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고요한 인생 [도서]

떠돎과 실패와 절망의 서사들
글 입력 2020.09.13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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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인생’이라는 제목을 보고는 소란한 나에게 고요함을 일깨워 줄 책인가 싶었다. 하지만 이 책의 고요함은 심하게 고요하다. 고요하게 고립되었다. 어떠한 즐거움도, 어떠한 희망도 존재하지 않는다.


7편의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는 소설집 『고요한 인생』의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존재들이다. 가난과 맞물린 다양한 이유들로 거리를 떠돌고, 실패와 절망만이 있지만 절망마저 절망으로 묘사되지 않는 담담함에 그들이 처한 상황이 더 극대화된다.


첫 단편 <고요한 인생>의 주인공은 가난한 집에서 아무도 원치 않았지만 태어나게 된 한 여자아이다. 신체적 장애를 가진 아이는 어릴 적부터 남들과 다르다는 이질감을 안고 살아가는데, 너무 많은 것을 일찍 알게 된 탓인지, 아이가 아이답지 않은 모습들이 노인의 뒷모습으로 비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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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선 아이는 자기 발로 파출소에 가고, 새로운 양부모에게 입양된다. 그가 소망하는 것은 그저 좋은 가정에서 사랑받으며 아주 고요한 삶을 영위하는 것. 소망대로 풍요로운 양부모로부터 따뜻한 밥을 먹으며 평온한 나날을 영위하는 듯하지만, 그의 언니로부터 발견되는 바람에 평온은 깨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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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애초에 희망은 없던 것처럼 덤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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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편의 소설 중 <고요한 인생>이 가장 여운이 깊었던 이유는 독자로 하여금 주인공이 된 기분을 느끼게하는 독특한 시점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가부장적인 분위기 속에서 여자아이로 성장한 나는 더욱 쉽게 감정이입되었는지 모르겠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남성들에게 자신의 몸을 만지는 것을 허락하고, 싫어하는 언니에게 락스 궁을 먹이는 주인공의 모습은 인물을 단지 사회의 피해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사람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일곱 편의 소설은 절망의 서사이지만 절망만을 남기지는 않는다. 저자가 그려낸 소설에서 공간과 시간은 중요치 않다. 먼지 같은 관계들 속에서 인물만이 존재한다. 그리고 반복적으로 묻는다.


“너는 어떻게 너인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정체성은 형성된다. 타자들로부터 소외되고 고립된 인물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고 나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과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며 살아가지만, 언뜻 괜찮은 듯 보이는 한 줄의 금은 언제 큰 균열을 만들지 모르는 일이다.


그저 할 수 있는 건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는 따뜻한 시선을 가지는 일이지 않을까. 『고요한 인생』은 두껍지 않은 분량으로 쉽게 읽히면서, 타자를 이해하는 섬세한 감수성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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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인생
- 먼지 같은 관계 속에 소멸되는 시간과 공간 -
 

지은이 : 신중선

출판사 : 내일의문학

분야
한국소설

규격
134*200

쪽 수 : 204쪽

발행일
2020년 07월 27일

정가 : 15,000원

ISBN
978-89-98204-76-1 (03810)





저자 소개


신중선
 
경남 거창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했다.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신문방송학과에서 출판잡지를 전공했다.
 
1987년 <떠다니는 꿈>으로 [현대문학] 추천을 받고 1993년 <어느 보일러공의 특별한 하루>로 [자유문학] 신인상을 받았으며, 201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학나눔' 우수문학으로 소설집 『여자라서 행복하다는 거짓말』이 선정되었다.
 
장편소설 『하드록 카페』 『비밀의 화원』 『돈워리 마미』 『네가 누구인지 말해』가 있고, 소설집 『환영 혹은 몬스터』 『누나는 봄이면 이사를 간다』 『여자라서 행복하다는 거짓말』과 『고요한 인생』이 있다.
 
 
[박은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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