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미술관 [문화 전반]

지금까지의, 현재의, 그리고 앞으로의 미술관
글 입력 2020.09.02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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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를 쓰지 않고 친구들과 미술관에 가던 날을 생각한다. 추운 겨울이었고, 하늘은 맑았다. 미술관 안으로 들어서자 익숙한 온기가 얼었던 뺨을 녹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에게 미술관은 언제나 현실과는 조금 유리된 듯한 느낌을 준 것 같다. 모두가 바쁘게 걷는 서울 한복판에서 발걸음 소리를 죽이고 찬찬히 걷는, 차분하면서도 세련된 공간. 나는 그 느낌을 좋아했다. 정확히는 그곳에 내가 있다는 느낌을 좋아했다.


오늘은 유튜브로 전시를 봤다. 국립현대미술관의 2020 아시아 기획전. 큐레이터가 친절하게 전시를 설명하고 고화질의 영상이 전시장 곳곳을 담았다. 재밌고, 유익했다. 기획전뿐 아니라 웹사이트를 통해 소장품도 모두 확인할 수 있으니 학구열이 불타는 날이었다면 몇 시간이고 노트북을 끼고 앉아 이미지를 눈으로 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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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웹사이트

 

 

영상으로 전시 설명을 듣고, 웹사이트에서 사진을 넘기는 곳. 온라인 미술관이라관 불리는 곳에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어느 한 구석이 만족스럽지가 않다.  미술관은 특수성을 띈 공간이다. 움직이고 소리 내는 작품 앞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시선을 옮기며 순간의 연대감을 느낀다.  대놓고 관람객 간의 상호작용을 유도하는 작품 앞에선 조금 수줍어도 적극적으로 팔다리를 움직여 본다. 미술관에 간다는 건 단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보러 간다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일상의 흐름에서 벗어난 예술적 공간에서 체험하며 느끼고 공감한다는 의미였다.


정부지침에 따라 더 강력한 거리두기를 실천하면서 국내 미술관들은 잠정 휴관에 돌입했다. 코로나 19가 장기화될 것이라 예상하지 못하고 낙관적인 전망을 내다보던 올해 초, 오프라인이 취소된 전시나 공연들이 국내외 할 거 없이 유튜브 등 온라인 플랫폼에 올라왔던 게 기억난다.  집에서 공연 영상을 스트리밍 할 때만 해도 그건 이색적인 체험이었고 자가격리  속 소소한 이벤트였다. 그렇지만 가을이 다가오는데도 아직 마스크를 꼭꼭 쓰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포스트 코로나'라는 시대 정의가 더 익숙하게 들려온다. 미술관의 변화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만 하는 시점이다.




온라인 플랫폼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동안, 세계적으로 미술관과 박물관의 온라인 웹사이트 방문자 수는 500% 이상 증가했다고 보고된다. 루브르 박물관의 경우 일일 웹 사이트 접속자가 4만에서 40만으로 늘었다. 이런 현상은 유럽뿐 아니라 국내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미술관과 전시의 인기 척도, 세계사적 위치를 미술관 입장률이 아닌 웹사이트 접속률로 파악해야 할 것 같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언젠간 다시 재개관할 텐데, 너무 앞서 나간 게 아닌가? 글쎄, 코로나가 장기화되고 종식된다 하더라도 또 다른 전염병이 발발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우울한 전망이 대두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변화를 숙명처럼 맞이해야 할 것 같다. 특히나 박물관/미술관은 문화예술 생태계 빙산의 가장 높은 지점에 있는 만큼 코로나 이후의 사태를 더욱 신중하게, 장기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변화를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더욱 적극적인 자세로 온라인 콘텐츠 개발하면서 영리한 대안을 제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미 국립현대미술관은 유튜브에 큐레이터가 안내하는 전시 관람 영상을 올리는 등 온라인 서비스를 활발하게 제공하는 등 발빠른 대처를 선보였다. 이는 곧 외신의 주목을 받았고 휴관인 와중에 세계 10대 미술관으로 선정되는 쾌거가 있었다.

 


국현미가 유튜브 채널에 선보이는 학예사 전시 투어.jpg

국립현대미술관 유튜브

학예사가 설명하는 전시 영상

 

 

 

물리적 체험의 부재



온라인의 장점은 많다. 접근 가능성이 월등히 높고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점. 무엇보다 21세기 사람들은 제 손의 일부처럼 스마트폰을 다루니까 미술관이 온라인 플랫폼으로 옮겨온다면 말 그대로 '내 손 안의 미술관'이 된다. 비대면, 비접촉의 패러다임 속에서 안전하게...


하지만 물리적 체험의 부재를 그냥 넘어갈 수 있을까? 가상공간에서의 체험은 미술관의 물질성, 공간성을 배제한다. 작품 앞에 모인 타자와 대자 하고, 작품 앞에서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고요 속의 관조가 일어나는 장소에 미술관의 본질적 가치가 있다고 본다면 전면적인 온라인으로의 전환이 마냥 달갑게 느껴지지 않는다.


온라인의 장점을 취해 변화를 맞이하면서도 미술관의 공간이 가진 사회적 가치를 퇴색시키지 않도록 하는 방안은 없을까.

