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의 상실 혹은 단절.’
이 책의 부제목을 읽고, 문득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의 삶이 궁금해졌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경각심이 생기면 나는 겪고 싶지 않은 상실과 단절을 피해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며 첫 장을 넘겼다.
책에서는 주인공이 여름학기 동안 글쓰기 강좌를 위해 아테네에 머무르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들려주고 있다. 주인공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게 사실 주인공인 작가 자신의 이야기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을 중심으로 놓고 읽어야 할지 감이 안 잡히는 게 사실이다.
이 뒤에 다른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지진 않을까 하면서 책장을 넘기지만 기대했던 그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책에서는 오직 작가가 만난 사람들이 작가에게 구구절절 늘여놓는 말 만이 적혀있다. 여러 명의 하소연을 몇 시간 동안 들은 느낌이랄까? 상상했던 소설과는 조금 달라서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런 점이 신선하고 새로웠다.
아테네 여정에서 만난 사람들이 작가에게 하는 각자의 스토리들은 모두 달랐고 서로 연관성도 없다. 하지만 이들의 공통적인 것은 첫째,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모두 상실과 단절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과 둘째, 그 이야기들이 모두 일방적인 한쪽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우리는 그 이야기들에 등장만 하는 다른 인물들의 입장은 들을 수 없다. 말하고 있는 사람이 하는 이야기가 전부다 진실이라고 믿을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이야기조차 하지 않는다면 무언가가 드러날 수 없게 된다. 참 아이러니하다.
이 이야기를 읽는 내내 든 생각은 ‘등장인물들이 깊게 외로워 보인다.’였다. 삶이 외로운 사람들은 그동안 터놓고 말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처음 만난 사람인 작가에게 함으로써 스스로 자신을 정의하고 어지러운 주변 생각들을 다시 정리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우리도 자기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질 때가 있지 않은가. 사실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은 책 속에서만 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였다. 이 소설을 읽는 우리들과 주변 사람들을 대변하는 존재들로 느껴졌다.
요즘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이 자신들의 속 이야기를 쉽게 내보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누군가 자신에게 속 이야기를 터놓는다는 것은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인정받는 일이기에 참 고맙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외로움과 어떤 채우고 싶은 공허함을 이야기를 듣는 내내 고스란히 전달받기 때문에 마음이 아프고 또 스스로 지칠 때도 있었다.
이 책을 읽다가 작가가 비행기 옆자리 남자가 이야기하는 동안 자신의 형태, 윤곽에 대해서 그려볼 수 있었다는 부분이 뇌리에 박혔다. 그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윤곽 자체가 텅 빈 것을 알아챘다. 그리고 사고 이후 처음으로 그녀 자신의 현재 모습을 인지할 수 있었다.
그동안 내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지쳤던 이유는, 채워지고 싶어 하는 내 윤곽의 외침을 무시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그저 ‘듣고만’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처음에 이 책의 부제목을 읽고, 문득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의 삶이 궁금해졌다고 했었다.
겪고 싶지 않은 상실과 단절을 생각하며 첫 장을 넘겼지만 이제 그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나는 앞으로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마주할 나의 자아와 윤곽들을 생각하며 이 책의 마지막 책장을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