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보통에 가까워지려는 개인의 얼개를 톺다 - 영화 '프란시스 하'

도시인의 얼개
글 입력 2020.10.05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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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통의 삶


 

프란시스는 무용수다. 정확히 말하자면, 견습 무용수다. 정식 공연의 주연이나 조연급 인물로도 출연하지 못하는 처지다. 그녀의 자리는 언제나 ‘백업’과 같이, 일단 뒷전으로 밀려나는 역할. 뉴욕에서의 삶도 딱 그 정도였다. 누군가는 충분히 나이가 들었다고 평가하는 스물일곱. 이십 대의 후반. 슬슬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 자신의 일상을 나름대로 멋들어지게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적당히 활기찬 나이. 물론 잔인한 전제 조건이 붙어 있다. ‘안정적인’, ‘수입이 고정적인’, ‘장래가 썩 괜찮은’ 직업을 가지거나, 그것과 유사한 수준으로 소득을 얻을 수 있는 구조 안에 있어야 한다는.

 

기이한 일이다. 이 정도 나이라면 이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한다, 최소한 이렇게는 살아야 한다. 라는 규정은 보편적인 차원에서 주어지는데, 그 보편적인 조건에 자신을 끼워 맞춰야 하는 저마다의 개인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주어지지 않는다. 천차만별인 사람들에게 동일한 틀에 들어오길 요구하면서, 어떻게 들어올 것인지에 관한 가이드라인은 일절 없다. 각자도생. 알아서 살 길을 찾되, 알아서 사회의 정상성 안으로 힘껏 들어와라.

 

프란시스에게 주어진 뉴욕이라는 대도시도 그랬다. 견습 무용수로 살아가며 하루 밥벌이도 제대로 해내기 어려웠던 그녀에게 보통의 뉴요커라는 타이틀은 하늘에 달린 별처럼 아득한 종류의 것이었다. 보통의 뉴욕 사람들처럼 한 달 집세를 무난히 감당하면서도 금융, 법, 경영 등 전문적인 영역을 공부하거나 관련된 직업군에 종사하고. 값이 다소 나가는 레스토랑과 카페에서도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줄 아는. 그런 뉴요커의 삶에서 프란시스의 삶은 한참 멀어져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뉴욕은 낭만적이고 세련된 공간이기도 했다. 고층 빌딩이 길게 늘어서 있고, 도시 곳곳에 고급 물건들이 즐비하고. 예술 공연이 날마다 열리는. 반쪽과 같은 친구 소피와 늘상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매캐하지만 활기찬 세계. 프란시스가 서 있는 뉴욕은 그랬다. 그녀의 절친 소피와 함께 나날을 보냈던 뉴욕의 모든 시간들은 그런 형태였다. 그녀는 결코 보통의 삶을 살 수 없었지만, 자신만의 이상을 지키고자 노력하며 끈질기게 뉴욕을 버텨냈다. 그래서 프란시스의 얼굴에는 비록 불안정했지만 항상 미소가 어렸다. 멋쩍은 표정에 가까웠지만 분명한 미소였다. 집세를 내느라 생활고에 시달려도, 자신을 거지와 다름없는 처지로 구슬프게 비유하는 상황에서도, 그녀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유머러스함을 잃지 않았다. 그게 프란시스였다.

 

 

 

2. 가면을 써야 하는 삶


 

‘쿨한 척’ 이성과의 연애를 주제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을 때. 혹은 무용이라는 자신의 직업 종사 분야를 사람에게 털어놓을 때 프란시스는 과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너스레를 떨었다.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꾸준히 그랬다. 자기방어 기제라고 생각했다. 가면을 썼다고 생각했다. 진짜 보통의 뉴욕 사람들 앞에서 패배자나, 변두리의 존재로 얕보이지 않기 위해 그녀 자신이 펼치는 방어적 술수라고 여겼다. 특히 절친 소피와 그녀의 약혼자 패치와 안면이 있는, 전문직 종사자 혹은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 그랬다. 프란시스는 그들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사람에 가까웠으니 말이다.

