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작별 [도서]

그러니까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가 인간인 건지.
글 입력 2020.09.27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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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의 소설 <작별>을 접했다. 제목만 봤을 때, 무엇에 대한 작별일까 하고 궁금했다. 아직 읽어보지 않은 소설 안엔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을까. 작가는 이 소설을 어떻게 전개해나갈까. 그렇게나 기대가 되었던 이유는 전에 읽은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소년이 온다》가 전부 인상적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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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소설은 벤치에 앉아 깜빡 잠들었다가 깨어난 그녀가 눈사람으로 변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이 소설은 갑자기 눈사람이 된 그녀의 하룻밤 동안의 이야기이다.

 

어느 겨울 저녁 그녀는 눈사람이 된다. 집 근처 벤치에서 애인 현수를 기다리다가 깜빡 잠에 들어 깨어나 보니 그녀의 주위엔 눈이 덮여있었다. 몸의 감각이 이상하다고 느낀 그녀는 휴대전화로 얼굴을 확인하게 되고, 자신이 눈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심장이 있는 자리만 따뜻하여 그곳에 물웅덩이가 고이는 느낌이 드는 그녀는 "이게 혹시 마지막인가"하고 생각하게 된다.

 

 

예전처럼 심장이 뛰고 있는 건 아니었다. 단지 그곳이 아직 미미하게 따뜻했다. 그 언저리의 눈이 녹아 약간의 물이 왼쪽 가슴 아래께에 고여 있었다. 정확히 무슨 일이 거기 서 일어나고 있는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조금씩 더 녹고 있는 건지, 반대로 심장의 중심까지 마저 얼어붙는 중인지 확실치 않았다. 어느 쪽이든 좋은 조짐은 아니었다.

이게 혹시 마지막인가.

그녀는 문득 의문했고, 살아오는 동안 두어 차례 같은 의문을 가졌던 순간들을 기억했다.

 

 

눈사람이 되었음에도 그녀는 덤덤하게 정류장으로 가 현수를 기다린다. 현수도 눈사람이 된 그녀를 보고 "정말이네요" 하고 덤덤하게 그녀의 상황을 받아들인다. 마치 독자가 소설에서 일어나는 이 기묘한 일을, 그녀가 눈사람이 된 일을 납득하는 것처럼 말이다.

 

같이 있지만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없기에, 그녀와 현수는 잠시 걷기로 한다. 잠시 걷다가 그녀는 장기간 실직 상태에 있는 일곱 살 연하 현수에게 돈을 주며 혼자 저녁을 해결하라고 권한다. 하지만 현수는 그녀의 제안을 거절한다. 그녀는 집에 혼자 있는 아들 윤이를 만나야 한다고 말하고, 이에 현수는 그녀를 집 앞까지 데려다주고 볼일이 끝나면 다시 만나기로 한다.

 

집 앞에 도착한 그녀는 현관 앞에서 중학생 아들인 윤이를 부른다. 갑자기 눈사람으로 변해버린 엄마를 본 윤이는 불안해한다. 그런 윤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그녀는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되고, 정 안 되면 거대한 냉장고에서 살면 된다는 등의 말을 한다. 윤이와 헤어지고 나서 그녀는 아파트 앞에 있는 천변에 앉아 부모님에게 전화해 안부를 묻는다. 그리고 사이가 멀어진 남동생에게 전화를 할까 말까 망설인다. 결국 남동생에게 전화하지 못한 그녀는 집 안 냉장고에 붙였던 유서를 떠올리며, 거기에 남동생에게 쓴 글을 생각한다.

 

다시 현수와 만난 그녀는 진눈깨비가 내리는 하늘 아래에서 현수와 마지막으로 키스한다. 그리고 점점 녹아가는 몸에 겉옷을 벗고서 어딘가로 이동한다. 그녀의 몸은 계속 녹아내리고, 그녀는 무엇을 돌아보는지 알지 못한 채 사력을 다해 뒤를 돌아보며 소설은 끝이 난다.

 

 

 

체념으로 보이는


 

그녀가 눈사람이 되었다는 설정은 독자를 소설 안으로 밀어 넣어 곧바로 그것을 납득하게 만든다. 독자가 납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마 체념한 듯 눈사람이 된 상황을 덤덤히 받아들이는 그녀의 모습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또한 그녀를 만난 현수도, 아들인 윤이 또한 살짝만 놀랄 뿐 눈사람으로 변한 그녀의 모습을 태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눈사람으로 변한 것쯤은 별거 아니라는 듯. 그렇게 소설은 담담히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천변에 앉아 냉장고에 붙여 놓았던 유서를 생각하는 그녀의 모습이 꼭 유서를 이제야 제대로 쓸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그녀가 눈사람이 되기 전부터 천천히 모든 사람들과 작별을 준비해왔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다. 작별을 준비해왔던 여러 시간이 지나 눈사람이 된 오늘날, 비로소 기회를 잡았다는 듯 한 명씩 떠나보내는 느낌이었다.

 

소설을 읽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눈사람이 된다면, 난 어떻게 했을까? 그녀처럼 부모님에게 통화를 해 안부를 묻고, 애인과 마지막 키스를 나누는 등, 마지막을 장식하려 했을까? 눈사람이 되고 여러 사람들과 작별을 하는 상황이, 나로서는 참 씁쓸하게 느껴진다.

 

 

내가 널 원망할 거라고 생각해왔을지 모르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야. 네가 윤이와 나에게서 멀어져가는 매 순간을 난 명백히 이해했어. 자신을 건설하기 위해 가깝고 어두운 이들에게서 등을 돌리는 사람의 용기를. 정말이야, 조금도 서운하지 않았어. 같은 방식으로 윤이가 나를 떠났다 해도 난 서슴없이 이해했을 거야. 다만 분명히 알 수 없는 건 이것뿐이야, 먼지투성이 창을 내다보는 것처럼, 아니, 얼음 낀 더러운 물 아랠 들여다보는 것처럼 말이야, 그러니까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가 인간인 건지.

 

 

소설을 읽고 든 또 다른 생각은 인간다운 게 무엇일까였다. 그녀가 남동생에게 하려던 말을, 끝내하지 못한 말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가 인간인 건지, 어떻게 살아야 인간인 건지, 어느 정도 포용해야 인간적이라 할 수 있으며, 또 아니라 할 수 있는 건지. 남동생에게 하려던 말을 끝내 삼키며 어두운 냇물을 내려다보고서, 피와 살과 내장과 근육이 있는 몸을 다시 갖고 싶지 않다고 하는 그녀가 씁쓸해 보였다. 그녀의 삶이 늘 참아야 하는 것들뿐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소설이다. 한강 작가의 소설은 대부분 그랬다. 어떨 때는 내 생각을 대신 말해주는 것 같다가도, 또 어느 순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곳을 찌르고 들어온다. 그래서 읽고 나면 또다시 읽고 싶기도 하고, 두려워서 다신 읽고 싶지 않기도 하다. 하지만 늘 그런 생각들이 들면서도 새로운 작품을 향해 손을 뻗는 스스로를 보면, 이게 바로 작가의 힘이란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그리고 언젠간 나도 그런 글을 쓸 거라고, 매번 다짐하게 된다.

 

이번 <작별>도 그렇다. 많은 생각이 들게 하기에 손을 뻗고 싶고, 그렇기에 외면하고 싶은 작품. 눈사람이 된 그녀의 이야기가 단 하루라는 시간을 담은 작품. 당신도 한 번 읽어봤으면 좋겠다.

 

 

[김승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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