 



공간의 활용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을 준수하는 수준에서, 사전예약제와 방문객 수 제한을 통한 충분한 거리두기를 보장하고 방역에 주의를 기울이며 미술관이 가진 공간성이 퇴색하지 않도록 유지하는 노력이, 체계적인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현재 모든 미술관들이 전투적으로 온라인으로 나서고 있지만 잠시 멈춰 공간의 의미를 보존하는 방안을 마련하면 어떨까.


비어있는 미술관을 대안공간으로 활용하여 빈 공간을 작업공간이 부족한 창작자들에게 제공하거나, 연구자들의 집필공간으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술관이 관람객을 비워 그 안에서 이뤄지던 '소비'를 중단한 사이 창작자를 초대해 '생산'의 공간으로 탈바꿈한다면 미술관이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위상과 권위를 새롭게 환기시키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건축물을 활용하는 방안도 있겠다. 올여름, 백남준 아트센터는 '안녕! 백남준 아트센터'라는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스티커 키트를 이용해 건물 외벽에 지역주민이나 시민이 자유롭게 메시지를 쓰고 시각적인 표현을 남기도록 구성한 프로그램이다. 미술관이 닫혀있어 사람들이 동시에 모여 연대를 느낄 순 없지만, 건물의 외벽을 이용해 흔적들을 모이게 했고, 미술관 외벽에 남은 사람들의 온기는 물리적으로 함께임을 관람객들이 몸소 느낄 수 있도록 하여 서로의 안녕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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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아트센터의 건물 외벽

안녕! 백남준 아트센터

 

 

 

미술관의 미래



보건의 절대 위기 속에서 미술관을 이야기하는 것이 호사로 비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럴수록 미술관이 지금까지 어떤 기능을 수행해 왔는지 떠올려야 하지 않을까.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차별과 혐오, 그리고 폭력이었다. 옅은 안개처럼 뿌옇게, 하지만 틀림없이 존재했던 혐오는 재난상황에서 더욱 날카롭게 대상을 찾아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올 한 해 이어지고 있는 이상기후는 이전부터 예견되고 경고되었던 재난이다. 우리는 몇 날 며칠 동안  장마가 아닌, 인간의 이기심이 초래한 결과를 맞았다.


타자를 존중하고 다름을 이해하는, 손을 내밀어 연대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미술이, 예술이 최상의 가치로 보존해온 흐름이다. 특히 현대의 미술은 심미적인 아름다움을 넘어 인류가 자각하고 보존해야 하는 가치를 담아 메시지를 건넨다. 공통의 감각이 발생하는 미술관은 연대의 흐름을 만들고 함께 움직이는 것에 기여했고, 그 가치를 흡수하는 장이 되었다.


긴 장마로 마르지 않는 빨래를 보니 작년에 보았던 일민미술관의 '디어 아마존: 인류세 2019' 전이 생각난다. 강에서 잡은 물고기를 바로 죽이지 않고, 숨이 끊어질 때까지 꼭 끌어안아 애도를 표하는 브라질 비디오 작품이 있었다. 물고기와 호흡을 같이하는 그 축축하고 긴 영상을 보면서 축축한 무언갈 마음으로 느꼈고 이내 눈시울이 축축해졌던 것 같다. 지구 생태위기가 어느 때보다 개인적으로 다가왔던 순간으로 기억한다.


작품을 통한 개인의 각성. 그뿐 아니라 미술관이 수행해온 사회적 기능은 폭넓고 다양하다. 인류의 문화유산을 수집하고 보존하는 기초적인 기능에서부터 체험과 교육, 나아가 연대까지. 그간 미술관이 사회에 기여한, 예술이 사회에 기여한 역할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더욱 빛나야 한다.


사회 전반이 위기 상황에 처하면서 미술계에서도 암울한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80% 이상의 미술계 종사자들이 재택근무를 시행 중인데 그중 대다수는 재계약 전망이 없다는 내용이다. 폐관에 대한 두려움도 빠지지 않는다. 이는 지역 간 격차와 함께하는데, 박물관/미술관이 최근에 건립되었거나 거의 없는 지역이 폐관 가능성이 높다.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지역 등이 그렇다. 인류의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기초적인 기능을 하는 기관이 소실된다면 향 후 격심한 지역불평등이 따라올 것이다.


암울한 전망 속에서 미술관의 미래를 점치는 건 마음이 답답해지는 일이다. 하지만 어느 때보다 성찰하는 이 시기를 통해 미술관이 경쟁이나 착취가 아닌 공동의 삶을 기획하고, 함께 사는 삶을 위해 사회적 역할을 어떻게 강화해야 할지 원점에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되는 좌담회, 인터뷰를 보며 그들의 노력에 응원을 더한다. 박물관/미술관이 시장원리가 아니라 사회적인 가치를 회복하고 사회적 역할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향후의 프로그램을 기획한다면 미술관이 직면한 존립의 위기를 타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적인 마음을 살며시 품어본다.

 

 

참조, 라운드테이블: 코로나 시대의 미술관

 

 

 

 

[송민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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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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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원
    • 빨리 코로나가 끝났으면... 사회전반적으로 타격이 너무 커요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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