <가치있는 아파트 만들기>에서는 본래 집은 근현대적 주체의 중요한 공간적 전제조건이며, 합리적이고 이차적 인간관계나 사회관계와는 다른, 정서적이고 일차적인 인간관계나 사회관계를 유지하는 장소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아파트에서는 인간의 정신이나 의식 또는 이성이 점점 거세되며,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개인들의 창조적 행위 역시 배제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러한 아파트의 ‘장소화’는 아파트 단지의 로컬리티 획득과 이어질 수밖에 없다. 아파트 단지의 건설과 개발이 도시 계획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아파트 단지는 그 자체로 정치와 권력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부동산에 얽힌 수많은 이해관계와, 아파트 단지가 제공하는 수 겹의 격리와 보호. 이러한 것을 허용하는 도시 계획은 실상 경계짓기를 옹호하는 도시 계획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경계짓기라는 기능을 담당하는 아파트에서 안식과 안정을 누리는 것은 어불성설로 들린다. 아파트가 보편화된 지금 경계짓기를 벗어나 ‘집’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아파트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와 역사다. 앞서 언급한 로컬리티의 획득이 바로 이러한 내용이다.

 

로컬리티는 특정 지역이 나타내는 장소성, 역사성, 권력성 등을 포함한 다양한 현상과 정치성의 총체를 의미한다. 아파트와 아파트 단지가 경제적 가치가 아닌 복합적인 기표로서 인식될 때 그곳에 사람들의 이야기가 즉 로컬리티가 만들어지고 누군가의 ‘동네’가 되어가는 것이다.


 

 

아파트 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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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아파트 키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아파트 키드는 생애주기의 많은 부분을 아파트에서 보낸 베이비 붐 세대의 자녀로, 2012년 통계청에 따르면 1979년에서 1992년 사이에 출생한 세대로 정의한다.

 

이들은 아파트가 단조로운 공간이 아니라 고향으로서의 애착 대상임을 선언한다. 이들은 오랜 기간 아파트에서 거주하며 이웃 주민에서 비롯되는 ‘고유의 정서’를 공유하면서 공동체 의식 형성했다. 기성세대가 아파트를 1) 비장소(non-place) 2) 정착과 기억의 저장소가 아닌 이동의 대상 3)투자와 재산, 사회경제적 계급의 상징으로 인식하는 데에 반해 아파트 키드는 1) 평범한 일상의 기반 2) 기념과 회상을 통해 아파트의 문화적 재현을 시도하고 3) 향수와 애착의 대상으로 여긴다.

 

지금 아파트는 특별한 공간이 아니다. 아파트는 여전히 소외와 단절한 공간이고 부동산의 뜨거운 감자다. 그러나 둔촌 주공 아파트 키드가 말한 '고유의 정서' 형성은 아파트의 장소화의 단서가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사적 공간(세대)과 공공 공간(복도, 현관 등)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에서 벗어난, 준-사적 공간과 준-공적 공간이라는 완충 지대를 형성함으로써 엄격한 경계를 약화할 수 있을 것이다. 외부 접촉을 허용한 공간을 통한 아파트(단지) 밖과의 소통을 늘리고 다양한 주거 구성을 통한 다름의 표현도 필요할 것이다.

 

새롭고 낯선 생활양식이었던 아파트가 당연해진 이 시기에 아파트의 의미도 그에 맞게 변해 가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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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박인석, <아파트 한국사회> 6부

발레리 줄레조, <아파트 공화국> 7장, 8장

이경재, <한국현대문학과 공간과 장소> 8장

임준하, <아파트 키즈의 아파트 단지에 대한 장소 애착과 기억 - 둔촌 주공아파트 사례를 중심으로>

정헌목, <가치있는 아파트 만들기>

최인호, <타인의 방>

 

 

[이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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