 

변호사, 금융 전문가, 예술 전시 기획자 등. 직업적 전문성과 연봉, 사회적 지위까지 모든 게 상위권이었던 그들에 비해 프란시스는 당장 내일의 생계유지를 장담할 수 없는, 불안정투성이의 사람. 동거하던 두 남성 친구들의 지인으로부터 얼굴은 나이가 들어 보이는데, 정신 연령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는 일침을 듣는 사람. 그런 그녀에게는 가면이 절실할 것이리라 재단했다. 보통의 얼굴이 넘치는 뉴욕에서, 보통이 되기 위한 ‘척’의 가면마저 쓰지 않는다면 그녀가 어떻게 그 혹독한 도시에서 버틸 수 있겠냐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소피가 패치와 약혼이라는 진지한 관계를 맺고자 결심한 것을 들었을 때 프란시스의 표정을 보면서 더더욱 확신했다. 가면을 쓰고 뉴욕에서 살아가는 프란시스에게 유일한 안식처일 수 있었던 소피. 자신을 제일 잘 알고, 자신의 기분과 심정을 가장 옆에서 헤아려주는 존재.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트리거’에 붙들리지 않을 수 있도록 따뜻한 위로를 해주곤 했던, 어른스러운 친구. 소피의 부재는 곧 프란시스 자신의 인격성이 몰락함을 의미하기도 했다. 최소한의 인간으로 남을 수 있도록, 무용수로서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혹독한 뉴욕을 견딜 수 있도록 가장 가까이에서 자신을 지켜봤던 친구가 다른 남자와 삶을 꾸리기 위해 자신의 옆을 떠날 수도 있다니. 프란시스로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을 것이다.

 

 

 

3. 가면이라 부를 필요는 없을지도


 

그래서 그녀가 안쓰럽게 느껴졌지만, 영화 전반을 두고 볼 때 바로 이 요인이 영화를 전형적인 성장 스토리 작품으로 귀결되게 만들었던 주된 요인이라고 느끼기도 했다. 마지막에 결국 스승이 제안한 무용단 사무직원 자리를 승낙해, 무용수가 아닌 안무 창작자와 사무직 담당자로 활동하며 그제서야 보통의 삶에 한 발 다가간 프란시스를 보며 그렇게 느꼈다.

 

하지만 작품의 후반부에서, 여전히 소피를 자신의 친구라고 밝게 소개하는 프란시스를 보면서 그녀의 얼굴에 쓰인 건 가면이 아닌 다른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진부한 말이지만, 성숙이라는 표현이 제일 적합해 보인다. 제대로 된 직업을 얻고 난 후에 그런 아우라를 가지게 됐다는 말이 전혀 아니다. 영화가 처음 시작할 때부터 그녀가 계속, 센 척으로 표상되는 가면을 쓴 게 아니라 사실은 누구나의 얼굴에 드리운 그늘로부터 유일하게 자유로웠던 진정한 어른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판단이 잠깐이나마 머리를 스쳤다.

 

가면이라고 부를 필요는 없을지도 몰랐다. 모두가 자산과 집, 대출 등 고리타분하게 머리 아픈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동안 그녀만은 무용과 우정. 순간의 정념. 그리고 순간의 즐거움에 충실했다. 그녀의 동거인들도 마찬가지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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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무얼 말하고 싶었던 걸까. 보통의 저편에 자리한 프란시스의 성장기를 조명하고 싶었던 것인가. 그런 해석은 영화의 플롯을 지나치게 평면적으로 만든다. 나는 작품의 핵심이 오히려 프란시스를 둘러싼 주변부의 인물들의 캐릭터성에 있다고 생각했다. 소피의 경우만 봐도 그 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오히려 출판업에 종사하며 어른스러운 태도로 프란시스를 달래곤 했던 소피가, 실질적으로 어른에서 멀어진 존재가 아니었나.

 

술을 마시고 취한 채 패치와 말싸움을 벌이고, 금융권 회사의 도쿄 지사에 파견된 패치를 따라가고 싶지 않다며, 약혼을 깰 것이라 투정을 부리고. 프란시스와 달리, 자신이 살고 싶었던 동네에 다른 친구가 집을 구하자 그쪽으로 바로 이사를 가겠다는 발언을 그녀 앞에서 행하고. 출판업계에 몸을 담그며 세련된 도시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그녀였지만, 특유의 자기중심적이고 아이 같은 면모에서 완전히 탈출하지 못했음이 이런 대목들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이처럼 타인에게 조언자로서, 타인을 훈계하는 위치에 있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인물이 실제로는 누구보다 유아적인 인물이었다는 사실. 조언을 받았던 타인은 오히려 가장 당장의 삶에 충실한 인간이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 그 가능성이 영화의 깊이를 더하는 데에 커다란 역할을 했다. 아쉽기만 한 영화로 남지 않을 수 있는 단초를 그런대로 내게 줬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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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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